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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아침,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파란 하늘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살가운 바람이 양 볼을 간질간질 만진다.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날이다’를 수십 번 되뇌며 그냥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자전거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혼자 웃어본다.오창 산단의 자연환경을 좋아하는 신랑은 아이들과 산책하기,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산책은 즐겁지만 자전거 타기는 나에겐 힘겨운 노동이었다. 공무원 체육대회 때 경품으로 받은 내 자전거를 타는 남편, 세 발 자전거를 졸업하고 큰 자전거를 타는 두 딸, 그리고 그 뒤에 아이들 겉옷을 팔에 걸고 헉헉거리면서
동양에세이
황명숙
2018.10.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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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무성하다. 제도의 첫 시행인 만큼 형평성에 맞는 도입과 사례별 맞춤형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 속에 어느 직장인의 ‘팀점 보이콧 선언’에 눈이 멈춘다.‘팀점’은 같은 팀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앞두고 직장인들의 다짐을 대변하는 말인 듯하다. 비(非) 근로 시간에 사생활 질문을 듣고 대답하고 싶지 않으며, 점심시간만이라도 자유를 찾고 싶은 직장인의 현실적인 부르짖음이다.그간 우리는 한솥밥 문화 속에 소통을 중시하며 회식과 단합대회를 추진하고 화합을 도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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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숙
2018.07.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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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에서 아침밥 먹는 풍경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간 주먹밥이 아이들의 아침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그마저도 소명을 다하고 달콤한 꿀잠이 자리를 차지한다.아침을 항상 챙겨 먹는 학생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수능 성적이 6~8점이나 더 높고, 평균 점수가 8.5점 더 높으며, 특히나 아침을 전혀 먹지 않는 여학생은 외국어 영역에서 고득점을 얻을 확률이 매일 먹는 여학생의 1/5도 안 된다는 객관적인 연구결과도 아이들의 꿀잠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아침 꿀잠으로 포기한 아침밥, 막장 드라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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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숙
2018.06.2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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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색이 잦아든 자리를 초록이 물들이고, 화사한 무심천 벚꽃이 비바람에 흩날린 거리를 달콤한 보랏빛 라일락이 코끝을 간질간질하던 4월 어느 날, 슬픔과 엄숙함으로 가득할 것 같은 장례식장 어귀에서 마주한 분홍빛 벚꽃이 하늘에 계신 엄마가 걷는 꽃길을 궁금케 한다.엄마는 전쟁으로 인한 피난길에 가족들과 잡은 손을 놓치고, 혈혈단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지금의 내 고향 청주시 남일면 쌍수리에 둥지를 틀고 눈 씻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효자에, 법이 필요 없을 듯한 아버지를 만난다. 그 인생의 만남은 엄마에게 억척스러운 삶을 안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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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숙
2018.05.08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