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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겨울은 기별도 없이 오고 있었다. 겹겹의 푸른빛으로 빛나던 하늘도, 햇솜처럼 닿아주느라 분주하던 햇볕도 어느새 창백하리만치 투명하다. 코끝을 타고 들어와 손끝까지 저리게 하는 이른 된바람이 떠나는 가을을 절감하게 한다.아무리 손끝을 감싸 쥐고 주물러 보아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감각이 둔해진 것은 손끝뿐인데 온 몸에 냉기가 감도는 듯하였다. 이럴 땐 알싸하게 목구멍을 타고 들어와 알차고 뜨거운 부피로 온 몸을 일어나게 해 줄 것이 필요하다. 진한 생강 향을 떠올렸다. 비스듬히 비추던 햇볕이 금방이라도 누워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생
신인문학상
이재은
2017.12.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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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입니다“야, 저기 다니엘 지나간다!”다니엘은 태권도장 아이들의 아주 큰, 공통된 관심사였다. 태권도장 너머 학교 아이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다니엘이 동네에 이사 온 지 3일째라는 걸 감안해도 지나친 관심이었다. 아이들은 다니엘이 하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그걸 그날의 대화거리로 삼았다. 다니엘은 아무래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가끔은 귀찮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태권도복을 입은 다니엘 뒤를 병아리처럼 따라다녔다. 다니엘이 움직일 때마다 허리춤에서 검은 띠가 흔들거렸다.“뭐냐. 남아공,
신인문학상
황선영
2017.12.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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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김재옥 기자)알맞은 시적 변용과 언어의 묘미를 잘 살린 탁월한 수준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강성원(본명 강성재·사진·57·전남 여수시 소호로)씨의 작품 ‘호른 부른 아침’이 2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동양일보와 옥천문화원이 주관하고 옥천군이 후원하는 ‘지용신인문학상’은 한국시문학사의 우뚝한 봉우리 정지용 시인을 기리고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시인 발굴을 위해 제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전 11시 옥천군청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이 수여된다.다음은 낮은 곳에 눈길을 두고 희망
신인문학상
김재옥 기자
2017.05.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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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파팍. 치치칙. 격렬하게 맞붙는 토치와 용접봉. 심부 온도는 천오백 도. 토치 출력을 더 올렸다. 노란빛으로 변한 불꽃들. 위협적인 아치 곡선. 파파파팍팍. 칙칙칙. 기체가 된 크롬의 알싸한 냄새. 차광안경을 뚫는 빛의 무리. 시신경을 압박하는 통증. 심부 온도는 이천 도. 여기서 밀리면 끝장. 용접 경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선. 최대로 올린 출력. 팍팍파. 쏴쏴샤. 착착. 천장을 향한 불꽃들의 거대한 곡선. 심부 온도 삼천 도. 모든 재료가 녹는 지점. 이젠 오직 흰빛 불꽃뿐. 그렇다. 죽음의 색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6.12.2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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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는 아직도 오지 않았어요.다들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출발시간이 30분이나 늦어지고 있어요. 기다리던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바깥바람을 쐬기도 했어요. 45분이나 지나자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어요. 가이드 아저씨는 속이 타서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아줌마를 찾지는 못했어요. 아줌마를 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어요.이 아줌마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자란 터키 아줌마예요. 독일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여행 동안 아줌마는 독일 사람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어요. 낯선 터키의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6.12.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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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나가 되었으면 한다호흡이 멈춘 내 몸을 天葬으로 뉘면살갗은 독수리의 몸을 타고 바람에 흩어지고오롯이 희디흰 정강이뼈만 남으리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내 정강이뼈를아프게 품어 줄 사람하나 가졌으면 한다그가 떨리는 손에 내 정강이뼈를 고쳐 잡고사막에 남겨진 고적한 발자국긴 속눈썹을 가진 낙타의 순한 눈빛초원에 골고루 슬어놓은 어린 나귀의 울음소리그것들을 궤나에 실어 추억해 주었으면 한다.아! 나는 미어지는 것들을 어디에다 죄 잃어버리고 왔을까.바람 불고 구름 흩어질 때야윈 내 정강이뼈를 훑고 지나가는저 살빛 낮달도 슬펐으면 한다어쩌다 한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6.12.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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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시간이 응축된 결 사이로 먹빛 농담들이 그윽하게 번져 있다. 백년의 세월 속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이 망설이듯 멈춰 섰다간 일필휘지 굽이쳐 흘렀다. 마을회관을 지으려고 빈 집을 허물면서 베어진 감나무였다. 차탁으로 귀히 쓰인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찾아간 자리였다. 반으로 자른 단면을 손으로 쓰다듬으니 아릿한 기억들이 묻어나온다.