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대문 앞에 놓여 있는 빈 의자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전용물이었던 의자다. 치매를 앓으셨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날이 새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지막한 담장 앞에 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 세상구경을 하셨다. 지나가는 동네 분들과 눈인사도 하고 대추나무 밑에 메어 놓은 멍멍이랑 장난을 치시기도 하고. 무더위에도 땡볕에 앉아 계시는 바람에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리고 땀범벅이 돼도 방으로 들어오시지 않아서 아들이 큰 우산을 걸어 그늘 막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복숭아가 익어가는 계절 툇마루에 앉아 대문 앞을 보노라니 말년의 아
비상소집이 있어 일찍 출근하는 길, 시청 앞 화단에 발길이 머문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놓질 않는다. 이미 꽃을 피운 것도 있고 아직은 벙글지 않은 봉오리도 있어 조화롭다. 꽃잎에 맺힌 이슬 위로 햇살이 영롱하다. 예쁘기까지 한데 은은한 향까지 뿜어내고 있다.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카메라셔터를 누른다. 오늘 나는 저들이 뿜어내는 꽃 향에 취해 저들의 고운 맵시에 취해 행복한 아침을 열며 생각한다.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를.비상소집이라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늦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서 보니 모셔야 할 윗분들이
(동양일보) 바지춤이 내려와 엉덩이 골이 다 보이는 차림새로 유모차를 밀면서 들어서는 어르신이 활짝 웃으신다. 진료소 옆집에 사는 분이다. 본인도 아신다. 부끄럽다는 걸. 하지만 팔이 아파 옷을 올릴 수 없음을 알기에 올려드리고 의자에 앉혀드렸다. 온종일 사람 구경을 못해 진료소라도 오면 입이라도 열어 볼까 싶어 오셨단다. 걸어서 서른 발짝 남짓인데 숨이 턱에 차 하신다. 힘들게 오신 데다 워낙 커피를 좋아 하는 분이라 믹스커피에 설탕을 한 스푼 더 넣어 드렸더니 달게 드신다. 호로록 호로록 목 넘기는 소리가 참 맛있다.한 숨 돌린
“소장님! 가슴에 방망이가 있어서 가끔씩 막 두들겨 패는 것 마냥 아파요.”이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이야기하시다니.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의심돼 당장 사망할 수도 있는데 아팠다 가라앉고 해서 크게 신경을 안 쓰셨던 모양이다. 응급시술을 받고 회복돼 퇴원하던 날 “소장님이 날 살렸다”라며 그동안에 일을 소상히 이야기하시며 감사함을 전하신다.“소장님! 일하다 와서 옷에 땀 냄새도 나고 장화 벗기도 힘든데 얼른 삭신 아픈 데 먹는 약 좀 주셔요.”하시는 분도 있고 어제 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추 순을 땄더니 다리가
라인댄스 발표회 연습장으로 가려고 어르신들을 모시러 갔다. 골파 모종할 것을 고르고 계신다. 어르신 한 분이 “소장님, 골파 씨하고 남은 것 다듬은 건데 한 번 드셔보시라”라며 건네주신다. 가는 동안 골파를 이용한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로 차 안이 떠들썩하다.지도강사가 자리 배정을 해주는 날이다. 자리가 대충 정해지고 강사 구령에 맞춰서 옆으로 하나, 둘 이동하면서 손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며 반짝반짝하라고 하는데 어르신들의 손이 잘 맞질 않는다. 강사가 손 모양 자꾸 틀리면 자리 바꿔 뒤로 보낸다고 웃으면서 엄포(?)를 놓는다. 그
봄이다. 꽃 향에 취해 눈을 감고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몸 가득 봄을 느낀다. 수풀 사이에서 삐죽삐죽 내밀고 올라오는 새싹들. 나뭇가지에는 연한 잎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진달래, 개나리도 보이고 옻순, 두릅, 홑잎이 온 산에 가득하다. 언 땅 뚫고 나온 새싹들이 참으로 대견하다. 바람이 분다. 산이 춤을 춘다.야트막한 산자락에 돋아난 쑥이 예쁘다. 어쩜 이리 파릇파릇할까. 털이 숭숭 난 줄기 사이로 수줍게 돋아난 새순들이 초록이 아닌 연두여서 맘에 든다는 등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우리 다섯 자매가 나지막한 마을 뒷산에서 쑥을 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