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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다 적시는가을나무 혼자서 쓸어내는이 계절이얼마나 외로운지 잎사귀 하나하나 다지구를 떠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1.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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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흔들었다 바람은 꽃망울을오늘도 흔들었다 바람은 잔가지를지금도 흔들고 있다 바람은 온 뜨락을 어제도 흔들었다 바람은 내 발길을오늘도 흔들었다 바람은 내 눈길을지금도 흔들고 있다 바람은 내 가슴팍을 꽃망울 열기까지잔가지 고목이기까지 내가 너이기까지네가 나이기까지 바람은흔들고 있다흔들리며 깊어지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1.0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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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흰 머리칼 환갑 넘은 자식 걱정 꿈 속에 자주자주 나투시는 우리 엄니 꿈 깰라엄니 꿈 깰라조마조마 조바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1.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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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노랗게 핀이지당에서국화보다 더 노랑나방 메고 온다섯 살짜리 꼬마를 만났다이지당 마루에 올라배 깔고 큰 소리로 동화책 읽던 녀석인사성도 밝다기분 좋은 녀석의 목소리에개울물이 노랗게 물들고주변 나무들도그 노란 물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도 여전히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이지당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1.0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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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짝짝 짝짝붉은 악마들 빠져나간서울시청 앞 광장 돌아 나와철거농성 하던 용산방면둘러보면 어디나 꼭 있는허름한 국밥집나무의자에 등 기대면고단한 삶의 이력履歷이 차려진다 산다는 게국, 밥처럼 한데 어울려진한 국물로 우러나는 것후루룩 한 세상 비워내는 것그도 아니라면미지근한 국물에 얹혀남은 인생 소리 나게 아작씹히고 마는 것 ‘깍두기 맛있는 집’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1.0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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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엉켜 있는 주홍 노을 한 장이너무 빠른 주검들을 따듯이 덮어주듯내 등을 토닥여준다한 바가지단풍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1.0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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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에빨간 구덩이 파고가부좌 틀고 앉아까마귀 기다리는노老스님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1.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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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부는 바람에떨어지는 나뭇잎처럼소용없는 다툼진보 없는 불평밥값도 못 되는 동정심떨구어냈으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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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장난감보고 싶은 얼굴먹고 싶은 것과하고 싶은 일. 눈 감아도 보여요. 잘못해서 혼난 일친구랑 다툰 일무서운 생각과몰래한 거짓말, 눈 감아도 다 보여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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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 생김새라든가 배고플 때의 표정이라든가 주로 오후 3시에 연락을 해온다든다 그런 식의 말이라면 내일 아침까지도 할 수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라졌다면 씻어서 엎어놓은 머그잔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빠져나갔다면 발자국이 어느 쪽으로 났는지 찾아낼 수 없다면 다시 시작하기 위해 뜨개질을 할까요 후추나무는 이제 건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서 있고 바람은 결심을 할까요 구름은 실족할까요 의자가 주춤 손가락이 주춤 이러다 탭댄스라도 추겠어요 주춤주춤 대문을 넘어선 오후 3시가 두 귀로 쏟아지고 있는데 나는 언제 사라진 걸까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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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씨 흔들리는 소리한참 만에에취!바싹 마른 고추가바싹 마른 할머니를 움켜쥐는 소리더는 못 참겠다는 듯마당가 개도취이!마주 보는 주름살다듬는세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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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내가 밖에 나갈라치면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왜 안 와?