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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지난 날, 지체 낮은 집에서 지체 높은 집과 여러 번 혼인함으로써 행세를 하게 된 양반을 ‘치마양반’이라 했다. 치마라는 게, ‘여자의 아랫도리에 입는 겉옷’을 이르는 말이라 남존여비사상에서 나온 말인지, 아니면 왕조 때, ‘벼슬한 양반이 조복(朝服)이나 제복(祭服)의 아래에 덧 두르던 옷’이란 말도 있으니 이에서 나온 말인지? 여하튼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이 엿보인다. 이렇게 치마양반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이나 모자란 걸 고치고 채워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당대에
풍향계
박희팔
2018.02.0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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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울남’은 ‘울’에다 ‘사내 남(男)’을 붙여 ‘울男’이다. ‘울기를 잘하는 사내아이’라는 말이다. ‘울녀’는 ‘울’에다 ‘계집 녀(女)’를 붙여 ‘울女’다. ‘울기를 잘하는 계집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둘은 반은 고유어이고 반은 한자어이다. 그런데 ‘울보’는 ‘걸핏하면 우는 아이’다. ‘우지’도 ‘걸핏하면 우는 아이’다, 사내아이나 계집아이 구별 없이 쓰는 말이면서 둘 다 고유어이다. ‘울기를 잘한다.’와 ‘걸핏하면 운다.’는 같은 뜻의 말이어서, 같은 뜻의 말이라면 시골사람들은 예부터 우리나
풍향계
박희팔
2018.01.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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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어깨’가 없는 사람은 없다. 짐승이나 새에게도 있다. 짐승에게는 앞다리에 붙은 윗부분이, 새에게는 날개가 붙은 윗부분이 어깨다. 그런데 ‘어깨’ 하면 사람의 어깨를 연상한다. 그리고 어깨의 좁고 넓음을 따진다. 좁은 어깬 여자고 넓은 어깬 남자라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또 어깨의 좁고 넓음은 힘과 비례한다고 본다.그래서 남자가 여자보다, 남자 중에서도 어깨가 더 넓은 남자가 힘이 더 세다는 게 사람들의 통념이다. ‘어깨깡패’ 라는 말이 있다. 넓고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
풍향계
박희팔
2018.01.0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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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이윤을 바라고 하는 게 장사다. 그래서 장사꾼은 오리(五厘)를 보고 십리(十里)를 간다고 한다. 사소한 일도 유익하기만 하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돈(이윤)에 대한 장사꾼의 집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사람은 다 장사꾼이다. 자기에게 이익 되기를 바라는 게 사람이지 않는가. 일을 하는 것, 공부를 하는 것… 등등 하나같이 다 그렇다.“할아버지, 할아버진 저처럼 젊어보셨지요?” “물론이지.” “그런데 전 할아버지처럼 늙어보지 못했어요.” “그렇지.” “그럼 저보다 그만큼
풍향계
박희팔
2017.12.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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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막내딸애가 제 신랑감을 따라 나가더니 영 들어오질 않는다. 딸애가 어제저녁에 내일 남자친구가 인사하러 올 것이라고 하기에 그저 그 말이 반가워서, 어 그러냐고 선뜻 대답하고 오늘 아침부터 기다렸다. 정말 데리고 왔는데 인상이 괜찮았다. 실은 괜찮고 말고가 없이 무조건 오케이를 놓으려던 참이었다. 읍내 전자회사 사무원으로 나가는 이 막냉이가 삼십이 4년이나 넘도록 시집소리를 꺼내놓지도 못하게 해왔던 터라 그저 눈치만 살피며 은근히 이때나 저때나 하고 기다리던 판인 데다 갑작스런 일방적인 통보이긴 하지만
풍향계
박희팔
2017.12.1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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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네 나이 지금 몇이냐?” “마흔 둘입니다. 근데 아버지, 새삼스레 제 나이는 왜 물어요?” “너 서른에 지금 딸애를 낳지?” “그랬지요. 그 미혜가 지금 열 두 살이잖아요. 근데요?” “서른이면 논어에 ‘이립(而立)’이라 해서 인생관이 설 나이라고 했다. 그때 딸 하나만 낳고 고만 둘 생각이었느냐?”