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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담장 밑짧은 스커트 배꼽 티셔츠의 장미가 얼굴 화장을 한다건듯건듯 바람이 불 때마다농익은 볼과 입술이 툭툭 벙글어 오른다감나무 그늘에서 누렁소가 커다란 눈을 끔벅, 한다심술 난 닭이 보로통 달려가 장미의 붉은 입술을 마구 쪼아댄다장미가 가시 손톱을 세워 잠시 맞서다가이내 담장 위로 기어오른다누렁소가 느릿느릿 하품을 하며 힐금, 한다도둑고양이 한 마리 물 스미듯 다가와우쭐한 닭 엉덩이를 들입다 베어 문다푸드덕푸드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꽁지 빠진 닭이 혼비백산 달아난다담장 위에 걸터앉은 장미가 자지러지게 웃는다누렁소가 멀뚱멀뚱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5.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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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햇빛을 베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밤이었다 빛 하나 새어들지 않는 태고의 어둠이 고여 있는 깜깜한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먼 크로아티아 동굴 900미터 아래에 살고 있다는 동굴 달팽이 어둠 속에 살다보니 이동 능력을 상실한 것일까 달이 하늘을 지나는 속도보다도 겨울을 지낸 나뭇가지에 목련이 피는 것보다 느린 이 달팽이에게 세상은 얼마나 빠른 변화인가 먼 생을 돌다가 어둠에 익숙한 어느 길모퉁이에 두고 온 내 마음이 아닐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너의 발자국 소리가 어둠을 만들고 누군가의 가슴으로 스며들지 못한 그저 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5.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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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이다만, 우리 마을 중매쟁이는 돌이었다심술은 궂었어도 각별히 연인들 속내를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었던 돌 그날도 분 강 앞에서 동동거리는 처녀 아이가 있었는데등을 내민 총각 발목을 헛딛게 하고 말았지그 돌 아니라면 태어나지 못했을 아이들도 많았을 거라 냇물 소리 자란자란 흘러가는 어머니 추억담을 따라가다 보면물이끼가 잔뜩 돋은 그 돌 위에서 첨벙나도 그만 균형을 잃고 싶어진다돌의 신호에 맞추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강을 건너 어딜 가겠다는 뜻은 없지만그저 좋아하는 사람이나 허전한 등에 업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치면그 짖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5.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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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척추가 길어진 거라 했고누구는 창자가 빠져나온 거라 했는데면접시험 칠 때애인과 마주 앉을 때존경하는 시인을 만날 때는밟히지 않도록 조심했고돈 많은 사람낯 두꺼운 사람여유 넘치는 사람 앞에서는슬쩍 꺼내어 살살 흔들었던,차마 내키지 않는 일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일참을 수 없이 화나는 일에는보이지도잡히지도 않지만파르르르 떨리는 그것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5.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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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 나팔이 울리고, 누군가 이층 창문을 열고 외쳤다경찰이 몰려오고 있다!그때 우리는 빨강이나 노랑 두건을 쓰고튤립당을 결성하여막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벌어질 일은 그대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백만 송이 대지의 등불이 꺼졌다그 후 오랫동안 튤립은 천둥과 번개를 돌주머니에 감추고쇠를 먹지 않고설탕과 담배도 말리 하였다 강낭콩 꼬투리속에서 태어난꾀많은 곰보 소녀는일곱 개 이야기 조각을 맞춰귀가 커다란 나라의 여왕이 되었다 우리가 천국에 환멸을 느낄 무렵,경찰도 마법이 풀렸다하여, 그들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5.1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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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포탄꽃 엄마의 머리에는 전쟁때 포탄 스치고 간 상처가 아기 주먹만 했다머리칼로 가린 곳 웅덩이처럼 살짝 패인 뼈, 희고 빤들빤들한 머리뼈어린날 그 곳이 신기해 만지고 몰래 들여다보았다조금만 깊이 패였으면 엄마도 우리 형제도, 나도 없었겠다아하, 인생은 아슬아슬하고 기묘해라 *엄마가 새알처럼 작아지셨다 병중일 때 엄마는 매일 작아지셨다눈까지 멀어가던 엄마는 작은 새알같았다 새라도 되어 북녘 동생들을 돕겠단 엄마의 꿈생사조차 몰라 대를 잇는 이산의 슬픔엄마 손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할만치먼 엄마에게 가닿고 싶어 하늘을 휘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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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5.