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뚱바깥쪽이 유독 빨리 닳는다 중심잡고 세상사는 일 참말로 쉽지 않건만 바닥은 시간보이며시치미뚝 떼고 있을 뿐
열망이 너무 뜨거워 원망 되면 어떡하나세찬 빗줄기를 바람이 붓 삼아 잡네해서로 휘갈겨 놓아 도무지 읽을 수 없네 같이 두 손 맞잡고 아직 갈 길이 머네이만치 다가가면 저만치 물러서는 님한사코 밤은 또 깊고 팽목항 포효하네
텅 빈 가슴 빈자리에짠물이 스밉니다. 밀물과 썰물이 들락거리고 동풍과 서풍이 서로 교차합니다. 붉은 동백이 소리를 지르고 가시만 남은 해당화는 어디로 갔습니까? 찬이슬 머금은 향기만 남긴 체로 말입니다. 갈매기는 뭐를 알아 눈물을 떨굽니까? 바다는 잔잔하기만 한데, 말이 없는데 말입니다. 모든 게 허상입니다.오고 가는 것이 말입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속눈썹이 기다란온순한 영물 하나가 새벽을 알린다외양간 여물 주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이랴~이랴 쟁기질에 빨리 가면 워~워더불어 함께한 세월의 울림 있기에느긋한 되새김 속에 뉘엿뉘엿 지는 햇살 음매~ 소리 몰고 메아리 울리는 산골하루해가 저문다고 걸음을 재촉한다청소부 쇠똥구리도 하루해가 짧다고 게으름 없는 성품과 가족이란 테두리그 곁을 지키는 살가운 낮은음자리천상의 워낭소리는 여명을 밝히는데…
겨울 빛 내려앉은굽이굽이 수변길발길 닿은 사연 맞춰불어대는 휘파람밤사이 얼려둔 소식풀어낸다. 저수지 오리 떼 흉내 내던빙판 위 나뭇잎들겨울바람 동무삼아썰매 타던 이야기일기장빼곰히 열고까르르 웃어재친다
어디선가뻐국 뻐국 뻐꾸기 소리뻐꾸기는 보이지 않고울음소리만 들렸다 그래, 전에도 그런 적 있다엄만 보이지 않고엄마 울음소리만 들렸다그때 방문은 잠겨 있었다 뻐꾸기는 숲에서들녘을 보며 우는데울음으로 그 들녘 키우며 우는데엄마는 그때 무얼 보면서 울었을까무얼 키우며 울었을까 엄마 화장대 거울 속에도그렇게 울음에 젖는 들녘 있었을까 울음에 크는 들녘 있었을까
금강보다 더 도도하게 흐르는사람 사는 세상이어찌 이토록 험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세 좋은 저 구비들은흐르며 뭉쳐가며저렇게 대로를 만들어 가는데 착한 강둑만을 움켜잡고 버티는순박한 땅 버들이 어찌 알랴잡초가 밤이 다 새도록하늘을 길어다 세상을 닦아내는 것을 워짠다냐, 나는 강변에서 세월만 매만지고 시리지도 않은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쓸어내리며애간장만 졸여야 한다냐 워짠다냐
코가 꿰인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황태의 눈망울이 선명한데흰 눈이 두텁게 쌓여있다깨질 듯이 시린 하늘에짙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꿈을 꾸는 듯기도하는 듯심해에서 유연하게 헤엄쳤던 날들을 회상하는황태의 눈에서 물비늘 같은 눈물이 반짝인다거침없이 종횡무진 달려온 종착지삭풍에 흔들릴 때마다몸을 추스르며 자기를 더 단단히 옥죄어간다 사람들의 지친 어깨 위에도 눈은 내리고북적거리는 허름한 해장국집 모여든 사람들의 허기진 속딱딱하게 굳어진 가슴을한 그릇의 뜨거운 황태 국물이달래고 풀어준다
기우듬한 기둥흐르는 세월을 가로막는 기왓장 바람은 어둠속에 떠도는 영혼을 둘러메고잠긴 문짝마다 머리를 찧는다. 그 소리밤마다 사방 삐걱거리는 환영들, 한밤중을 재촉하는 회중시계는등 뒤에서 재깍거리고실금이 가는 기왓장간간이 터지는 신음소리, 그 순간에동거하는 풀뿌리와 이끼들은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 밤하늘을, 닫힌 창문을 살며시 두드리며내려앉는 하얀 눈송이는핏기 잃은 얼굴을 감싸주고,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음을 용서하는천상의 손길이었나 바람도 가던 길을 멈추고기우듬한 지붕에도 하얀 눈꽃이 핀다
간을 맞추시다 놓쳐 버린 시간냉장고 온장고변함없는 어머니 마음이셨는데버려진 입맛 돌아설까옹이 박힌 손으로 소금밭 일구시어자식들 입맛 따라손맛으로 익힌 사랑 언젠가며느리 입맛 맞춰자식 마음 헤아리던 당신눈물 짜다 한 마디 못하시고며느리 속마음까지 간을 맞추시다자신 입맛 버린 지 오래다 당신몸에 박힌 입맛으로간장 된장 익어 가면여름 장마 장독 구더기 제 살을 파먹어도입 안 가득 고여 오는구수한 어머니 입맛이여
