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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가봉(加俸) 폐지론(2)▷미즈노 “‘그래서 경성, 부산, 대구 같은 곳은 조선에서도 대도시인만큼 일본에 있는 다른 지방과 그다지 문화, 시설 면에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거기서 한 걸음만 더 오지로 들어가 보면, 실로 비참한 상태입니다. 의료기관도 없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따뜻한 위안도 없을뿐더러 불안감은 한층 더합니다. 특히 국경변방에 근무하는 관리는 밤낮 할 것 없이 위험에 처해 있는 실정입니다. 어쩌다 가족 내에 병자라도 생기게 되면 지금까지 저축해둔 돈 몇 푼까지도 송두리째 투자해야 하는 상태이므로 일본에 근무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8.04.0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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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방자치제▷미즈노 “조선의 통치방침 세 번째는 조선의 지방자치를 인정해 주는 것 이었습니다. 조선의 자치, 즉 홈-룰(Homoe rule)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지만, 지방단체의 자치는 그 상황에 따라 점차 이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인의 참정권에 대한 요구는 대단했습니다. 조선인이 요구한 참정권 내용의 골자는 조선인에게도 제국의회의 의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제국의회에 대의사(代議士)를 파견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보면, 일리 있는 의견이기도 하므로 적당한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8.03.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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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原)수상과 조선통치▷야마가미 “1919년의 조선 시정에 대한 계획은 하라다카시 수상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들었는데, 도대체 하라다카시 수상은 조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미즈노 각하께서는 하라다카시 수상과 매우 친밀하시어 시종 접촉하고 계셨으므로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는데,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미즈노 “하라다카시 수상은 당시 정치가들 중에서 조선을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내가 정무총감의 대명을 받들고 부임하려 했을 때 하라다카시 수상은 ‘조선통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8.03.0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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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역선전에 대한 대책그리고 세계 각 국(諸外國)에 대한 선전, 특히 미국이 우리 총독부 시정에 대해서 역선전을 하지 못하도록 방지함으로써 진실한 조선 시정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상당히 고심했습니다. 아마 다른 분께서도 조선의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는 하실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와 관련성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조선에 와 있는 선교사 중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그 첫 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분들은 덕망이 높고, 신앙심 또한 두터운 분들로 참으로 정성을 다해서 조선 민중을 지도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스파이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8.02.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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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의 취지와 민중의 이해▷야마가미 “모리야씨가 앞에서 총독·정무총감 양 각하가 부임할 때까지, 즉 남대문 폭탄소동사건(강우규 의거)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그 이후, 즉 착임 이후의 시설상의 제반 계획에 대해 계속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모리야 “앞에서 총독·정무총감 부임 때 돌발했던 남대문 폭발사건 부분까지 말씀드렸으므로 계속해서 그 후 실행에 들어갔던 시정상의 중요한 사건들을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부임 당시 남대문 역 앞에서 폭탄이 파열했던 사건에서도 상상할 수 있듯이 그 당시 조선의 형세는 매우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8.02.0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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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설 당시의 경찰 설비(2)마루야마 “그리고 나서 나는 탈것이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걸어서 우체국 앞까지 왔었지만, 총독관저로 가는 길을 잘 몰랐기 때문에 조선인 인력거를 불러 그것을 타고 관저로 갔습니다. 총독·총감 일행은 모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음을 알았고, 바야흐로 만찬이 시작되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한 후, 그 길로 물러 나와 경무국 사무실로 갔습니다. 경무국에 가보니 경무총감부를 경무국이 인계하였으나 책상 등등의 몇 가지 물건만 들어와 있을 뿐, 모든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어제 도착했기 때