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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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 하면 핀다버려 두어도 핀다 외로워서 피는 듯서러워서 피는 듯 왜 몰라주냐고왜 보아주지 않냐고 안쓰럽게 피는 꽃막무가내 피는 꽃 지상의 모든 외로움을 위해지상의 한껏 외로움을 다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5.0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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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 나는 따뜻해져가슴에 한 잔눈물이 배어 나오고옛사랑 생각에혼자 외롭게 따뜻해진다 그대 나를 안아주렴그대 가슴에 기대어마음 하나 내려놓고 싶다팔은 네 몸을 둘러네 등허리 골마디마디 하나하나 눌러 내리며 왜 그때는 사랑이 그렇게 어려웠을까왜 그때는 사랑이 그렇게 서러웠는지 슬플 때 나는 따뜻해져편지를 쓰고 싶다 노란 은행나무 연필로이 세상 마지막 고백처럼그때에 널 사랑했었노라고진정 사랑했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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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5.0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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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큰 놈을 잡을 거야왕잠자리를 잡을 거야호랑나비를 잡을 거야장수풍뎅이를 잡을 거야 모과나무와 소나무 사이 공중에거미줄을 크게 친 왕거미는오늘 저녁도 꿈이 크다 어쩌니?거긴 딱새 박새 언니들이조잘조잘 날아다니고직박구리 오빠들이 침을 찍찍 뱉으면서돌아댕기는 길인데 어제도 찢기고 그제도 찢겼으면서왕거미는 오늘 저녁에도끙끙 영차왕, 호랑이, 장수 잡는 꿈을 꾼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5.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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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은봄이 온 줄도 모르고가는 봄의 뒷모습만 보았지요꽃 그림자 밟고 꿈인 듯 떠나가는 길에봄날의 짧은 해도 걸음을 늦추고눈시울 붉혔지요 다시 봄인가요? 어디서 왔는지 봄꽃들후- 하고 된 숨을 토해내는군요아주 먼 길 지나온 듯한 짐 이승에 부려놓은 저 울음의빛깔들을사람들은 환하게 반기네요어쩌지요 내 눈엔 유난히 아지랑이만 일렁이는 걸요 지금쯤 그 사람 어느 후생에 당도하여한 생을저리 환하게 살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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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5.04.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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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일어나는 날시골 밭둑 양지쪽에 여린 쑥의 눈짓한 움큼 뜯어 왔다 콩가루 살살 분 발라엷은 장국 끓여 어린 손녀 앞에 놓아주니낯선 맛에 혀를 내두르고 밀어낸다 몸에 좋아 예뻐진다고딸과 손녀가 실랑이하는 사이쑥 향기는 온 집안을휘젓고 날아 봄기운에 몸을 달군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4.0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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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은 숲을 지나빙하와 크레바스를 건너세상 끝에서 끝으로 걸어간다항공로나 철로나 뱃길이나 모두하나의 선일뿐우리의 모험은 대체 어찌된 것인가밤은 하늘의 바닥이라던데어두워져도 어두워지지 않는 밤에우리는 걷다가 달리다가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들쉬지 않고 걷고 또 걸어도세상은 점점 더 커지고 더 깊고 깊은 블랙홀이 되고걷는다는 것은세상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세계를 지워버리는 것실종자가 한 명 더 늘어서실종인가 실족인가 사망인가 회자되다가결국은 잊혀지는 것우리의 모험은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가사람 대신 북극곰이 있고트럭 대신 빙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4.0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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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번쩍 안아 댓돌위에 올려놓고 발을 씻깁니다거친 손이 하루를 씻깁니다달도 우물 속에 들어가 발을 씻습니다뿌득뿌득 소리가 요란합니다입김에 하얗게 서리 내렸던 수염오늘 하나도 