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간호부장님. 한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우리 병원 개원하고 얼마 안되서 매일 진통제 주사 맞으러 오신 분 생각안나요? 나는 그분 아직도 생생한데…”“아! 알죠. 황 할아버지(73) 매일 진통제 주사 맞으러 허스키한 목소리로 접수에 오셔서 나 황 oo 야. 하셨죠. 그 환자분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아. 부장님. 어떻게 성함까지 기억해요?”“개원이래 생각나는 환자분이 네 분 계시는데, 그 중 첫 번째 분이예요.”맞다. 나도 개원이래 생각나는 분이 네 분인데. 우리 간호부장이랑 나랑 생각이 100%
‘또 독감이군’연신 가래 기침을 하며 힘든 표정으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어르신을 보며 혼자서 생각한다. 독감의 계절이긴 하지만 광풍처럼 밀려오는 독감 환자분들 덕분에 정신이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독감을 설명하고 기계적으로 검사를 하고 형광펜을 그어가며 결과를 설명하곤 약을 처방한다. 워낙 많은 독감 환자분들을 접하다 보니 이젠 독감이 아니라 그냥 감기처럼 일상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그 날도 그랬다. 아침 일찍 시할머니께서 아프시다며 연락이 왔다. 열도 많이 나고 기침도 심하시다며… 역시 독감이군. 열 빨리
K군의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였다. 20대 중반 남성의 탄탄한 근육과 몸매를 가진 그는, 같은 남자가 보아도 부러울 만큼 생기 넘치는 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말 못할 고민을 가지고 내 진료실을 찾아왔다. 운동을 시작한 후 수년 간 줄곧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지더니 최근에는 두피가 훤히 비쳐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 머리숱이 풍성한데 유독 자신만 이유 없이 탈모가 생기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간단한 진찰 후에, 스트레스로 가속화된 안드로겐성 탈모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족력 보
매해 8월이면 언제 의료봉사를 가는지 미리 챙겨보곤 한다. 수십 년 봉사활동을 다니신 선생님들이 많으신지라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이제는 어느덧 일상처럼 되어버린 여름의 캄보디아... 올해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곳으로 가는 터라 조금 걱정이 되지만 새로 합류해 주신 소아과, 안과, 비뇨기과 등 다른 해보다 다양한 과의 선생님들과 경험 많은 간호사 분들과 자원봉사자님들로 인원이 꽉 차 든든하기도 하다. 8월 11일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늘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싣는 짐은 한 가득이다. 버스 안에서 짧게나마 새로운 얼굴들과
어머니는 모내기가 한창이던 농번기 이른 아침에 나를 낳으셨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일꾼을 위해 마련한 새참을 소쿠리에 이고 논에 가셨다. 요즘처럼 편안히 산후조리를 하는걸 보면 어머니 생각에 안타깝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청진기를 놓고 돌잡이 행사를 했을 리는 만무하다. 내가 의사가 된 이유는 환자를 치료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어쩌면 중학교 3학년부터 다리가 아파서였다. 정형외과의사가 되어 나의 아픈 다리를 치료하고 싶은 순진한 생각이었으나 여학생에게 낯가림도 심했던 내가 산부인과의사가 되었다. 지금 의사로 살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