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일보]일상은 하루하루가 쌓은 ‘적층(積層)’이며 그 시간의 켜는 개인 삶에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각각 기억되거나 경험된다. 이 같은 이유는 동일한 시간 속에 수렴하는 인식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눈으로 식별되는 감각을 전체로 오인하며 살거나 전체를 부분으로 축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실 삶을 둘러싼 자연은 한시도 머물지 않고 우리가 의식한 관성의 경계를 허문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인식의 틀이라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새삼 실감한다. 며칠 전 동료 직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다가와 ‘붉은색 아카시아꽃’을 본 적이 있느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6.07 21:08
-
[동양일보]새벽 2시, 어김없이 낑낑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휴, 오늘 밤도 편히 자기는 틀렸구나 생각하며 조금 더 침대에서 기다려 본다. 혹시 아기가 스스로 잠들까 기대해 보지만 열에 아홉은 다시 재우러 가야 한다. 대부분은 아내가 안고 달래야 잠이 들지만 손목 건초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터라 나도 같이 일어나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도와준다. 모유 수유 때문인지 우리 아기는 7개월째 통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새벽에 깨는 일상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피곤과 두통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200일도 넘었으니 이제 슬슬 수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6.04 23:01
-
[동양일보]요즘 독서를 즐기는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일상생활이 바빠 책을 읽을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콘텐츠나 취미가 즐비한 시대에서 독서는 점점 우리들에게 소외되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만 해도 사물함에 붙여놓은 자기소개서에 ‘독서’를 취미로 적는 친구들이 많았다. 학생의 본분이 책을 읽고 거기에서 배움을 얻는 것이지만 학생들부터 독서를 취미로 적을 만큼 책 읽는 사람이 많았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취미를 독서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남들만큼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한 권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6.02 20:23
-
[동양일보]2008년도 여름이니 벌써 12년이나 지난 얘기다. 무덥고 어수선했던 그해 어느 여름날, 아버지가 갑자기 “이번 주 일요일에 개성관광 티켓을 끊었으니 같이 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개성? 뜬금없이 갑자기 개성이라니?’라고 내심 의아해했지만, 그해 만 80이 되신 신의주 출신 아버지의 망향의 그리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단 한번이라도 고향 근처라도 가고 싶은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개성은 고향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한번 다녀왔던 곳이었기에 고향만큼이나 그리운 곳인지라 나는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개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31 19:01
-
[동양일보]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노래 ‘봄날은 간다’는 봄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언제부터 이 노래가 봄을 상징하는 내 개인 이미지로 체화되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가수 백설희가 1953년에 취입한 이래 국민가요로 널리 애창되고 나 또한 어린 시절에 이 노래를 많이 듣고 자랐다. ‘봄날은 간다’는 시 전문 문예지인 (2003)가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노랫말이 가장 아름다운 우리 가요에서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19 20:31
-
[동양일보]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학창 시절 스승은 삶의 등대이자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꽃의 향기는 하룻밤 잠을 깨우지만 좋은 스승은 평생 잠을 깨운다’는 말이 있다. 꽃향기는 한순간이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일생동안 깨달음을 준다는 의미이다. 각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도움을 준 스승에 감사하는 보도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외국의 원조를 받던 빈국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전환된 유일한 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이렇게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 바로 교육이었고, 그 중심에는 스승이 있었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14 20:26
-
[동양일보]지난 2월 마지막 날, 어머니는 서울의 원룸에서 홀로 돌아가셨다. 전날 밤 당신이 손수 끊이신 누룽지를 밤 10시에 잡수시고 잠든 채로 돌아가셨다. 주변 사람들은 “어머니께서 아프지 않고 돌아가셨으니 복 받으셨네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렇지만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임종조차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불효자, 죄인이라는 단어가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열여덟에 독자인 아버지에게 시집오셨다. 고이 자란 남편 대신 밭 일을 도맡아 하시고 다섯 아들과 딸을 키우며 고생하셨다. 10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12 20:05
-
[동양일보]오늘날 교육의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에 안주한다면 뒤처지고 말 것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워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사상 최초로 개학이 잠정 연기되었다. 이로 인한 수업 일수 부족의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라인 개학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발견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온라인 학습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으로 우리는 생활 전반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10 19:45
-
[동양일보]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가을 딸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주변에서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그냥 막연히 힘들겠지 했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전쟁이 따로 없었다. 특히 아기를 낳고 100일이 되기 전 약 세 달이 가장 고비였다. 가장 우리 부부를 힘들게 한 건 아기의 잠이었다. 전에는 막연히 아기를 품에 안고 토닥이면 새근새근 잠드는 줄 알았는데 웬걸, 잠투정을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기를 세워 안고 토닥이며 잠들 때까지 계속 거실과 방을 오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07 19:00
-
[동양일보]공무원을 퇴직한 후에도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것 하나가 고마건축 이야기입니다. 곰과 나무꾼의 비극적인 전설이 흐르고 있는 공주 고마나루에서 붉은 건물 ‘고마’를 바라다보십시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조각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직육면체구조의 3층건물, 붉은색 테라코카타로 마감한 이 건물은 살구나무정원과 연못을 거느리고 있습니다.이 건물내부는 컨벤션센터, 세미나실, 전시관 등의 기능을 하고 있는데다가 외부는 겨울군밤축제장과 여름공주 음악축제장이 될 만큼 분위기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05 19:38
