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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사과를 깎는다왼손으로 사과를 깎는다칼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집게손가락을 주로 사용하여왼손을 움직일 때마다긴 껍질이 바닥으로 떨어진다괜한 불편함 같은 껍질이바닥에 떨어져 둥글게 헝클어진다나는 사과를 깎을 때오른손을 사용한다칼날은 안쪽, 나를 향하게 하고주로 엄지손가락을 사용하는데,2년 전 베트남에서 온 그녀는다르다 영 다르다안 그러려고 해도 아직뭔가 불안하고 어색하고 거북스럽다어느 쪽으로 깎아도 매한가지인데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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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날뛰며, 젖을 빨려 하는어린 새끼를 걷어차고 만다 비칠비칠 일어나 다시 어미 곁으로가는 어린 새끼, 이젠 제대로일어서지도 못한다 젖을 먹지 못해 안타깝게 사그라드는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마두금 연주가 시작된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애잔하게 흐르는 음악어미가 차츰 조용해지며 두 눈이잔잔해지더니 큰 눈망울 가득 눈물이 고인다 가만히 젖을 내어주는 어미실컷 젖 먹고 난 새끼서로의 눈빛이 따뜻하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1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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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파도가 친다고배를 타고 떠난당신의 너른 바다는 이제 고요한지 당신이 떠나고 말자이른 밤부터 파도는 치고내 무거워진 닻은 심연의 바닥에 내렸다 비탄의 물결은 바다에 넘실거리고번민의 바람은 아직 가슴을 휘두른다어둠을 덮치는 수천의 물방울이여저 벼랑에 내걸린 가슴에서 부서져라 용광로에서 끓던 붉은상념의 그림자는한 치의 언덕을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나 물결치는 절망이며 아픔을 단속하자이 쓸쓸함이 모두 캄캄해지면불덩이를 안은 어화가 눈앞에 일렁일 터이다 겁 없는 뱃머리에서거친 닻을 다시 끌어 올려라다시 파도치는 너의 바다로 가자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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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향해 반쯤열어 놓은 미닫이문돌담에 어깨 기댄느티나무 해묵은 그늘포도밭 일 나가는아낙의 발자국 따라또르르 잎사귀 하나마른 가슴에 품으면잠깐씩 머물다가는양털 구름 사이로생각날 듯 말 듯입언저리 맴도는 이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0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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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밑 봉숭아 비 맞으시는 소리첫 키스의 아련한 추억처럼금세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멀어져 간다. 지상엔 숟가락 하나 올려놓고언젠가 자유 낙하의 꿈을 꾼 적 있었노라고누군가 어미의 심장을 뚫고담 밑 꽃씨 심은 적 있었노라고 비 내리지 않는 여러 날어미는 원래 심장이 여럿이라네저녁 산마루 붉은 해가 저물도록손톱 밑 붉게 물들도록비를 뿌리신 것이었노라고 담 밑 봉숭아 비 맞으시는 소리눈망울 붉게 적시는 소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0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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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에 소주를 마시니새벽별이 떴다야택실 기다리는 저 사람들도노래 소리가 작아졌군가로등은 너무 밝아서고갤 숙이고 있는 것 같아달리는 새벽바람이아침신문을 스치네너는 날 다시새벽으로 데리고 왔어야등 굽은 청소미화원은수도승처럼 거룩하지 않은가 국밥집 유리창 앞에 앉은새벽 거리가 내게눈물 같은소주를 또 붓고,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8.0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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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안개 속 올라오는 해가 한 점 꽃잎이다 자세히 보거라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남쪽바다 손바닥에 사탕처럼 올려진 해가 바다를 왼종일 잡고 있구나 가라앉을까 바다를 물어올린 갈매기도 수평선에 걸쳐 날고 흔들리며 찍힌 바다가 넘칠 듯 출렁출렁 갈매기도 나도 출렁출렁너는 기진한 몸 일으켜 바다나 실컷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 누구도 바다엘 데려 가질 못했구나 심해물고기처럼 점점 가라앉는 너를 잃고서야 알았다 죽음은 이렇게 가라앉는 거라고 서서히 손을 놓는 거라고 힘을 떨구는 네 손을 잡고 바다를 불렀다손금에 나무집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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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8.0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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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에보리씨 뿌리고봄비 뿌리고 , 오월은보리꽃 피는 언덕이 될 것이다 제조체를 뿌리지 않으니어지럽게 얽혀져 좋아하는 풀꽃들 아직 계란꽃과 천인국은키재기를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슬처럼 내리는 여름 산그림자연못가에 벗과 마주 앉아돼지고기 한 근에 소주 한 잔 기울여 감사하는 삶풀꽃 더불고저물어 가고 있는 늙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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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8.0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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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해도 내 멋에 산다장애물 달리기 촘촘한 그물이제부터 천천히 가자 천국보다 半휴일이 더 좋은묵시의 숲산과 길이 만나 고개 너머로 숨더니이제 보인다 가슴의 새들과 가벼운 술집을 짓고나무처럼 흔들린다휘파람 불며금요일 오후 향기로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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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7.3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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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나를 버리러속리산에 간다일주문을 지나며너무 많은 나를일주문 밖에 세워둔다내가 아닌 내가오리 숲을 걸어간다내가 아닌 나를새소리가 따라 온다물소리도 따라 온다소나무도 참나무도 따라 온다법주사에 들러미륵부처님께머리를 조아리는데무수히 많은 내가나보다 앞서 미륵부처님 앞에머리를 조아리고 있다나는 더 많은 나를 데리고속세로 돌아온다△시집 ‘꿈속에서 기어나오고 싶지 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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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7.