따갑지 않습니다내 검정 고무신도 뿌득뿌득 닦아 놓은 아버지당신 흰 고무신과 나란히 놓습니다보름달이 슬밋 다가와 아버지 소맷부리를들추어도 허허 웃으십니다도랑 옆으로 어제까지 보지 못한 민들레가 활짝 피었습니다발 씻은 달의 웃음소리입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4.0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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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걸린다 이 사람이 하는 말도저 사람의 행동도걸린다 왜 이렇게 속이 좁나왜 이렇게 걸리는 게 많나 마음속에 거미줄이단단히 쳐져 있나보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4.0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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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가 내 나이였을 때 쯤 복수가 가득 찬 몸으로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도저히 못가겠는데 누가 날 지게에 엊어 내 집까지 데려다 줬으면 좋겠다고 지게는 말없이 돌아앉았다 비가 며칠씩 내려 신작로가 패이고 패여 웅덩이가 수없이 생겼다자갈들은 모두 가루가 되어 차가운 아스팔트 속에 깔려있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지게 올 때만 기다리고 계실게다어느새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무릎에 쑤시고 다리가 아파 그 자리에 앉아 나는 지금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다 신작로엔 망촛대 하늘하늘 피어 있고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가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4.0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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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유모차를 밀고 간다햇살 가득 태우고 간다뒤따라오는 바람도계속 따라 온다오늘은할머니가해묵은 이야기잔뜩 싣고꼬부라진 허리 펴보겠다며경로당 향해 밀고 간다 하루 종일 보따리 풀어놓고할머니허리 피며 오겠다유모차영수네 할머니 드려야겠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4.0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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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대문이 흔들려요 쿨럭 대는 대문을 붙잡고 싶어요 기침소리가 굴러다니며 앵두나무를 흔들어요 막 피기 시작한 앵두꽃잎 몇 떨어져요 앵두나무는 꽃을 피워대는데 대문은 열리지 않고 기침소리만 소문에 소문을 더해 골목을 굴러 다녀요쿨럭쿨럭 골목마다 꽃만 피우다 꽃만 피우다 열매가 맺힌 것도 몰랐어요 툭툭 떨어지는 것도 몰랐어요 꽃잎만 보였어요 떨어지던 꽃잎만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4.0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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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기만 해도부끄러워차마 뱉지 못하고입안에서만 우물우물 귓속 간질거리는 솜털 같은나른한 봄 햇살 같은콧소리로 불러보면온 몸 닭살 돋아도 생각만으로도따뜻해지는사알짝 속삭여 보는당신!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3.3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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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길고 긴 고독의 터널을술에 의지해 걷고 있다지금은 잊혀진,그러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편린들잘도 버텨왔던 그의마흔 아홉이 흔들리고 있다. 간밤 모든 게 다 탔다독한 술로 속을 다 태우더니그리움으로 애가 다 타들어간다.지금은 잊혀진,그러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편린허겁지겁 해장국을 들이킨다.해장이 될까? 그리움이란 놈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3.3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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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벚꽃 함박웃음 짓던 날사랑의 향기 따라맑은 햇살 속을 걸어서피부색도우리네와 별반 다름없는몽골의 여자 바트자갈 사인자야그 여자가 솜털까지도대한민국 사람이 되었다사랑하는 일소통하는 법한 마디 두 마디감정의 싹을 잘도 틔우는 여자성안골 등나무 슈퍼국경과 국경사이 웃음이 오가고여자의 자판기 커피 향기온 동네에 날린다들락날락 얼굴 붉히며“형님 커피 먹어”서툰 말씨를 건네며지나가는 사람들한바탕 들썩이게 만드는 여자우리는 그녀가 풀어놓은 초원을 여행 중이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3.29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