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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툴 불툴 설악산서펑퍼짐한 소백 거쳐달포 간 이천리 길대간종주 끝머리쯤반애봉 달 항아리 같은그대 곁에 머물고 싶다 날밤을 걸어 보며타래 사념 궁굴려도산은 물을 막지 않고물은 산을 넘지 않는평범한 세상사 이치대간 길에서 줍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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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鳥)인척 낙엽들이 탱고 추는 저수지 떠도는 유빙조각 맞붙이는 바람의 손 노을이웃음소리를쓰다듬고 넘는 오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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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연꽃 몇 줄기를 얻어서작은 단지 뚜껑에 심어 놨더니금세 식구가 불어나집이 좁아 터져 보였습니다언제 큼직한 새집을 마련해 줘야겠다고허구한 날 벼르기만 하다가옹기전에 맞춤한 그릇이 눈에 들어햇빛 좋은 봄날에 이사 시켰습니다어느새 물 그득한 새집에 푸른 세상을 이루고드문드문 노란 등불도 밝히는데요어느 날은 콩개구리 한 녀석이얼룩무늬 예비군복을 떡하니 걸쳐 입고는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요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찾아 온 게 고맙고 반가워서그래, 오래만 살아 달라고 무상임대로기꺼이 내주고 말았습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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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오면오는대로 두었다가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오는대로 두었다가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머물러 살겠지요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왔다간 갈거에요가도록 그냥 두세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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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돌담 새에담쟁이덩굴 고 작은 손이기우는 세상을 콱 움켜쥐고 있었다 빈집을 볼모로 태양이장미덩굴에 불을 질렀다 불 속에 갇힌 빈집바지랑대에 쳐들린 빨랫줄 그 위에 걸려있는내 혓바닥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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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세상보다 하늘이 높고 컸다키가 작아서옆을 못 보고 위만 보이던 크고 높은 것은 위대하므로예수와 천사들은 하늘에서 살았것다 회갑 진갑이 훌쩍 넘어서야별무리 황홀한 하늘과집마다 켜 놓은 세상의 등불이어두울수록 밝아지는 이치를 알것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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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눈 속으로 들어가서아름다운 풍경에서 일어나고귓속으로 들어가서맑은 솔바람 소리에서 일어나고콧속으로 들어가서향그러운 과일에서 일어났다그러나 요즈음 나는쓰레기 속으로 들어가서눈부신 장미꽃으로 일어나고새소리 속으로 들어가서막막한 바닷소리에서 일어나고거름 속으로 들어가서쓰디쓴 씨앗에서 일어난다그리고 더러는참말 속으로 들어가서거짓말에서 일어나고거짓말 속으로 들어가서참말에서 일어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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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돌봐주지도 못한 군자란이장하게 꽃대를 밀어 올린다 이 순간 나의 거실은진땀과 신음소리 어울어지는산부인과 분만실이 된다 살을 찢는 아픔을 감당하고서야꽃은 저렇게 피어나는 것이다 엄니의 아픈 속살을 비집고 나온나도 어느 한 순간은 꽃이었구나!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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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성능이 좋아 한 10년은 족히 타구먼그때야 보링 안하믄 오르막에선 갤갤거렸제제기랄, 고장도 안 나! 암만 타도 끄떡없구먼 마누라? 평생 탔제, 고장 난 데도 많구먼근데 말여 노각마냥 늙을수록 단맛이 있어예에끼, 개비는 무신? 점 놓인 데가 다르잖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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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느티나무가나뭇잎 등을 들고 길을 밝힙니다 눈 감고 보는 길이 참 좋은 수행이라고붉은 등은 졸고 있습니다 눈 없이 등은 들어 뭐 합니까눈 뜨고 등불 보며 길은 왜 찾는고 심지 타는 소리,바스락 그 소리에 귀먹어고요의 길에 서서 어두운 마음 미춥니다 너무 많은 걸 밖에서 찾았습니다너무 많은 걸 안에서 읽었습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1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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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몸속에 둥지를 틀었다.둥지가 있어 밤새도록 문을 열어 놓는다.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재재거리고 들락거리는새, 날개를 펴고밤하늘을 날아 바닷가까지멀리 은하를 건너 딴 세상까지 날아갔다가피곤한 몸을 쉬러 오고잠시 깃을 접었다가가는무언가에 홀린 듯 둥지를 차고 오른다.어쩌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몸부림치면서 날카로운 부리로 몸을 쪼아대는 바람에내 몸은 피투성이가 된다.나는, 아침에 일어나 기침을 하듯벌겋게 핏물로 얼룩진 이부자리를 펴서 넌다.