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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서빙고강을 어름 위로 가까스로 건너 깜깜한 밤에 리어카를 계속 따라갔다. 그러니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 하긴 난생 처음 피란을 그것도 앞을 분간 못하는 밤인지라 주위를 알지 못하면서 죽어라 하고 리어카를 밀고 가는 엄마와 누나 뒤를 우리 형제가 따르고, 지팡이를 짚고 한쪽다리를 절름거리며 우리 형제를 바싹 따르는 큰언니였다. ‘큰언니’ 라 했거니와 우리 형제는 큰형님을 그렇게 불렀다. 서울로 올라왔을 때 서울사람들은 형을 언니라 한다며 큰형이니까 큰언니라 해야 된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럼 작은 누나는 큰누나를 어떻게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1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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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가까이 지내는 후배가 조기퇴직을 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그리고 난생 처음 생활문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후배가 고른 종목은 ‘몸놀이’였다. 몸놀이란 몸을 이용한 놀이, 일종의 춤 프로그램이다. 평생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일을 해온 후배가 배우고 싶었던 것이 춤이었구나 생각하니 낯설지만 신선했다. ‘몸치’인 탓으로 춤은 내게는 늘 먼 문화였다.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일어나서 몸을 흔들거나 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모두가 흥이 넘치던 학창시절에도 행사 후 댄스타임이 이어지면 어느새 내 위치는 맨 뒤쪽이거나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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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신년 새해 많은 것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계묘(癸卯)년 흑묘(黑卯) 검은 토끼의 해이다. 왜 검은 토끼 검은 색의 상징이 들어갔을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백의민족(白衣民族) 한민족이라 하여 흰색을 좋아하고 국민성을 나타내는 상징색도 흰색이 대표하며, 검은색은 까마귀 같은 부정의 악의 상징처럼 사용된다. 작년은 임인년(壬寅年) 검은호랑이 올해는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이다. 해마다 흰쥐의 해, 황금 돼지의 해, 푸른 양의 해 등으로 동물 앞에 색이 붙는다. 이런 의미는 천간지지(天干地支)와 연관되어 있다. 이때 색을 정하는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1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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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지난 3일, 한 해 동안 ’풍향계‘와 ’동양칼럼‘난을 책임질 본지 “오피니언 필진‘이 소개됐다. 올해도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하루 두 편씩 500여 편의 칼럼이 생산될 것이다. 칼럼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한 편의 칼럼을 받아보기까지 매일매일 작가들이 고민 끝에 완성한 원고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제작-발송의 전 과정이 차질없이 진행돼야 가능한 일이다. 언뜻 생각하면 칼럼처럼 쉬운 장르도 없다. 일단 글이 짧은 편이다. 정해진 형식도 없고 다뤄야 할 소재가 제한된 것도 아니다. ’칼럼(column-기둥)‘ 뒤에서 맘껏 자기의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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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또 한 사람의 뛰어난 문학가의 고향이 진천이다. 필자는 그러한 사실을 몇 년 전에야 뒤늦게 알았다. 왜냐하면 그를 소개하는 프로필엔 예나 지금이나 공식적으로 다른 지역을 고향으로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그가 펴낸 명저들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도 그곳이 고향이라 적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의 고향 '충주'와 평생의 외우(畏友)이며 문우인 신경림 시인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교사인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한곳에 오래 정주하지 못하고 이사를 다닌 탓에 청소년기를 보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1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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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결혼식 등 남의 애경사에 부조금을 얼마를 해야 하는지 세심하게 따지는 세상이다. 당사자와의 관계, 나의 애경사에 받은 부조금 액수, 식사를 하는지 마는지 몇 명이 하는지 등이 기준으로 거론된다. 내가 손해를 보지도, 상대에게 모자라게 하지도 않겠다는 것이 고민의 핵심이다. 야박한 세태구나 하는 생각이 완전히 떨쳐지진 않지만, 이 상호부조의 원리가 다시 정비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산업화된 도시에 살면서 남녀 모두 인간관계가 복잡해졌다. 평균 학력도 높아져 동창관계도 많아졌다. 종신고용 모델도 깨져 여러 직장을 통해 길거나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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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해방 후 진행된 농지개혁법(農地改革法)은 농민에게 평등한 농작권 보장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가구당 소유농지를 제한하여 농민에게 유·무상으로 강제 분배하도록 하는 법률이 일본, 대만 등에서도 실행되었다.한국의 경우, 1951년대 말 농지 자작농의 비율이 96%까지 올라섰다. 이때 적용된 조봉암의 토지개혁은 자유주의에 가까이 와 있었다. 