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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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모습으로 돌아보지 말자어제의 무관심에 깨어져 버린입버릇처럼 말해 왔던이루지 못한 꿈들은 이제들추어 내지 말자 먼 길 떠나서른하나의 여름을 달려온이 땅덩이 위에 이제나만의 자국을 남겨야 한다 울음 그친 바다만큼이나그 바다 위벌거벗은 바위만큼이나홀로 지켜서야 한다 지친 모습으로 돌아보지 말자바람은 새들의 노래를 전하고연약하던 잎들은여름 볕에 저렇듯 푸르른데-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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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가지 찢어지네야생의 문살은 얄궂게도이냥 산으로 굴러다녀하얗게 바람나는 산조팝백약을 뿌리쳐 하산한 향기는요염의 추임새를 내려놓고여름을 밀회하려는 참인지허방 짚은 달님은만행이 풀릴 때까지별을 채우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2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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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는지방의 라디오가 있어서음색 짙고 다정한 디제이는오래된 유행가를 연달아 내보내고여인은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길가에서풀잎을 어루만지며 걷는다 꽃비처럼 내리는 전파가 머리 위에 쌓이면지방의 여인은 노래가 된다꽃잎은 분홍이고 사랑은 멀어서뒤뚱뒤뚱 걸어가는 그녀는때때로 눈물도 웃으면서 흘린다 산기슭 따라 구불거리는 길에는숨겨진 그늘이 있어잔가지가 많은 초목은 풀내음이 짙다 여인이 걸어가는 그곳은크지 않아도 시내라 부르고많지 않은 사람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며낮은 지붕의 집에는 방마다 불빛이 노랗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2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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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방지벽에 제 몸 묶고빗방울 채찍 온몸으로 견디는 이교도들상처에 맺힌 핏물빗물에 씻겨 흐른다십자가 위 기분의 모습 이랬을까허공 향한 여린 손아귀엔믿음 한 웅큼 들어있다기어코 그분을 만나려는 건가떨어질 듯 하늘 향한 발걸음푸르고도 붉은데목울대로 삼킨 구도가능소화 몇 송이 환하게 피운다 저 눈물겨운 푸른 몸짓여름이 간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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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죽고 고등얼 팔았어 뭐 달리 할 게 있어야지 자식들은 싫다는데 난 이 비린내가 좋아 달빛에서도 다 비린내가 난다니까사남매가 다라이에 올라앉아 칭얼대는데 고등언들 온전했겠냐구 이리저리 뒹굴다 밤이면 끙끙 앓는 소리를 하곤 했지 그때 내 나이 갓 서른 댓이었는데 치근대는 남자가 왜 없었겠어 늦은 밤 사립문이 흔들려 나가보면 마루에 쌀푸대가 놓여 있곤 했지 남편 친구 김씨였어 그때만 해도 죽은 친구 식솔들 챙기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밤 미친개처럼 마구 달겨드는 거여 넵다 다라이를 뒤집어 씌웠지 달도 놀란 눈으로 내려다 보더라구땅에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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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지 못한 채 두근대는창고 같은 귀귓불부터 발갛게 부풀어 오르는 백열등 잠결에 돌아눕는다뒤척일 때마다 출렁거리는 말어둔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아베개를 고쳐 벤다 당신이 한 말에 갇혀 밤새파르르 떨리는 필라멘트 연분홍 실핏줄 심장이 두근거린다햇살에 비춰 본 귓바퀴열쇠 모양 귀걸이를 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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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가끔 나에게 말한다-내가 니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내가 엄마 속에 들어갔다 나왔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1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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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간 전구를 오래 바라보고 있을 것자판기 반환구에 이따금씩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모두 털어둘 것토끼에게 콘택트렌즈를 먹이로 줘볼 것오랜 줄을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었을 때 돌아서볼 것아는 길을 물어, 물어 찾지 못해 헤매어 볼 것제 살 어딘가를 딴 곳 인 듯 오래 깨물어 흔적을 만들 것도통 알 길이 없는 외국어로 강의를 경청해 볼 것물어뜯은 손톱 대신 먼저 웃을 것책장에게 물을 줘볼 것모르는 사람을 향해 내 이름을 힘껏, 불러 볼 것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1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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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오래된 길 끝에서자꾸만 뒤돌아본다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골목은푸른 대문들이 만든 견고한 뿔올리브 열매는 꽃과 잎새의 뿔갈라진 뿔의 흔적은 사슴의 나이뿔은 뿔과 만나 뿔이 되어안으로 향하거나 밖으로 향한다자유롭거나 고독한 뿔이 된다뿔을 지운다는 것은 흔적을 지우는 것뿔을 본다는 것은 뿔과 정면대결 하는 것한 노인이 뿔을 이고느리게 푸른 새벽 속으로 걸어간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1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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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가 복사를 한다.숱하게 많아진 가로수 나뭇잎들햇빛을 한 장 두 장 복사한다.찰칵찰칵 나는 경성시절 남대문 시장 사람들 복사한다.젊은 엄마 스란치마 입고흑백 사진 찍던 남대문시장이내 기억을 한 장 두 장 복사한다.가만히 생각하면사람은 사람을,하늘은 하늘을,바람은 바람을,생각은 생각 없이 사는나를 많이도 햇빛 빌려 복사했다.지하철을 타면 지하철이성냥알처럼 쏟아지는 사람들을 복사한다.하루에도 수 천 미터나파고들어가도 바닥이 나지 않은하얀 기억 속에서 나는남대문 시장 사람들을 복사한다.햇빛가루 듬뿍 넣어서잔치국수 같이 먹었던젊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7.13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