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의 네 인생관이 딸 하나면 족하다는 생각이었냐 말이다.” “건 갑자기 왜 물으셔요?” “그렇지 않고서야 시방 네 나이 마흔 두 살이 되도록 십이 년 동안이나 둘째 애를 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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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2017.11.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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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두름손이는 오늘도 바스락 종이에 싸여 있는 사탕 다섯 알을 주머니에 넣고 나선다. 직장엘 가는 거다. 이른 아침밥만 먹으면 토요일 일요일만 빼고 나가는 곳이 있으니 그에게는 직장이다. 하지만 보수 없는 직장이다. 그래도 지역을 위해 봉사해 감사하다는 지서장의 감사장도 있고, 또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힘써주어 고맙다는 학교장(초등학교)의 감사장도 있다. 차량의 왕래가 제법 빈번한 지역의 초등학교 앞길에서 근 5년여 동안이나 등하교시간에 교문 앞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해준 대까(
풍향계
박희팔
2017.10.3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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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방 보아 똥 싼다’ 는 말이 있다. 뒤가 급한 사람이 뒷간은 멀고 급한 김에 신분이 낮은 하인이나 더부살이하는 사람의 방에다 볼일을 본다는 말로, 사람의 지위를 보아 대접을 달리 한다는 뜻이다. 세상살이에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 늙수그레한 마나님이 딸네 집을 다녀오다 마침 환갑잔치를 벌이는 양반집이 있어 요기라도 할 심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유흥으로 흥에 취해 있는 집주인양반이면서 잔치의 주인공이 차일 친 마당에 차려놓은 손님접대용 상차림 쪽을 얼듯 내려다보
풍향계
박희팔
2017.10.1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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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만 한 아우가 없다고 한다. 또 장남이나 장손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고 한다. 이건, 맏이는 그 아래 동생들보다 낫다는 말이다. 반면에 ‘무녀리’라는 말은 ‘문 열이’가 어원으로 즉 ‘엄마 뱃속의 문을 제일 처음에 열은 사람’ 이라는 말로서 곧 맏이를 말하는데, 그 뜻은 속된 말로 ‘언행이 좀 모자라서 못난 사람’ 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맏이는 그 아래 동생들보다 모자란 사람이라는 거다. 어느 것이 진짜로 맞는 것인지는 몰라도 둘 다 써오고 있다. 이것 말고도 다른 것들도 이런 양면성을 가진 말들이 더러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
풍향계
박희팔
2017.09.1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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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소설가) 지금 상추는 일 년 내내 먹는 사람들의 쌈 채소로 자리를 틀고 있다. 특히 돼지삼겹살과는 찰떡연분이라고 해서 꼭 붙어 다닌다. 그래서 영리를 목적으로 특수시설 갖추고 사시사철 재배해서 도시나 농촌으로 퍼뜨리고 있지만, 원래는 시골에서 농사꾼이 텃밭에서 길렀다. 가까이 있어야 그때그때 얼른 따다가 먹기가 편리하고 바쁜 일손을 줄일 수 있고 아녀자의 노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농가의 주음식이였던 보리밥에 얹힌 된장이나 고추장을 휩싸서 농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1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풍향계
박희팔
2017.09.0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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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시’라는 친구가 있었다. 10살 동갑인데도 정시는 나보다 훨씬 의젓했다. 말수가 적은 생원 타입으로 친구라곤 유일하게 나뿐이었다. 나를 대할 땐 늘 미소를 짓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정다운 표정을 보여 왔다. 네모 반듯반듯하게 인쇄해 놓은 것 같이 글씨를 잘 썼고 그림도 잘 그려서 나는 늘 정시를 부러워하고 그 부러움이 존경의 대상으로까지 번진 것인지 어느덧 그 앞에선 순한 양이 돼버렸다. 상급생인 4학년짜리도 두들겨 패서 ‘개고기’라는 별명을 달고 있을 만큼 억센 놈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성격이 서로 달라야 오히려 조화를 잘
동양에세이
박희팔
2017.01.22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