조선통치비화
이충호
2017.12.1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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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제도 개정의 고심(2)▷마루야마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도내에 있는 큰 경찰서에 20~30명씩을 배속했고, 경찰서에서도 순사로서 갖추어야할 교양 교육을 시켰습니다. 마치 전장(戰場)을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3000명을 교습시킨 사실 하나만 보아도 실로 대단한 작업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자도 없고, 신발도 없고, 하물며 복장도 못 갖추었으며, 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서에 배속된 신규 순사들 중에는 둥글납작한 모자를 눌러쓴 자가 있는가 하면 학생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12.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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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병경찰에서 보통경찰로▷야마가미 “마루야마씨는 당시 경찰부장으로서 아카이케 국장을 보좌하면서 실력을 발휘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당시 헌병경찰에서 보통경찰로 옮기는 과도기에 이를 조직하고 배치하는 데 매우 고심하셨다고 추측됩니다. 그 때의 실제 상황을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마루야마 “제가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 임명되어 이틀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1919년 8월 22일이라고 생각되는데 동경에 가서 미즈노 정무총감을 만나 뵙고 이번 조선제도 개혁에 대한 결의와 조선에 부임하셔서 각하의 포부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11.1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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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점에서 개점으로(2)▷지바이렇게 결정되었지만 경기도 지사가 일체 책임을 지고 이 어려운 일을 과연 감당해 낼 수가 있을까가 문제라고 마루야마 사무관이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내가 전 책임을 지고 단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마츠나가 지사가 전임되어 그 날 송별회가 열릴 참이었고, 새로 부임할 고토(工藤) 지사는 평양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지사의 책임 일체를 경무국장인 내가 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즉석에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입니다.그 길로 나는 즉시 마츠나가 지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11.0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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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로 경무 당국의 솜씨 발휘▷마루야마 “드디어 10월 1일에 폐점을 실행한다는 사실이 명료해졌습니다. 저는 이를 총독부에 새 간부가 결성된 이후 첫 번째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폐점사건이 잘 처리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갱생을 위한 경찰의 위신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국장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젊은 사무관들을 때 마침, 내 생일이었던 9월 27일에 모두를 관사에 불러 모아 충분한 토의를 했습니다. 젊은 사무관들 중에는 폐점한다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10.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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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간략 소개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통치에 있어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는 이에 대한 대책 강구에 나섰다. 당시 하라다케시 수상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사이토 마코토 총독과 부총독격인 미즈노 랜타로 정무총감을 조선에 부임시켰다. 그들이 중심이 된 일제는 3년간 조선에서 ‘성공적인’ 식민통치 체제를 정착시켰고 그 사례를 당시 담당 국장들의 좌담식으로 정리했다. 이때 좌담 내용은 조선총독부 편집국에서 15년이 지난 1937년에 ‘조선통치 비화’란 이름으로 발간됐다. 이것은 당시 2차 조선통치기에 해당되는 이른바 ‘문화통치’가 어떤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10.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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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간략 소개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통치에 있어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는 이에 대한 대책 강구에 나섰다. 당시 하라다케시 수상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사이토 마코토 총독과 부총독격인 미즈노 랜타로 정무총감을 조선에 부임시켰다. 