실업자, 상이군경, 농민, 노동자, 봉급 생활자, 월남 피란민 등을 비롯하여 중소기업자까지도 토지의 균등 공유를 환영하고 나섰다.당시 상황은 도시와 농촌의 자본이 가까이 있었고 노동력이 상호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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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손택(S. Sontag, 1933-2004)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책 한권도 없는 집에서 술에 쪄든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선생님으로부터 한권의 책을 선물로 받게 되면서 갑갑한 집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책 읽기임을 알게 되었다. 손택은 학교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책벌레가 되었고, 16세 이른 나이에 시카고대학교 진학에 이어서 하버드, 옥스퍼드, 소로본느 대학과정을 차례대로 이수하였다. 손택은 백혈병 등 다양한 질병을 앓아가면서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세상의 불의에 맞섰다.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0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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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2023년 계묘년은 영리하고 민첩한 동물인 토끼에 지혜를 상징하는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검은 토끼의 해 란다. 모두에게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다.2022년 12월 3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향년 95세로 선종했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울려 퍼졌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 서거 후 콘클라베가 열리고 교황이 되었다.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으나 8년 만인 2013년 2월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난 뒤 그동안 '명예 교황'으로 지내왔다. 교황청 공보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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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이번 달 풍향계 칼럼 1월 5일자 원고 마감 일자를 연락받고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일 1월 4일. 새해를 맞아서 결심했던 의지들이 작심삼일(作心三日), 새로운 해의 각오가 벌써 무너지고 새로 시작하는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새해의 결심과 각오를 시작하는 날의 마음으로 원고를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를 맞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년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갖는다. 그리고 잘 살아보겠다는 뜻에서 새로운 생활지침이나 각오들을 세운다. 이루고 싶은 소망의 성취를 위해서 엄청난 인파가 해맞이로 유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0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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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새해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한다. 기대를 품는 만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사람이 허름한 호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주인에게 “나는 지금 아주 피곤하니까 조용한 방을 주시오.”하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우리 호텔의 방들은 다들 조용합니다. 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떠들어서 그렇지, 방들은 아주 조용합니다.”우리는 살아가면서 남의 탓을 많이 한다. 환경이나 여건은 물론 만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꼭 들어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데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문제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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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화양동(華陽洞) 인문유산은 유교적 장소성과 동아시아적 자연 친화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화양계곡은 명승 110호로 화양천을 따라 물, 모래, 절벽, 소나무 등이 조화미를 드러내고 있다. 화양구곡은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암, 첨성대, 청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수정원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경영했던 암서재 유적지와 화양서원터, 만동묘가 있다. 화천군 화음동과 함께 주자학의 기운생동 인문학의 본향이다. 괴산학(槐山學)은 이러한 지역인문이 세계와 교감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0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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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새해 시무식이 예정된 첫날, 예복같은 검은 양복을 벗고 붉은 옷을 입어 봐야 겠다.토끼의 해, 힘과 정열로 상징되는 빨간색을 중심으로 밝고 환한 계열이 2023년 색상 트랜드로 단연 우세하게 예고됐으니 새해 선보일 주택, 옷, 가구, 소품 등 각종 디자인과 상품들은 희망을 상징하는 강한 원색들이 색깔이 다양하게 칠해질 전망이다.색상 및 디자인 전문 기업들이 예상한 새해 트랜드 컬러는 지난 3년간의 어두운 코로나 암흑기에서 본격적으로 탈출하려는 강한 기대와 의지를 일러 주듯, 밝고 따뜻하며 상쾌하고 품격있는 붉은 색상환쪽
풍향계
동양일보