-
[동양일보]따뜻할 온溫, 볕 양陽. ‘온양’은 이름에서부터 따뜻함이 묻어있다. 현재는 아산시로 개편되어 행정구역상 ‘온양시’라는 곳은 사라졌지만, 같이 지내온 세월 때문 인지 왠지 모르게 ‘아산’보다는 ‘온양’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온양이라는 지명은 따뜻한 물이 솟는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지명에 얽힌 설화에는 겨울에도 땅이 잘 얼지 않고, 농부들이 땅을 팠는데 뜨거운 물이 콸콸콸 솟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온양의 과거 지명을 보면 더욱 잘 나타나는데, 백제시대에는 ‘탕정湯井’, 고려시대에는 ‘온수溫水’, 조선시대 이후에는 ‘온양溫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5.03 19:56
-
[동양일보]후배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아이를 이해하고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 또한 군대 간 아들을 오로지 이해하는 일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와 함께 성장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나름의 이야기를 해줬다.부모는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존재이다. 일단 부모가 되면 부모의 역할을 장기간 하게 되는데 자녀의 성장에 따라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하며 변화의 위기를 거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모 역할이 더이상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28 20:25
-
[동양일보]1995년 대학 면접을 다녀오는 길에 눈앞에 보이는 ‘헌혈버스’는 내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기회를 부여해주었다. 무엇인가 선한 활동에 참여하면 꼭 오늘 면접을 치룬 대학에 합격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물론 대학 입시는 불합격. 그러나 헌혈버스 안에서 경험한 ‘첫 헌혈’은 나에게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데 동참 했다는 기쁨과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헌혈 후 음료수와 빵 그리고 선물은 내게 ‘행복 plus’로 감동을 주었다. 그만큼 나는 단순했다. 이후 군 입대 후 본격적으로 헌혈에 동참하면서 군복무 혹은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26 19:55
-
[동양일보]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아카시아 향이 실려 와 코끝을 간질일 때면, 나는 어느새 너를 처음 만났던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4층 교실의 내 책상에 앉아있곤 해.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꼭대기 교실은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서인지 수업이 끝나면 오가는 사람이 없어 조용히 사색하기에 완벽한 곳이었지.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너는 수업 시간에도 나를 보고 빙그레 웃어 주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혼자 남아 나를 보고 빙그레 웃어 주었어.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을 지으며, 5㎝가 넘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23 19:59
-
[동양일보]영화를 1974년에 처음 보았다. 고등학교 들어가던 해다. 원주에 있던 ‘군인극장’이었다. 그 때까지 내가 살던 곳은 1975년에야 전기가 들어온 아주 외진 시골 마을이다. 당연히 텔레비전도 없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접할 기회도 없었다. 몇 년에 한 번꼴로 10리(약 4㎞)는 떨어진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둘러친 가설극장이 들어오긴 했으나 그 가설극장조차 가보지 못했었다.내가 처음 본 그 영화는 ‘007 죽느냐 사느냐’였다. 영화가 끝나고도 금방 일어서지 못했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세계에 대한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21 21:11
-
[동양일보]코로나19로 위기경보가 심각단계가 선포되었고, 세계보건기구는 펜데믹(Pendemic)을 선포하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실시되고 있고, 요즘의 교육현장은 유래없는 개학연기와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직장내에서도 출입자 통제, 재택근무, 영상회의, 출장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외출 및 사적모임까지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등 정부지침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억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연초부터 난생 처음 이런 대란을 겪다보니, 마스크 없이 숨을 편하게 쉬며 어디든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직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19 19:52
-
[동양일보]단돈 500원만 넣으면 ‘꿈 소멸증’, ‘사람 멀미증’, ‘자존감 바닥 증후군’, ‘월요병 말기’, ‘가족 남남 신드롬’ 등 재미있는 이름의 20가지 증상에 대한 맞춤 처방전이 나오는 ‘마음 약방’이 있다고 한다. 서울문화재단과 hs애드가 함께 진행하는 캠페인으로, 그 뛰어난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광고제인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바 있다. 서울시청 1층에 설치된 ‘마음 약방’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 증상에 맞는 영화 처방, 도서 처방, 그림 처방 등이 들어 있어 사람들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16 19:55
-
[동양일보]괴한 세상을 접하면서 코로나19로 생명의 존엄성이 한층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코로나19’ 이름도 생소한 이 바이러스는 갑작스럽게 우리의 일상을 박살 냈다.국민들은 코로나19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남이 행복이고 희망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웃과 거리를 두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다. 심지어 일할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가 없어서,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학생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1명을 뽑는 자리에도 200여명의 인파가 몰리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여지껏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12 20:13
-
[동양일보]강산이 다섯 번 변했지만 아직도 뇌리에 각인되어 가끔은 그때의 아픔이 되살아나곤 한다. 사건에 대한 꿈이라도 꾸는 날이면 벌떡 일어나 잠에 빠지지 못한다.지금으로부터 51년 전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지명(山谷)만큼이나 골이 깊고 산이 높은 아담한 중간터에 60호정도의 정겨운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또 그만큼 가난해 하루 끼니와 땔감을 걱정하는 삶이 이어졌다. 당시 굶주림을 잊기 위해 몸을 데우려 군불을 자주 때다 보니 마을 주변의 산은 온통 민둥산이었다. 음력 정월대보름날, 사건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09 20:26
-
[동양일보]바다와 해양경찰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해양경찰이 응급환자도 이송해?”라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해양경찰을 꿈꾸기 전 나도 국민들과 다르지 않은 생각이었다. 대학교 시절 해양경찰 관련 특강이 있었는데, 해양경찰 관계자는 “해상에서도 육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범죄도 있고 환자도 있어요”라는 그분의 한마디가 나를 해양경찰로 이끌었다.해양경찰에 투신한 지 햇수로 어언 5년이 되어간다. 1급 응급구조사인 나는 1년여간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구급’이라는 특별한 직별을 부여받고 해양경찰 흉장을 가슴에 달았다
동양에세이
동양일보
2020.04.07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