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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속이 따갑다발이 시린지도 모른다분명 그렇긴 한데뼛속까지 오그라든다 몇 번 오가며예사로움 접어 불 같기는 해도이 하루쯤은 바람 들어나를 데우기로 했으니 새벽차 한 잔 좋지요그 어둠이사 몰아내고내 가슴 한복판에다매화꽃 같은 것이나 꽂았으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2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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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같은 목마름이 불빛으로 타고 있다. 객기도 결이 삭아 곱게 익을 세월이건만 마지막 칸타타처럼 저리 붉게 흐리고 있다. 지상에 살았다는 흔적하나 남기려고 누가 어등(魚燈)처럼 어둠속에 서 있는지 강물은 울컥거리며 하염없이 가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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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즐거웠거나 가끔 괴로웠다언제나 조용하다, 를 데리고가끔 멍멍이처럼 시끄러웠다늘 웃었고 가끔 진하게 울었다모래밭은 늘 있지만 바다는 가끔항상 생각하고 잠깐 잊었다밥은 잘 먹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수염은 늘 깎으면서 언제나 멧돼지를대나무는 생각하면서 가끔은 참나무에 기댄다항상 아빠였고 이따금 아들이었다늘 일찍 만나고 가끔은 늦게 헤어졌다겉으로는 둥글지만 속은 뿔 달린 다각형곧 지나갔지만, 은 늘 가슴에 산다내 전화번호 속에는 정말 우연히샛별의 생일이 숨어 있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2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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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나무를 키우느라땡볕을 마다하지 않습니다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느라흙이 손이나 옷에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그을린 얼굴과우리의 땀방울은아이들 얼굴에 피는 맑은 꽃입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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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오 같은 갈색 피부에허연 머리를 라면처럼 볶아 파마를 한칠십 줄의 구부정한 월곶이 댁이재래시장 가게에 들어섭니다 픽 웃으며 또 제사냐고 물어보면이러다 탕국에 빠져죽게 생겼다고한바탕 너스레 엄살을 떨면서도 북어포에 산자며 약과도 골라 담고고사리에 자반조기도 큰 걸로 한 마리조율이시 홍동백서 고루 갖춰서 그저 넉넉하게 지극정성으로한 보따리 잔뜩 챙겨 들고는허리에 한 손을 짚고 몸을 재끼더니근근이 일어나 가게를 나섭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2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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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전쟁이 났어요봉숭아가 손에 쥐고 있던폭탄을 던졌어요펑! 펑! 펑!파편이 날아가고개미가 지나가다 쓰러지고옆에 있던 맨드라미파편에 맞아 피가 나고팡! 팡! 팡!또 다시 터지는 폭탄,전쟁은 오래갈 거 같아요아직도 봉숭아는폭탄을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희망이 팡팡 터지는 씨앗 폭탄,아, 축포였군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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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몇 마리가 사는 냇물이 있고쑥국새 우는 산이 있다흰 치마 어머니가 드나들던낡은 대문의 초가집이 있다 어느날 꽃상여 작은 산길로 가고상엿소리는 숲에서 떠났다 마당가엔 어머니 고무신 사잣밥 옆에 놓이고 우린 그 몇 개월 후 전처럼 웃으며 지냈다산소 옆에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가지고간 과일 바구니는 챙겨 오고하늘은 그냥 두고 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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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아주까리를 문 앞에 심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내 키보다 더 큰 키에 내 두 손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잎을 내두르며 모르는 사람을 성큼 막아서더라니깐! 힘이 좀 부친다 싶으면 나비 동생, 벌 언니, 사마귀 대장까지 불러서, 어떤 날은 맘씨 좋은 청개구리 동무가 찾아와 뿌룩뿌룩 불침번을 서주고 가기도 하고.옆집에서 묶어 기르는 진돗개보다 믿음직스러워 나는 외출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지. 아주까리 형님,저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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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겐 아름다움이겠지만 내겐아픔이다 통증을 견뎌낼 준비가되지 않았다면 바람 앞에나서지마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1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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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산책길에 달이 좋기에조금 덜어서 보냅니다.창가에 걸어 두고한 이틀 보소서.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1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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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을 달자그리고 그것을 절망이라 하자.