감이 주렁주렁 달린 시골마을이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면 담장을 넘어온 가지마다 홍시가 탐스럽게 익었다. 초가집 일색인 마을에서 단 하나 뿐인 기와집이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6.12.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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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당선작 포플러 상처입은 찌르레기 지저귀고별들은 울고 또 서럽게 울고 봄이 오면 불어오는 산들내음을 나는 사랑했네비둘기와 따스한 햇살을, 꽃다발을그러면 나는 해가 빛나는 호수처럼 너를 사랑해너는 말없는 포플러 나무처럼 편안하지 밤이와 그 자리에 찌르레기 지저귀고별들은 다시 아프고 서럽게 울고 순진했던 나는 믿었네언젠가 아름다운 별빛은 삶을 구원하리라고그래서 고요한 봄의 포플러와 같은 너를 사랑했네 싱그런 봄바람처럼싱그런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너를 사랑했네 순진하게도 나는 믿었네별빛이 삶을 구원하리라내 가슴 속의 노래하던
신인문학상
김재옥 기자
2016.05.0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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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청운고시원. 푸른빛을 띤 구름. 이름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구름인 이상 빨강이든 파랑이든 노랑이든 덧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창한 입신출세의 뜻을 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군사부일체가 고물상으로 팔려간 지도 한참이 지난 이 시대에, 기껏 훈장노릇이 무슨 높은 벼슬이라고 청운의 꿈을 운운하겠는가. 무보증에 월 15만원, 밥과 김치제공. 푸른빛의 구름이라는, 출세의 의미와는 별개로 어딘가 모르게 탈속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그래서 뭔가 몽롱한 느낌마저 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게,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로
신인문학상
조아라 기자
2015.12.2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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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눈사람과 앨빈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요. 그날은 여덟 살 내 생일이 막 지난, 겨울이었어요.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 했죠. 왕창 눈이 내렸고 엄청 추웠어요. 나는 우리 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빈 집에 혼자 있는 건 정말이지 심심했거든요. 엄마는 큰 회사에 다녔어요. 엄마는 일을 잘해 점점 높은 사람이 되었어요. 그럴수록 엄마는 더욱 바빠졌죠.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회사에 나가야 할 만큼이요. 나도 덩달아 바빠졌어요. 학원을 다섯 군데 다녀오면 엄마를 만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5.12.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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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를 품다 내 고향동구 밖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쥔 늙은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고향 길에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 곳은돌담 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만만치 않은 세상, 삶이 고달플 때의연함으로 시절을 버틴 정자나무는 살아온 날에 대한 다독임살아갈 날에 대한 묵묵함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한 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모습에도지나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5.12.2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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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씨과일가게 주인이 맛보라며 복숭아 한쪽을 준다. 토실토실 살이 올라 단 냄새를 물씬 풍기던 복숭아는 살을 다 발라내자 씨만 남았다. 주인이 복숭아씨를 휴지통에 던지고는 복숭아 한 개를 또 깎는다. 복숭아씨가 맨 몸으로 휴지통에 웅크리고 있다. 평생 땅 한 뙈기 가져 본 적이 없는 아버지 이름으로 땅이 생겼다. 비가 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산 아래의 천수답이었다. 천수답이 생긴 후로 아버지는 더욱 일에 매달렸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농작물은 토실토실 살이 올라가는데 아버지의 몸은 마른 장작처럼 말라갔다.복숭아 알이 주먹만큼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5.12.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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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조아라 기자)그 때의 죽변은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만선을 이끌던 아버지. 10남매의 맏이로 늘 당당하고 강한 아버지의 모습은 울창한 ‘대숲 끄트머리 마을’, 죽변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낭만적이고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었다는 걸 안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시 ‘죽변’으로 동양일보가 주최한 21회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배정훈(34·사진·경북 울진군)씨. 그는 죽변을 배경으로 한 이 시를 통해 한 사람과 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연이었을까. 그가 가는 곳마다 늘 바다가 있
신인문학상
조아라 기자
