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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심장이,어느날 문득 내 안에서 가도가도 닿지않는 음악이 될 때몸속에 매달린 얼굴들문들길들해와 달과 별들이하나씩 그 음악에 풍덩풍덩 몸을 던질 때 잠의 내용들이나이만큼 지루하고 빤한 감상적인 줄거리가한없이 막막한 맥노리처럼 울릴 때 양 한 마리,양 두 마리,양 열 마리 백 마리 백만 스물 두 마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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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당신 때문에 울고당신 때문에 웃는 내가종려나무 줄지어 숲을 이룬남쪽바닷가 언덕에 앉아다시 당신을 기다린다붉게 물드는 해질 무렵의 바다멀리서 느릿느릿 드는 낡은 고갯배 한척닻배 봉기(鳳旗)에 오방기 매달고만선을 알리는 풍장소리 들리는 듯하다상고선(商賈船)이 먼저 다녀간 고깃배 들면포구에 시장 서고 물고기 펄떡일 것이다그렇게 해풍 몇 번 들고나면겨우내 언 마늘밭에실핏줄 같은 뿌리 단단히 내린 초록 오르고가을보리밭 푸르게 일어나잠든 어촌마을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다 비우고 다 털어낸 줄 알았는데내일은 해안도로변 동백꽃툭툭, 각혈하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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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스러질 때만 해도네가 너를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독수리가 날아오고파리 떼가 날아갔을 때만 해도불끈 솟은 갈빗대를 보며네가 너를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마침내 너는 땅으로 스몄다이듬해 봄 네가 엉겅퀴로 나오는 걸 보았다그러니, 나는 지금 짐승을 꺾는 것이다이것은 수액이 아니라 핏물이다짐승들이 바람에 목을 길게 늘이고 흔들리고 있다한 떼의 꽃들이 짐승을 밟고짐승 위에 똥을 싸며 걸어가고 있다꽃들이 넘지 못하는 철조망 너머까지천연덕스럽게 짐승들이 번지고 있다꽃들이 짐승을 꺾어 먹다가초원 너머까지 질주하고 있다도시의 꽃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0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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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 쪽으로 난 굴다리 앞에서였다. 내 앞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걸음이 느린 여자가 보였다.저만큼 이쪽으로 유모차를 끌고 오는 중년 여자도 있었다.좁은 길에서 유모차 두 대가 잠시 멈추더니반갑게 인사를 나누고서로 다른 길로 비켜갔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유모차엔 고양이 한 마리빤히 나를 올려다보았다.걸음 느린 유모차를 앞질러 보니 강아지가 한 마리그 속에 앉아 있고, -고관절이 안 좋아서 유모차를 끌게 한 거라고-당뇨가 심해서 새벽 운동을 시키는 거라고전생에 사람이었던고양이와 강아지의 대화를 아까 들은 것 같았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0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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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들어서는데갈참나무가 도토리 한 알을 툭 떨어트렸다산의 심장 소리가 쿵쿵쿵떨어져 쌓인 나뭇잎에 얹혔다 삼년 만이다어떻게 지냈냐고 묻질 않았다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린다나뭇가지 사이로 희끗희끗 떨어지는 눈발그와 함께 앉았던 그루터기엔낯선 새 한 마리 혼자 앉아 있었다 자작나무가 등을 두드리며혼자 가야 할 길 멀다고저무는 햇살 불러내 손을 잡아주었다산이 긴 그림자로 따라 나섰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0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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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이파리들이얼굴 맞대고 조곤조곤세상사는 이야기 나눈다따가운 햇살에 이마 그을릴까이파리 뒤집어 그늘도 세우고가지마다 들어설 열매를 위해다붓다붓 머물 자리도 만든다감나무 잎이 계속 흔들리는 건신나는 저들의 이야기 때문이다그 사이 감꽃이 피었다지고개미네 식구들이 들렸다 가고무당벌레 아저씨도 머물다 갔다한낮에, 굴참나무 숲으로 마실 나온뻐꾸기 아줌마도 궁금하다며목청 높여 연신 안부 묻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0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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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은 되어 보이는한 여자가 웃는다활짝 웃는다 지난주에 알려 준 시가하도 좋아외웠다고 하더니제목 한 줄만 말하고조용하다그저 소리 없는 웃음만그 웃음의 의미를 아는나도 웃음만그 의미가 먼저 다가온다 기억 창고가 어둡다달랑 세 줄의 시인데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10.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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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이 가볍다분분하게 수선떠는 사이무대에 올라 나풀거리는비행을 만났다질펀하게 둑을 거슬러가도록시절 지난 관객은 낯설 뿐무심의 벽은 휑하니허공에 걸터앉는다바람은 바람대로길을 내며 간질이고날개는 날개대로햇살을 매달아늦은 초록에 걸려덤불을 따라가는 순간가을자리 하나 앓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3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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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머금고 피어나는국화꽃 울타리 너머로찬송 소리 들렸지무더운 여름 가고높고 푸른 하늘시원한 가을벼이삭이 고개 숙여황금물결 이룰 때참새 떼 아침 일찍찬송가를 부르며가을을 만끽하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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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 거느리고땅 속 깊이 살아온못 다한 말제 몸 시윗줄 당기면서띄우는 가을 연서 잃어버린 내음새쓰라린 상처 도지는가냘픈 소리 마음 부추켜 세우면돌아올 수 없는먼 길 울음 터뜨리고사랑은 꿈처럼 