그들이 중심이 된 일제는 3년간 조선에서 ‘성공적인’ 식민통치 체제를 정착시켰고 그 사례를 당시 담당 국장들의 좌담식으로 정리했다. 이때 좌담 내용은 조선총독부 편집국에서 15년이 지난 1937년에 ‘조선통치 비화’란 이름으로 발간됐다. 이것은 당시 2차 조선통치기에 해당되는 이른바 ‘문화통치’가 어떤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09.1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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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 폭탄 소동다음날 오전 9시 부산 부두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접견을 마치고 그 날 밤 총독과 정무총감은 대지(大池)여관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아케이케, 니시무라 등 두 국장과 마루야마, 세키스이, 야마시다 등 세 부장들은 아침에 급행을 타고 경성으로 직행했습니다. 조선에서도 교토에서 받았던 것과 똑같은 정보가 입수되었는데, 조선의 형세가 정말 심상치 않았습니다.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부산·대구·경성 등 곳곳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 왔습니다. 이러한 처지였기 때문에 9월
조선통치비화
박장미 기자
2017.09.0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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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총감의 임명에서 부임까지(2) 미즈노정무총감 지휘하에 인사 진행 조선 32도 넘는 더위 속 콜레라 속출 서둘러 관제개정 주요 보직자 선발 노구치준키지, 경무국장에 내정 아카이케아츠시는 내무국장 승낙 일본인들 ‘조선행’ 좌천으로 생각 지방사무관 중 제3부장 선임 난항 이후 속전속결로 총독부 관리 발표 유능한 인재들 조선으로 데려와 총독 취임시 조선통치 홍보 필요하자 기자·육군관계자 초대회 등 마련 바쁜 일정 속에서 치밀하게 준비● 국부장(局部長) 임명과 인선그리고 즉시 조선총독부의 일에 대한 기초 작업에 착수하게 됐고 공식적인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08.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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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새 간부의 조직과 인선(2)경무국장은 경시청의 부장이었던 노구치준키치(野口 淳吉)군을 맡길 생각으로 노구치군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노구치군도 곰곰이 생각한 후 결국 승낙했습니다.이렇게 해서 내무국장과 경무국장은 결정되었습니다. 식산국장직은 니시무라야스키치(西村 保吉)군에게 맡겼습니다. 당시 그는 사이타마현(埼玉縣)의 지사로 있었는데 스스로 “미즈노씨가 조선에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전부터 매우 많은 신세를 졌던 미즈노씨를 위하는 일이라면 나도 조그마한 힘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만일 미즈노씨가 원하신다면 나는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06.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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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 좌담회 참석자-귀족원 의원 법학박사 미즈노랜타로(水野鍊太郞)-귀족원 의원 아카이케아츠시(赤池濃)-귀족원 의원 시바다젠사브로(柴田善三郞)-귀족원 의원 마루야마츠루키치(丸山鶴吉)-귀족원 의원 모리야에이후(守屋榮夫)-전 니가다현 지사 치바료(千葉了)-전 조선총독부 식산 국장 마츠무라마츠모리(松村松盛)-동양협회편집부 야마카미(山上昶) ● 정무총감 수락과 친구의 충고이렇게까지 수상이 결심을 굳히고 말씀하시는데, 이 마당에서는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단념하고 “이만큼 각하가 고심하고 계시고, 또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06.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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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회 참석자-귀족의원 법학박사 미즈노랜타로(水野鍊太郞)-귀족원 의원 아카이케아츠시(赤池濃)-귀족원 의원 시바다젠사브로(柴田善三郞)-귀족원 의원 마루야마츠루키치(丸山鶴吉)-귀족원 의원 모리야에이후(守屋榮夫)-전 니가다현 지사 치바료(千葉了)-전 조선총독부 식산 국장 마츠무라마츠모리(松村松盛)-동양협회편집부 야마카다(山上昶) ● 3.1 만세운동과 큐리박사야마가미(山上) : 1919년 3월에 조선 전역에 걸쳐 일어난 3.1운동 후 조선통치의 임무를 맡고 있던 분들의 고심은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의 일은 신문지상을 통하여
조선통치비화
동양일보
2017.04.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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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는 이충호 일본 구마모토 국제대 부이사장의 시리즈 ‘조선통치비화’를 매월 1·3주 월요일 특집면에 게재한다. 1937년 발간된 ‘조선통치비화’는 일제가 조선에서의 식민통치 성공사례를 모아 엮은 것으로 이 부이사장에 의해 편역 됐다. 동양일보는 당시 일제가 자행했던 만행을 소상히 알림으로써 독자들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에 도움을 주고자 그 내용을 지면에 게재한다. -내용 간략 소개일제는 1919년 3.1운동이후 일제가 조선통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됐고 당시 하라다케시 수상은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였다. 그 결과
조선통치비화
박장미 기자
2017.04.16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