2015.05.0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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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개여자가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한 달 넘게 같은 병실에 있으면서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던 여자다. 잠을 설쳤는지 부스스한 몰골로 가방을 싸는 여자의 눈자위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 삐져나올 듯이 빵빵한 회색 보따리를 매동그리던 여자가 과일이 담긴 검은색 봉지를 내민다.언제 그렇게 주워 날랐는지 남편 간병하면서 생겨난 짐이 간이 의자 위에 가득하다.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나서는 그녀의 짐을 빼앗아 주차장까지 들어다 주고 오는데 산모와 친정어머니인 듯 한 모녀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앙증맞은 소아용 산소통을 든 간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4.12.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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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가 아빠를 따라 태안으로 온 지도 벌써 2년이 되었어요. 오늘도 같은 반 친구와 다툰 민규는 먼바다에서 꼬물거리는 고깃배의 집어등을 세며 앉아 있었어요. 해변엔 잔파도가 바닷게처럼 노을빛 거품을 게워내고 있었어요. 구름 속에서 막 나온 달이 히죽거리자 민규는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달을 향해 돌멩이 하나를 힘껏 던졌어요.민규는 행복하게 웃는 친구들이 꼴도 보기 싫었어요. 그래서 매번 그런 친구들과 싸웠어요. 그럴 때마다 아빠는 담임선생님께 불려 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어요. 그런 아빠의 모습에 민규는 자존심이 상했어요.취로사업을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4.12.1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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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로 풀을 만든다. 풀풀 끓어 넘치는 바람에 냄비뚜껑을 열어젖혔다. 하얀 김 한바탕 쏟아내더니 거품이 폴싹 주저앉은 사이로 쌀 알갱이가 그대로 보인다. 모양새가 또렷한 것으로 보아 좀 더 시간을 두어야 푹 퍼져 뭉그러진 풀이 될 성싶다. 올여름 처음 푸새하는 날.해마다 여름이 되면 손수 푸새할 것을 고집하는 게 있다. 직접 내 손으로 옷에 풀물을 먹이는 것은 떨어내지 못한 마음속의 그리움 때문이리. 푸새하는 풀물 속에는 어릴 적의 정갈하게 쪽진 어머니의 모습이 있고 성미가 까탈스러운 할아버지가 계시다.고향 집의 너른 대청마루에 다소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4.12.1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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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칸의 방에 무릎을 접고 잠 든 하얀 누에고치오래 전 저 무릎에서는 한철 내내 누에가 자랐다옆에서 자는 날이면 밤새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방을 바꾸며 마디를 키워가는 누에들궁금한 것이 많은 어린 것들은 강물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이 들곤 했다 손끝은 하얀 실처럼 길어지는 듯 했지만 점점 닳아갔고누에를 키우던 손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마디를 지탱하던 관절들이 빠져나가고접힌 무릎 펴지 못할 때당신의 수의를 지으신 어머니수천 겹 흰 올을 안고 오른 섶잠든 고치에는 이제 무릎이 없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한 생을 헐고 나오는 것이 탈피
신인문학상
동양일보
2014.12.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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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바다를 떠돌다 외딴 항구로 몰려든다. 하얀 배의 연돌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안개와 뒤섞인다. 뱃고동이 안개의 미세한 입자 속으로 파고들며 공명을 일으킨다. 어느 순간 알로나가 탄 배를 안개가 삼켜버린다. 미쳐 버릴 것 같은 공허함이 왈칵 밀려든다. 나는 알로나를 떠올려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모습이 또렷해지지 않는다. 알로나는 떠나면서 내 머릿속에 든 기억까지도 거둬간 것 같다. 다시 눈을 뜨니 항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안개가 걷혀 있다. 하지만 알로나가 탄 배는 항구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두 살이 되기 전부
신인문학상
조아라
2013.12.1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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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낮인데도 어둡게 보였어요.“준석아, 어쩌냐? 알지? 그래도 난 너 찍었다.”‘쥐새끼 같은 놈, 그래도 친구라고 믿었건만.’ 유일하게 말을 건 민식이에게 화를 내지 못했던 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어요. 내게 나온 한 표도 사실 내가 찍은 표였거든요. 아이들이 뒤통수에 대고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지요. 한 표, 한 표…….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어요.나는 빨리 다락방에 가고 싶었어요. 책들로 둘러싸인 다락방은 힘들고 속상할 때일수록 내 편이 되어주었거든요. 집에 도착하자 나는 현관
신인문학상
조아라
2013.12.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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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용서 할 수 없어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가볍고 은밀한 흔적들생선과 맞바꾼 몇 개의 발자국 속엔아직도 비린내의 안쪽을 훔쳐봤을 집요한 눈빛이 묻어있고문 열린 주방 한 켠 함지박에 담가놓았던저녁의 분량만이 온데간데없이 썰렁하다도둑맞은 함지박 속의 물들은 꺼른하다아직도 미련을 놓지 못한 듯 우물거리고 있는갈치의 미세한 비늘만이느릿한 공복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한때함지박 속의 사연들은 내 오랜 날들의 청빈을 닮았다쉽사리 쏟아버리기엔 못내 아쉬운 애증의 볼모같은 것나는 오랫동안 비린내 어린 시장기를 구해와어스름의 도둑들을
신인문학상
조아라
2013.12.18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