마지막 한 명까지 최선을다하겠다고 했으나처음 한 명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우리가 어쩌다가부모가 되고 교사가 되었으나누구도 어떻게든친구와 어른이 되지는 못했으니,그러니 노란 리본을 달고 반 듯 이,노랗게 절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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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9.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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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어머니 바튼 기침소리 들리고새벽녘 내 배개에는눈썹 몇 개 가지런히 누워있다 편안히 흐리지도 못하는 저 우주의 시간 속에 묻어둔무거운 이름 하나돋을새김으로 일어나 뼈마디 뒤척이고 손끝 저리는 그리움의 무게 깊숙이 내려앉아간절한 부름으로 닿았는지 먼 거을 한 아버지는 정겨운 눈길로집안 곳곳을 어루만지며머나먼 이승의 시간을 다독이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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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흔들고 섰는 한 나무를 그렸습니다그리움에 데인 상처 한 잎 한 잎 뜯어내며눈부신 고요 속으로 길을 찾아 떠나는… 제 가슴 회초리 치는 한 강물을 그렸습니다흰 구름의 말 한마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울음을 삼키며 떠나는 뒷모습이 시립니다. 눈감아야 볼 수 있는 한 사람을 그렸습니다닦아도 닦아내어도 닳지 않는 푸른 별처럼날마다 갈대를 꺾어 내 허물을 덮어주는 이 기러기 울음소리 떨다 가는 붓끝 따라빗나간 예언처럼 가을은 또 절며 와서미완의 슬픈 수묵화, 여백만을 남깁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1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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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자로 태어나칠남매 낳고 키운 죄 마침내 병을 얻었어도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오늘도뒤안에서 혼자 울다자식에게 들켜버린 속절없는그 눈빛 낮게 피어있던 꽃엄마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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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는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데도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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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시외버스 정류장 옆 송월식당 주인 조준영 할머니가끓인 추어탕 맛에선 가을 초승달의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달이 지나가는 우물 속으로 풍덩 던지던 두레박 소리도, 가도 가고 끝없이 들리던 추억의 소리가 숨은 뒤안길도 있다 두고 온 절망의 뒷모습도 있다 슬며시 내오는 간고등어구이 두토막에는 묵은 뒷간의 바람도 드나들었던 모양이다 멸치볶음에는 고추의 저린 슬픔이 있어 더욱 슬펐지만 그 빛깔이 멍이 든 오래된 담장 같다 추석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다는 아들을 기다리며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밖을 내다보며 기웃거리는 달을 바라보다가 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0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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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은 잔에다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길거리나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 밖에서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0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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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뽑다가그것들도 동글동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무더위 속에서그것들이 피운 꽃들과그것들이 살아야 할 하루의 삶을무자비하게 뽑다가 훅, 하고눈 속으로 날아든잡초의 하루, 잠시 눈이 캄캄해졌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8.3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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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벅찬 세상 돌고 돌아유일한 희망으로 그 길 가고 있다짐 내려놓고 그 길에 혼자 남게 된 지금시간이 지날수록 빗소리는 나를 놓지 않는다부서져 감겨드는 바람 때문일까연둣빛 몸 출렁이는 산의 가슴에견고한 믿음의 잎만 돋는다얼마나 간절히 문 닫은 세월인가달아나려던 뿌리 깊은 아픔의 시간이쉼 없이 다가오는 빛을 만나여름 넘어섰다슬픔의 한구석에 언제나처럼 자리한 꿈오래되니 지척에 두고도 잡지 못하는 것을하늘이 내려다본다오 눈부셔라 너의 흔들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8.2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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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강가 거닐다가 돌멩이 하나 발로 찼습니다작은 돌멩이 하나 발길에 채어 구르다가돌 곁에 멈추어 섰습니다네가 아프겠구나 가까이 다가가돌멩이 하나 손에 들었습니다오호라 속 빈 곳 한군데 없으니 네가 무슨 아픔 있으랴세상 오욕 겉에 묻어 검은 때 되었어도 가득 차채울 것 없는 돌멩이 하나 비울 것 없음을그제야 알았습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8.27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