알을 낳지는 않는다.어둠의 입술이 발목을 잡는다는 걸, 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1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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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이라 말하고그녀는 문이라 말한다베트남이 고향인 그녀는문이라고 해도 문이고물이라고 해도 문이다알고 나면,알고 보면오류도 아름답다 다르다는 것은귀함,소중함,특별함이 있어아름답다는 말과 통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1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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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 새옹지마이지 오래 참아온 고통은심장을 돌로 만들어따뜻한 인정 하나 없이마냥 차갑기만 하지 칼날보다 더 예리한 기운부드러움 다 잃어누구도 가로막질 못하지 그래도 인간사새옹지마지이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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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희롱하면요염하게 스러지던 풀잎군단마디마디 맺힌 사연얼기설기 얽어두고빈 가슴을 서걱대는핏기 없는 대궁들 뻐꾸기를 키워낸개개비 빈 둥지만허탈하게 남아 비단결 옷을 벗고흰 눈발이 몰아칠 때일제히 외면하는 억새풀 메마른 사랑도들불 속에 까맣게 잊혀져 갈불륜의 바람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0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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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냄새나는 것들만 품으란다 땡볕도 비바람도 눈보라도온 몸으로 막아내며우직한 기다림 속 천 일을 품고 삭혀 해산 하던 날‘뚝배기 보다 장맛 일세 그려!” 못난이배불뚝이잖아!구석으로 치워졌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0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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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햇빛을 베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밤이었다 빛 하나 새어들지 않는 태고의 어둠이 고여 있는 깜깜한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먼 크로아티아 동굴 900미터 아래에 살고 있다는 동굴 달팽이 어둠 속에 살다보니 이동 능력을 상실한 것일까 달이 하늘을 지나는 속도보다도 겨울을 지낸 나뭇가지에 목련이 피는 것보다 느린 이 달팽이에게 세상은 얼마나 빠른 변화인가 먼 생을 돌다가 어둠에 익숙한 어느 길모퉁이에 두고 온 내 마음이 아닐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너의 발자국 소리가 어둠을 만들고 누군가의 가슴으로 스며들지 못한 그저 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0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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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집 앞까지 왔다가 문이 열리지 않아 되돌아간 발자국 따라가 본적 있다굴참나무 잎처럼 어긋나기거나화살나무 잎처럼 마주나기로 눈밭에 돋아난 싱싱한 잎문 닫고 있었던 시간,그 단단한 칩거가 꼭꼭 찍혀 있다다시는 잎 뒤집지 않겠다는 듯 비장하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징후들 어느 지점에서는뒤축이 시닥나무 잎처럼 결각이 나 있다눈 위에 돋아난 잎, 잎손뼉을 치듯 자꾸 펄럭인다 바람은 아무 내색 없었지만하루 만에 녹아떨어진 잎다음 날 발자국은 나와 다른 색의 옷을 입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이제 빗장 따윈 필요 없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0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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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서랍을 정리하다가모과 향에 취해본다.작년 가을향기 간직하고 싶어 넣어두었던 모과늦가을의 햇볕도 쬐지 못하고겨울 한밤을 지냈을 텐데 향기는 그대로다.초록의 잎보다 먼저 농익은 얼굴로 가을을 맞더니몸내는 그대로인데군데군데 검게 탄 몸은 허깨비마냥 가벼워졌다.이제는 가치를 잃어버린 이름을 하나씩 지우며나 또한 타들어가는 것이리라.소중한 사람을 하나씩 잃고육신도 가벼워지는 것은가을을 준비하는 것.욕심 가득한 서랍 가벼워지라고모과 살을 발라내 차를 내어 마신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5.01.0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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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리 울음소리에 구들장이 들썩들썩나는야 네 울음에 애간장만 타는구나아무리소리쳐 불러도귀 기울이는 이 없구나. 목청껏 소리 높여 애원을 해보아도그녀는 못 들은 체 딴청만 피우고는꼬리를살래살래 흔들며사라지고 마는 걸.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2.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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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풀풀 일던 흙에수두자국 옴팡지게 냈다 풀씨들이 날아들어자국에 뿌리 내렸건만 민낯을드러내라며불풍나게 또 후려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2.29 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