2023.01.0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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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고등학교 과목 윤리와 사상 교과서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구절이 있다.스토아학파는 금욕과 절제를 추구하고,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강조했다.이는 대입 수능 시험 문제를 풀 때까지 ‘바이블’처럼 통한다.그러나 대학교 철학 수업에서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스토아학파 중에는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와 같은 부동산 부자나 고리대금 업자였던 세네카, 무소불위의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도 있었다거나 에피쿠로스 본인은 과도한 쾌락의 추구를 경
풍향계
동양일보
2022.12.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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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12월 28일은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사용하는 서양 달력인 그레고리력으로 볼 때,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시간을 3일 앞둔 날이다. 이날이 덧셈과 뺄셈으로 계산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이유는 의열단원인 나석주(羅錫疇) 열사가 1926년을 마감하면서 치른 동양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해, 그날, 의연히 저세상으로 건너간 젊은 나석주를 찾기 위해 1926년이 먼저 정의되어야 한다. 일제 치하의 한반도는 공식적으로 모든 국민이 길가에 나서도 되는 두 번의 기회를 얻는다. 조선에서 ‘대한제국’
풍향계
동양일보
2022.12.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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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구약성경 창세기는 성경의 시작이면서 크리스트교에서 유일신이 지구를 창조하는 과정과 그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기술되어 있다. 성경에서 창조주는 닷새 동안 세상을 만들다가 유일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그들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고 그들을 축복하면서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풍향계
동양일보
2022.12.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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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 거리는 핼로윈 축제를 즐기려는 13만의 인파로 가득 찼다. 오후 10시 15분 이태원역에서 해밀톤호텔 옆을 지나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은 많은 인파가 몰리고 넘어지면서 압사사고가 발생한다. 158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을 우리는‘이태원 참사’로 부르고 있다.「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에서는 재난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한파, 낙뢰, 가뭄, 폭염, 지진, 황사,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 현상으
풍향계
동양일보
2022.12.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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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올 12월은 유난히 더 추웠던 것 같다. 아침마다 울리는 “한파 주의보”라는 행정안전부의 문자로 ‘이불 밖은 위험해’ 라는 생각과 함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던 요 며칠이었다. 이토록 추웠던 날씨 덕분인지, 아니면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지나가고, 새로운 한 해인 2023년 계묘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잠시 회상해보면, 12월의 마지막 밤, 부모님하고 TV에서 방송해주는 가요대전이나 각 방송사의 연예 대상을 보며, 보신각의 종소리를 듣기
풍향계
동양일보
2022.12.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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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서빙고(西氷庫)는 서울의 한강 가에 있는데, 한강의 물을 얼려서 저장하는 곳으로 조선 초에 설치된 얼음 창고이다. 한강 서쪽에 있다 해서 서빙고이다. 6.25의 1.4후퇴의 마지막 행렬에 끼어 이 서빙고강을 건너기 위해서 우리 다섯 식구는 장춘단공원을 거쳐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남정네의 뒤에서 엄마가 그 리어카카를 밀고 갔다. 리어카를 끌고 밀고 갔다 했거니와 곧 끄는 사람은 40대의 구서방이었다. 이는 경란이라는 네 살 난 딸을 업은 30대 후반 남짓의 아내. 이렇게 세 식식구의 가장인데, 고향이 경상도로서 서울로 올라와
풍향계
동양일보
2022.12.2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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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해방과 더불어 남한과 북한은 토지개혁에 사활을 걸었다. 대다수 농민이 친일 지주의 소작인으로 전락한 상황을 타개함으로써 항일 독립운동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정책의 선명성을 앞세우기 위해서였다.1946년 2월 북한의 김일성은 정권을 잡자마자 3월에 토지개혁을 단행한다. 당시 4%의 지주가 전체 농토의 58%, 소작농은 75% 가까웠던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을 선택하였다. 하루아침에 중농(국유지 관리인)이 된 소작인들은 공산당원이 되고 싶어 하였다. 8월에는 전체 산업의 90%를 국유화시키는 소련식 개혁이 단행되었다.
풍향계
동양일보
2022.12.20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