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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달빛에 걸렸다재빨리 그물을 올려라외마디 소리 지르는 바람외면하던 별들이 쏟아져 그물에 매달린다그물은 힘이 세다자주 밀어낸 상처도 건져 올린다건져 올린 달빛이 파닥파닥편들던 별빛도 파닥파닥허구렁에 갇혀 요동칠 때 수없이 떨어지는 비늘,시간이라고 명명한다입술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고눈은 멀어진 지 오래이다 떨리는 은빛들이 물고기였다는 사실 달빛은 자유를 찾아 날뛰지만달빛을 은폐한 사각 어항은출구가 하늘로 열렸다불안한 요동이 잠들고 하늘이 열리고현상이 사라지고 모오든 그림자도 사라지고,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0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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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건너면서 호수는 순해졌다변덕스런 하늘을 품느라 물빛은 더욱 짙어지고흐름을 멈춘 수면이 거품을 물고 있다미루나무가 허공을 끌어와 꼭짓점을 세워 보지만하늘은 여전히 아득하다물푸레가 동면한다는 계곡을 달리면서마음만 바빴던 날들이 가파르게 남아 있다간혹, 하늘의 연서를 빼곡히 받아 적다가도한줄기 소나기일 뿐임을 앎으로둥글게 둥글게 지워 나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수직을 벗어난 미루나무잎의 평온한 배영, 그 아래로수몰된 누군가의 고향이 출렁거리고 있다 호수가 환한 등줄기를 곧추세우고노을 속으로 걸어간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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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사라진 자리에고요가 움트는 신생의 시간가위로 어둠을 오려냈더니거기 적막 한 채 보인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규격이나 틀도 모르고거침없이 형식을 파계하고석 달 열흘, 무엇에 흘린 듯 적막강산에 지은, 시의 집적막 한 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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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파도가 된 걸까내 시린 등 때리면흔들리는 물너울절벽을 후려쳐, 후려쳐무슨 꽃을 피우는지하얗게 부서지는 꽃향기아득한 수평선 바짝 끌어당겨날개돋이 끝낸 완강한 그리움천길 절벽을 넘어하늘을 치솟아 오르는 파도눈 푸른 새 떼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날아가는슬픔의 힘!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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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나를 보게 허용한다빛이 나를 본다빛에 의해 내가 드러난다그 빛 앞에 선 내가 저절로항복이 된다무릎이 절로 꿇려졌다는 건내 에고의 능력이 힘을 잃었다는 거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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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을 등지고 허공이 허공을 받아내는 일 마른번개 끓이던 소리는 잠깐,눈 한번 질끈 감았을 뿐인데 당신이 멈춰 선 동안은 나도 멈춰 선 사람슬쩍, 등 떠다밀고 싶은 야릇한 진심으로 왼발에 몰두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때부터이름이 사라졌습니다, 벼락나무 빛이 태워버린 나이테의 방향을 따라산 채로 죽은 나를 나는 어떻게 증거해야 할까요 당신은 나를 당겼다, 풀었다, 돌아서기를 반복합니다너럭바위 아래 깍아질러 절벽알 수 없는 입구가 미혹입니까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0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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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부서지는 사람들은 오세요 흐르는 물결 위에 반짝이는 노래를 싣고갈 길 물어 찾아드는넉넉한 물길 바라다보면서로가 서로에 엉키어 살아가는그것은 아무런 일도 아니겠지요 한바탕 어우러지는 진도아리랑에 흥이 돋고황구와 백구가 나란히 서서온종일 꿈에 잠기는 다리 위로그리움에 젖은 눈길 떨구고 있어요 푸른 장막 거두어질 때까지역사의 소용돌이 휘몰아쳐때때로 심장을 겨누는 울돌목에 서서서로가 서로에 부딪히며 살아가는그것은 아무런 일도 아니겠지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9.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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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이 피면야 나는,누님 곁으로 갈란다. 고추잠자리 등에 업혀누님 곁에 가서자지러지게 한바탕 웃어 볼란다. 꽃이야 피면야그곳으로 가서누님 한번 후드러지게 불러 볼란다.서럽게 울어나 볼란다. 달빛마저 끌어다가파도로 몸살하게 하고 눈이나 풀풀 내리면실컷 얘기나 해서죽어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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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8.3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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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압구정동 대로변에하얀 목련이 막 벌어지고 있는그 골목으로 접어들면모자 가게 하나 그림자처럼 앉아 있다낯바닥만 한 간판이 수줍은 듯 달려 있고진열장엔 이쁜 것들이조용히 명상에 잠겨어쩌다 골목을 기웃거리는 노신사나때깔 고운 할마씨를 기다리고 있다눈매 고운, 꼭 목련을 닮은 여주인이눈가의 잔주름 한 올 한 올 풀어서재봉틀 돌돌 돌려 수제 사랑을 만든다석양 햇살이 그윽하여모자 하나 쓰고 싶은 날이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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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차갑다고 