간밤에 꾼 꿈을 기억하며희망찬 발걸음으로 간다 지난 장날 되몰고 온 소오늘도 우시장으로 간다씨앗 골라 남겨두고돈 되는 것 이고지고이웃이 가니 덩달아 따라간다 지난한 삶순댓국 막걸리 한잔에 풀고저녁놀 희미해진 길지게 목발 두드리며 되돌아온다
어린 성자의 모습아랫길 윗길 밟으며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나누다 갈랫길 돌아서면어차피 헤어질 사람들 인생길 언덕 넘으면잘 났건 못 났건이별 겁내지 않고회자정리(會者正離) 그 날이 오면짝 잃은 나그네 신세 한마음 살랑이며남긴 징표(徵表) 고이 접어묻어둔 길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문득 뒤돌아보니그리울 것도사랑할 것도보이질 않는다
한 집에서 오래 살다보니집도 나무도 돌도맘 트는 사이가 된다문주란 꽃대가 밀고 나와 안부를 묻고꾀 부릴 줄 모르는 모과 나무는가지 휘도록 달려서무거워서 어쩌나 안스럽게 하고퇴근하는 나를감나무 그늘이 먼저 맞이한다어두운 뜰에 나와 서성일 때면내 쪽으로 시선을 기울여 무슨 일 있냐고 걱정이다화난다고 마음 닫고남도 되고그럴 줄도 모르고내가 버리기 전엔 떠날 줄도 모른다열렬한 팬이라고 힘 실어주고쉴 수 있는 그루터기를 내어준다
베란다 한 구석에서엄동설한에 꽃을 피운 영산홍느닷없이 한파에 이가 딱딱 마주치게 떨고 있다 무모함이란호된 값을 치루는 것뼛속까지 얼어 천만 번 가슴을 치는 것 사랑할 수 없는 그대를 사랑하는 것보다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든 것인 걸마지막 진을 짜내듯꽃 한 송이 밀어 올리는 것
오창면 구도로 외진 텃밭내 몸 구석구석 가지 뻗고구멍도 나 있었네구약성경에도 핀 꽃내음아담 하와가 유혹에 걸린 나뭇가지겨울날 거기 서성여 보면그때 그 이야기 땅 깊은 데서 삐져나오고하늘가로 넓게 퍼진 팔뚝등뼈 허벅지 허옇게 드러나네기둥 낡아 헤어진 틈새속바람 치맛자락 날리며 들어와둥지 튼 산새 다시 흔드는 등살비로소 가쁜 숨 몰아쉬었지
눈 내리는고즈넉한 겨울밤소년이 외쳐댑니다찹쌀떡 사려! 찹싸~ 알 떡소년의 고단한 삶이 눈 속에 묻혀허우적거립니다 긴긴 밤허기진 배는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데말캉 달콤한 찹쌀떡 눈앞에 어려침만 꿀꺽 삼킵니다 뒤꼍으로 향하는 무 구덩이엔달빛이 하얗게 부서집니다
겨울산은 언제나 속살을 드러낸다속살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 나다 산은 속살을 드러내도 의연하다나는 속살을 감추어도 부끄럽다. 겨울산은 언제나 말이 없다언제나 말이 많은 건 나다 산은 말이 없어도 위풍당당하다나는 침묵해보아도 춥기만 하다.
첫눈 내리는 날 의암호로 갑니다아직 얼지 않은 의암호 깊은 물속으로스며들어 사라지는 첫눈들의 저 끝없는 소멸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눈물처럼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온몸으로 안기는 것임을 새롭게 봅니다첫눈 내리는 날 나도 사랑하는 무엇 있어그 가슴 속으로 하염없이 사라지며 안기고 싶음에의암호 멀리 바라보이는 송암리 버드나무 숲으로외로운 발길 옮깁니다
아무도 없는 뒤를자꾸만 쳐다보는 것은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느낌이 들어서이다.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색 바랜 사진처럼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너의 생각이 싸아하니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 하다가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네가 쌓이고 있었다.
돌틈을 헤치고서 한웅큼 지혈 물고푸른 손 높이 들어 바람소리 다스리다.갈가리 찢긴 세월에 깊게 패인 주름살. 빈 들녘 헤매다가 끝내는 지쳐버린어리디 어린 멧새 품안에 끌어 안고허리를 찍어 내리는 도끼날을 되받았다. 기러기 끼룩끼룩 하늘 쪼는 그 소리도피맺힌 가슴 속에 차곡차곡 담으면서묵묵히 동트는 새벽 헤아리던 거목이여. 우리가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릴 때그대는 아물잖는 상처를 두드리며땡볕도 꺽을 수 없는 자존심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