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은 발을 버들치에게 먹여본 적 있다발가락을 젖처럼 빨아대는 간지러움 여름그늘에 앉아 발의 각질을 떼어개미들의 점심으로 준 적이 있다 어쩌면 똑 같이 늦되도록 젖을 무는 형제들입가를 옷소매로 씻기던 저이의 젖꼭지는저며졌으리라 오래 전 아버지처럼 식량 한 짐을 지고절벽의 논배미를 넘어가는저이가 오늘의 가장이리라 아, 이들도 시린 껍질이 없는 발에키스하지 않는다붓지 않는 발을 믿지 않는다
눈 떠라 내 아기새로 눈 떠라울고 울어맑은 노래울음이 꽃이란다노래가 날개란다 엄마에게 배운 말강이 되고날개가 되고눈 떠라 내 아기하늘도 따라 우는새 울음을 울어라
분홍 거미줄 같은 것이라고 어떤 마음이 잡아서 뜯어내고혀가 말려들어가는 벽을 일구는 것 같아 숨은 달력을평평하게 다듬어지는 숫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저녁의 넓이로숨구멍을 닮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이상하고 기이한 몸서리 부표흙으로 돌아오고 싶은 기념일 의자에 묶어놓은 하얀 풍선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 피곤해지는 나쁜 습과으로 눈을 찡그리는안경을 벗고서 보는 옷 입은 숫자들 아름다운 날은 언제 또물방울을 넣어둔 벽은 나비를 흘리고 리본을 낳고하얀 손을 잡은 꽃이 사월의 창으로 늘어지고 허물어지고
뽕나무 한 그루 베어진다.너도밤나무 개복숭아나무 돌배나무모두가 이름 잊은 채밑동 잘려 나가는 것바라보고만 있다. 뽕 대신 실한 오디를언제 잘려 나갈지 모를묵은 가지에서 내어놓는데생전에 누가 너의 본 이름을한 번이라도 불러준 적 있느냐. 평생 날품으로 살아가는 애비를 둔 내가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오디나무야오 디 나 무 야!
밤새워 지으시던 세모시 하얀 적삼 한평생 애지중지 재봉틀 남겨두고 월계화홀로 피우시다훠이훠이 가신 엄니. 채송화 올망졸망 노랑나비 놀랑놀랑 여름내 다듬이질 마주 앉아 다듬다듬 울 엄니다듬이소리어이 두고 가셨나요.
나는 이제 그대에게 맞춰졌습니다 늙은 일이 수월합니다 저절로 갑니다 마흔 넘어가는 시간은 영롱하여 꿈 속에서도 눈을 뜹니다 소리도 무르익어 적막합니다 사랑도 굳이 용기가 필요 없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거나 뒤에 남아 애태우거나 보채며 걱정하지 않으니 이 영원한 현재를 두고 어찌 시간이 없다는 말하겠습니까
햇살 부신 아침그리움이 눈을 뜬다내게 오는 넌맑은 실핏줄로 흐르는 위험이다한 치의 헛디딤도 없던 나눈 깜빡할 사이에슬픔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눈물이 번지는 줄 모르고 그리움 밟는다푸른 그리움 시작되면기척 없는 바람 보듬는다침전된 마음 한복판을 빠져나온집요한 생각의 줄기가홀로 뜨겁게 입김 드러낸다
몸살은 적막하다연잎이 연꽃잎을 받아내듯제 몸의 살점 하나도 소중하여저 만나러 오는 바람까지도 아끼는 일그렇게 바람을 감싸 안는 것욕심을 비우면 면적을 넓혀가는 일 여름,몸살은 달콤하다떨어진 꽃잎 멀기도 전에제 그림자 비추어 절정의 순간을 기억하는 일꽃 진자리 바리때에 연밥을 채워 가는 일다음 생을 위해 뿌리의 힘을 키우며무게를 비워가는 일 하여, 몸살은 하안거 중이다
토란 옆 호박꽃 옆 더덕꽃 피고고추 옆 들깨 옆 원추리꽃 피고대나무 옆 차나무 옆 매발톱꽃 피고처녀치마 옆 둥굴레 옆 돌나무꽃 피고반하 옆 달개비 옆 접시꽃 피고백일홍 옆 구기자 옆 좀나팔꽃 피고달맞이꽃 피고 둥근잎나팔꽃 피고머위 옆 산나리 옆 미끈유월 지나가고하수오 옆 수세미오이 옆 여주꽃 피고매화나무 한창 푸르게 한산하고쓰름매미 깽깽매미 미끌미끌 울어쌓고나 홀로 뜰뜰하게 기우는 한여름의 뜰.