언제 와?늘 똑같은 두 마디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아버지도 아닌데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죄 많은 지아비라서나는 나이 든 아가의 아빠가 되었습니다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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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팔목에는 나무가 그려져 있어요 나뭇가지위에는 올빼미가 눈을 뜨고 앉아 있어요 올빼미는 몸에 새겨진 나뭇가지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줘요 문을 지나야 신에게 갈 수 있어요 그 나무가 없으면 절벽 밑으로 밀어버려요 나는 나무에 새겨진 이야기를 믿으면 뿌리마다 짙은 녹색을 새기고 있어요 안에는 날카로운 모서리와 각이 너무 많아요, 밖이 좋아요 안에서 이미 자리 잡은 입술들의 소리 나무도 종말을 믿는다고 해요 수십 개의 목을 흔들며 신의 소리를 흉내내며 선명해지는 흉터를 돌아봐요 내게 뻗어 와요 가슴을 지나 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몸을 빨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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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가 유난한 날유난하게 손잡는 날 일주일을 보상받거나일주일을 성스럽게 기도는눈감고 하는 것일주일을눈감는 것 * 기침 같은 사람들과의자 밑 발이 닳으면 무저갱(無低坑)을 생각하며발목에 힘을 준다 예언은획 하나 모자라니일주일로메울 것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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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견디다귓전을 타고 몰아치는 검은 폭풍을 삼킨다연애의 희열은 번쩍, 두려운 괴성으로 소름이 돋고입으로 코로 품어내는 주체할 수 없는 토악질빙빙 어지럼증이 심하다 점점 야위는 네 흔적에 닳은 갈고리를 뽑아내지 못해은하의 깊은 수중에 그리움만 또옥 똑까놓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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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순천에다 두고섬진강엘랑 긴 허리 걸쳐두었다 저녁 밥 연기 오를 때윤슬같이 빛나는 은어의 배 뒤집기 기술시작과 끝을 아무도 모른다는왕우렁의 배밀이에 대한 오래된 전설시암재에 눈 내린 4월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읍내 동아식당의 돼지족탕보다 구수한 이야기화엄사 홍매 장하게 피는 때눈물없이 들을 수 없다는 냉천골 어떤 사연 구례 시시콜콜 살림사 모조리 꿰고 있는 입은어디로든 가고 어디서든 오는 사람들에게만순천인 척, 천연덕스럽게 비밀을 토설한다는 것이다긴 허리 단단하게 매만지고강 건너 업어 나른 후에는 입가 싹 훔치고 다시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1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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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들어와 살 수 없는 당신은 자꾸이상한 음악을 만들어오고 흑단나무도 바이올린도 될 수 없소 나는당신의 선율이 아니라 전율 오래된 간장게장 속을 걸어 나온 꽃게처럼당신의 음악은 내 뱃속까지 쳐들어와 밥을 지어먹고잠을 자는 것인데 언제쯤일까? 내 몸을 내가 올라탈 수 있는그날은, 꼭 아팠으면 좋겠다 당신이 만들어온 이상한음악이나 들으며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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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술을 탱화 밑그림쯤으로 여기는 어머니가 묻는다.상추가 굴비처럼 억세지 않더냐?어머니, 택배요금보다 상추 값이 더 …내 투덜거림 다 내뱉지 못하도록 다물린 입술에상추 씨앗 놓는 간격으로 침묵을 심는다.내 입은 나와 나를 오가는 다인칭이 된다.땡볕과 밤이슬을 왕복한 상추이니회귀어 지느러미처럼 짓무른 자리는 도려내고 씹어라.내가 몇인지 모르는 어머니는 한사코입술 연주법을 일러주는 것이다.어머니, 전 이슬처럼 장엄한 밤을 다녀온 적 없어서복화술 할 줄 몰라요, 혼잣말로 대답하면상추 잎에서는 출가승의 발자국 맛이 돌고발자국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1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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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할아버지들과 샐리 할머니들 사이로가을의 새 잎들이 툭툭 떨어져 내린다 햇볕이 검버섯들을 공평하게 말려주는오후 네시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웅크리는 나무벤치들 둥글게 둥글게 짝 빙글빙글 돌아가며꿈을 입구로 들어와서 입구로 나가야 하는 여기서는 아무렇게나 지껄여도 된다모두가 함부로 살지는 않았으므로 빛이 바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 서로 모르는 채로해리 할아버지들과 샐리 할머니들이 낄낄거릴 때마다가을의 붉은 잇몸이 합죽합죽 열리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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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박스에서 눈에 뜨인 이것은잔뜩 서리가 끼어 있고깨물면 잇새가 아플 듯 하고 설렘은이토록 차고 명징한 것잡으면 이내 손바닥이 얼얼해서금세 놓아줘야 하는 것 얼얼한 심장 한쪽이설레는 무게는 딱 이만하고그것을 한 덩이로 얼리면 딱 이만하겠노라고 이 이름을 최초에 지은 이처럼 너는뜨거운 날한 덩이 설렘을 내게 내밀고나의 손은 열에 들떠 있고 쓰레기통에는설렘을 다 짜낸 튜브 같은 심장이함부로 구겨져 버려져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13 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