퍼져간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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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종이 분주하게 울린다대추 밤 감 사과탐스럽게 자리매김하고오늘의 초대손님을 기다린다한울 가족들 이야기꽃이 핀다둥근 달이 뜨면 송편경상도는 그저 꾹꾹 눌러 남성의 성격 드러내고충청도는 내숭을 떠는 반달깨고물 콩고물 밤 고물다양한 식성 따라 생김도 갖가지조카는 깨고물나는 콩고물동생은 밤 고물살아가는 모양도 각각 다르니이러한들 어떠하리 저러한들 어떠하리수수방관짜고 매운 욕심 둥근 달에 담아내는그저 넉넉한 그런 사랑 떠오른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2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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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후는 쓸쓸함이 입을 여는 날이다오빠와 요양사 아주머니는 병원에 가고나는 무력하게도 나른한 오후에 빠져든다텅 빈 방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창밖 풀벌레 소리다별이 떨어지고수줍은 카나리아꽃 모가지가 뚝뚝 떨어진다저 심연으로부터 바닥을 드러내며 날아오는 고독감저 하늘에서 고갱이를 드러내며 날아오는 존재무상감혼자 있다는 것은 신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고혼자 있다는 것은 바람 없는 깃발과 같은 것이다바람은 지금 병원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터슬픈 삐에로 같은 시간이 방바닥에 나뒹군다나는 외로움을 배반하고 낮잠이나 자려한다쪽잠이라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2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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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든 잎 노을은 한 끈순수가 가을을 걸쳐여인이 붉은 빛 입을 때우수는 속 깊은 숙성적갈색 먼먼 이별 앞에철학이 된 한 때 입상.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2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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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슬 오솔길을 동틀 때쯤 내친걸음사투리 흠뻑 배인 느린 길에 실려 간다첫 새벽 여섯 갈래 길 장이 서는 석교동. 닷새를 헤아리며 산 구비 도는 길에벙시레 피어나는 어린 손주 아른거려산마루 숨차 오르는 거 떡갈잎에 숨겼느니…. 주름살에 고인 시름 고쟁이에 쓸어 담고눈썹달 외로 비낀 귀갓길에 오른다기러기 울음소리에 떠오르는 아가 얼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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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되 기대지는 말자우리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곳은생(生)을 담은 여행 길 뿐이니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깝지 않게대웅전의 기둥들도 너무 가까우면지붕을 떠받들지 못하나니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자그러나 너무 가까이 붙어서 가지는 말자하늘의 별들도 너무 가까이서 운행하면별 없는 하늘을 만들거니꿈을 꾸되 서로 같은 꿈을 꾸지는 말자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서로 다른 꿈을 꾸되 숲을 이루나니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1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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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보살사에 가서 보아라여름내 뒤척이던 바람솔숲으로 몰고 와맑게 합장하는 풍경 소리를그렇게 몸 바래며끝없이 높아간 하늘을또 보아라한세월 무성하던 이파리곱게 물들여희디흰 물살로 떠 안고 가는석간수를, 뿐만이랴버릴 것 다 버리고뿌리 하나로 겨울로 가는밑바닥의 온갖 것들을보아라, 기라하여 그 위로향기처럼 스미는부처님의 미소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1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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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을낮으로 사는 뿌리째 뽑히는 태풍이 불어와도 잎은떨구지 않는 바늘 찔리듯 떨고 지탱하고 있는 다리에힘을 주는 아픔을 속울음으로 참는 험한 산을 넘는 고비의 나이테를촘촘히 두르고 서 있는 둥지를 지키면서도 때로는새처럼 날고 싶은 아버지가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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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고탓하지 마라.오직 똑 바로 선 자가흔들릴 수 있나니. 부러진다고탓하지 마라오직 한 자리만을 지키는 자가부러질 수 있나니. 나무가 그렇지 않더냐.꽃 대궁이 그렇지 않더냐. 쓰러지지 않고 홀로 죽음을 맞이 하는 자.죽어서도 눕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받들어겸허히곧추 서 있는 그 자.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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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의 달빛이화살로 박힌다하나의 달이별실에서 쏘아대는과녁이 된다 흔들어흔들어 빼낸 상처에아픔이 고이고버린 듯말하지 않고 가는슬픈 이야기가 달에 꽂힌다 투병에 지친 병실창 넘어온 달빛에서미소를 찾아보지만마음을 뚫고 더 날아가추석 명절에 어둡게 박힌다 한가위 밝은 달빛눈에서 가슴까지통증의 선을길게 긋는 화살이 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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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비누에 하루살이 박혔네하루를 평생으로 산 흔적화석으로 남고 싶었을 거야그런데 어쩌나일생을 깨끗이 살고자 하는 가족에게찬물과 더운물로 비누는 침식하는데혹, 다 닳아 없어지기도 전눈 어둔 아버지가 머리 감으시면서쓱싹, 쓸어버릴 수도 있겠네 향기롭게 기록되고 싶은 내 살갗은비눗물 닦아내면서 거칠어지겠지가슴에 새겨졌던 흔적, 언젠간기쁨과 슬픔에 섞이어쓱싹쓱싹 쓸려 가버리겠지그리고, 그렇게머리카락에 쓸려져 간 비누 같은 나날눈에 밟혀 퇴적되어가면화석으로 남을 매은 눈물 흘러 넘치겠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10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