이인해 유월이 오는구나난 그때 분명히 보았다 졸지에 쫓겨 내려간대구역 광장 집결한 난민후퇴하던 군인들뒤섞인 그 절망의 날 부모 잃고 굶주린 채세살박이 동생을 업은여섯 살 계집애를 보았다 어떤 군인이 배낭에서 꺼내 준건빵 서너개 지가 안 먹고등짝에 업힌 제 동생을 주자 그걸 준 군인부터 울기 시작해서보고 있던 모두가 울었던65년 전 대구역 광장 울음바다를나는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울음보를지니고 태어난 거 그런데 씨팔!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인간 아닌가 유월이 오는구나배고프다 악 쓰는 어린 것의목을 졸라 버렸다는아비의 그 유월이 낼 모레
그래도 웃었다비바람에 날려 제 손목이 부러져도웃었다태풍이 몰아쳐 몸뚱이가 심하게 꺾여도웃었다길가에 흩어진 아픔의 흔적들 그래도 웃었다주위가 황폐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여름나무는 상처를 딛고 안아주었다
수동 6통 2반 반장댁 대문 귀퉁이거칠게 떨리던 손이 비뚤비뚤 지나갔을서투른 글자가 내 눈알을 걸어놓는다삭을세놈니다 낡고 헐은 바람벽에는 우울의 낙서투성이라서몸 하나 거둘 곳 있을 리 만무한 집인데삭아빠진 세를 놓는다는 건지삭신이 쑤신 놈을 찾는다는 건지삭은 몸뚱이를 보러 오라는 건지도무지 깃들 수 없는 기우뚱한 담벼락에 기댄나의 그림자를 떼어낼 수 없다 갑자기 꼭 너 같은 놈의 등짝을 보면쩔쩔 끓는 방바닥으로 지져주고 싶다는갈퀴 손 닮은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아주 오랜 세월을뜨거운 체액으로 흐르면서알게 모르게조금씩 아주 조금씩 달치어진생명의 단내 같은 것그 안에달고 쓴 독과 약이나란히 등을 대고 있어저울추가 조금만 삐딱해도금새 빨간 불이 켜지는그러나 어떤 부정에도어떤 비굴한 모략에도결코 썩지 않는끝내 변절하지 않는신의 웅숭깊은 교지 하나가슴에 품고 반짝이는차가운 영혼 같은 것마지막 희망 같은 것
어느 날 나는저 안개 속에 묻히리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운명의 하얀 깊이 속에돌 베고 누워 눈을 감아도아무 것도 꿈꾸지 않는한 조작 차가운밤이슬 되리
6월의 아픔이아직도 아물지 않았나 보다 넝쿨마다 아픈 자리꽃이 붉게 피었구나.
눈에 띄었을 뿐이다 하필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시속 1미터든 100킬로든 굼벵이든 기차든 그게 그들의 가는 길이고, 그 길 위에내가 실렸을 뿐이다 어디에선가 당신들은 지구 위를 걸어간다 구름 위에 구름 구름 밑에 구름 구름인 줄 모르는 구름 허공에 매달린 구름아래굼벵이는 굼벵이걸음으로 기차는 느려도 빠르게 달릴 뿐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라지는 것일 뿐 당신이 내게 수없이 건넨간다간다 간다는 말 강 건너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기차야나에 대해 잠깐 들썩이었던 입술들아
햇볕 따가운 여름날무명 옷자락의 한마리 나비가 되네날개 저으며 치악산 아랫마을장다리꽃 가득 핀 들길을 날아가네뒤따라오는 나비 떼 앞장서 구름처럼 찰랑찰랑장다리꽃 무밭을 지나 개울물 건너네개울물 은회색 물고기 몇 마리 돌 틈새 꼬리 흔들어유혹의 몸짓 보내네무슨 사랑 같은 것 가슴에 담아두고 한 짓이랴만그 눈빛 가득 물기 서려그냥 가기 마음 아파 얼른 죄우로 날개 흔들어물위에 그림자 던지니고기떼 저들끼리 화들짝 놀라 웃는 소리까르륵 물위까지 넘치네
먼동이 트는 새벽녘 창밖을 보면두려운 시간의 흐름 속에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날 고요한 새벽 지붕위에 내려 않은 비둘기들구구구 아침인사 하고는귀에 속삭인다 환술(幻術)에 속지말라고훨훨 날아간다 스스로 제 그물 속에 갇혀 자책하면절망이 살몃살몃 다가오고 가슴에 환희를 부르는새벽 종소리에 귀를 열고마음의 종소리 따라 산다면아침에는 절망이 찾아오지 못한다있는 것은 오로지 새로운 날 뿐이다
꽃으로무성한 햇살로벙글거리는 여름 산가슴에 우짖는새소리도 벙글거린다 누구나 한 번쯤 만났을마음 맑은 이의 눈길이 머무는여름 산 쓰릉 쓰르릉매앰 매애앰매미도 웃고사람도 웃고여름 산도 끝내함박 웃음보를 터트린다 농막지기의 저물은 눈언저리에아직도 주춤대는 젊은 날의 그림자여름 산을 오르면그의 인생도여름이 되려나
조재도 그 집에서 여름은 혼자 살았다여름이하늘로부터 비를 데려와흙담 옆구리를 무너뜨렸다그 구멍 틈새로생쥐가 까만 눈을 내밀다 사라졌다여름은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올라그 집 헛간 구석에 던져놓은 폐목에헝겊 쪼가리 같은 버섯을 키우고마루턱까지 차오르게 명아주를 키웠다빈집을 짜개놓는매미소리녹음을 가득 안은 여름이그 집을 온통 휘저어 풀물 들여 놓았다그냥 두면한 백년 꾸벅꾸벅 졸기만 할 것 같은 그 집능소화 마구 뻗어 오른 대문간오줌 누는 나에게한 세월 거저먹으려는 건달 같은 여름이내년에도 다시 와 공으로 산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