느끼는 것은가슴이따뜻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려오는 밀물을맨발로 마중하지 못하는 것은가슴이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울지는 파도의 속내를읽지 못하는 것은온몸으로바다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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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은 바짝 약이 오르고6남매가 모였다한철 끊겼던 소식 다시 이어지듯오래 전 이 집을 지을 때가 생각났다그때 우리 모두는 기둥이라고귀가 닳도록 들었다정말 기둥인 줄 알았다그 후 기둥들 다 빠져나간 집은그것 보라는 듯 기울어져 갔다 고추밭에 있으리라 여겼던 어머니가옆방에 누워있다빨갛게 고추는 약이 올랐는데첫물고추들이끙끙 앓으며 마르고 있었다이렇게 ‘매운방’이 있다는 것을뒤늦게 알았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2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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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베고 누우면별자리도 자리를 튼다적막의 끝을 잡고한 생각 종지로 밝히면구천동九天洞 여문 물소리가산을 끌고 내려온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2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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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며꿈쩍도 않는 바위라도닳고 닳아 코끼리가 되고 천상의다리가 되는데입술은, 한 잎 같은 입술은 감미롭고사랑을 잃고 떠나도 남는 건입술, 낭떠러지 같은 슬픔 속에서도손가락, 입술에 대고 있으면담대가 그렇듯 저 심해와도 같은바다의 궁륭으로 들어서는 듯궁색하고 무거운 몸한 잎으로 거두어 잠기고 있는그런 기분 알까 몰라그러니 사랑할 때 사랑해야지내가 들고 나지 않으면 광할한 바다마저텅 빈 객석이거늘사랑에 눈이 멀더라도 좋아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2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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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선이맘때 그곳에는벙글어 터지고만아까시 몽우리들몸 달은 햇살달래며산자락 풀어헤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2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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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울음 가득한 여름날텅 빈 집갑자기 들이닥친 소낙비칠흑 같은 어둠이다가언제 그랬냐 싶게또다시 매미가 울고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작은 바람에도 여닫히는 부엌문배고픔으로무서움으로 가위눌림에 뛰쳐나와파란 감꼭지가 뒹구는 골목길 서성였지여름날의 그림자는그렇게 사방 뚫린 구멍으로지금도 날 들여다보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2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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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불에여름을 끓이다 지쳐나앉은공원 그루터기벤치 뾰족이 빼문 입으로주절주절조잘조잘주절주절 조잘조잘더운 숨소리 쏟아낸다 시야 기득온통 짙푸른 녹음 속소나기 한 줄금애타게 기다리는 마음들 무슨 수로목백일홍혼자 붉냐고꽃 피우냐고 매미까지 거들어왁자지껄깊어지는여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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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눕기를 좋아한다내 무릎에 누워못생긴 내 얼굴 쳐다보기를 좋아한다내가 검정색 츄리닝바지를 입는 날이면어김없이 다가와 기어코 내 무릎에 눕는 아내는내가 친정아버지란다나처럼 단신이었던 장인어른이 물려주신유난히 짧은 츄리닝 바지를 입노라면아내는 내 무릎에 누워재롱을 부린다쉰 넘은 아내가 나보고 친정아버지라며해해해웃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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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수줍게 그냥 하는 말바다에 나가면 친정어머니 같이 항상 주시잖아요.찰진 파문(波紋)을 일으키는 구릿빛 민낯바다가 그녀의 말 따라 그냥 수줍게 웃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1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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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가 유배지 탐라에서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을 무렵, 난 필리핀 루손섬에서 세온도(歲溫圖)를 그렸다 세한도의 소나무 대신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망고나무와 파파야나무 그려놓고 초가 대신 바파이쿠보를 그려넣었다 그가 세찬 바람과 눈 내리는 탐라에서 독한 술을 마실 때, 나는 바닷가 카페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추사가 그림의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기개를 바랐으나, 난 열매 맺어 가난한 나라의 사람에게 주는 나무들의 풍요로움을 간절히 원했다 추사와 난 따로 기나긴 겨울과 여름을 지내며 고독했다 그랬다, 언제 어디서나 유배자여서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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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맑은 곳일수록햇살 밝은 날일수록 내 삶의무게만큼내려놓고 산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12 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