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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비 무심하게 내린다숲에 펼쳐지는 공허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심연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나무잎의 눈빛은 알 수 없는 언어비는 나뭇잎을 쓰다듬으며잎새에 그만의 물무늬를 그린다나뭇잎도 기억하리라어릴 때도 자주 숲 속에 있었던 날들그 기억 속에범선이 떠오르는 것을 꿈꾼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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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강아지에도 강아지풀에도강아지는 없다. 어차피강아지도 강아지는 아니다.한없이 떠도는 시니피앙, 외진대야미역으로 가는 굽은 길두 길 높이의 시멘트 담장 어깨에서이삭을 여럿 단 강아지풀 몇 포기가실바람에 꼬리를 흔들며 가을볕에이삭을 말리고 있다. 흙손으로 꼼꼼히바름질해 놓은 시멘트 담장의 저 높은 데를어떻게 뚫고 솟아올랐을까. 엉덩이 깔고담장 밑을 샅샅이 뽑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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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존재의 미학이다사내의 얼굴은 사라지고 부리를 치켜 든 매의 사나운 모습 날기 위해 존재하고 존재하기 위하여 외롭고 아프다조금씩 두려움과 흔들림은 하얀 알몸 여인의 유혹에 빠져드는 바디페인팅에능한 사이비교주를 불러결별을 위한한판 게임이라 둘러대다흔들던 바람이 본색을 드러내 틈새를 비집고 탈출위한 힘찬 날갯짓높이 날아 초고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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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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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로‘ 관념’ 이란 단어를 지운다. 다 지워진 거 같은데 끝에 붙어있는‘ ㅁ’ 이 희미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나는 손가락 끝에 힘을더 주어 박박 민다. 그래도‘ ㅁ’ 은 종이 속에 뿌리라도 박은 듯 헌집을지키고 있는 못자국처럼 생생하다‘. ㅁ’ 은 나에게 끝까지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법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아니면 어디론가 맥없이 끌려간‘ 관녀’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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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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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씨!당신을 만나려고 서울 시립 미술관에 갔어요타이티에서의 당신 그림속에 빠져서 시간을 잊었답니다늦가을 해 질 무렵의, 한바탕 비바람이 지나 갔네요푸르스럼한 파스텔 톤의 서쪽 하늘이 열리고 은회색 자작나무는 빈 가지만 남았군요그렇지요,마을엔 개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뼛속까지 적요로울때저녁 산책을 가셔야지요꽤 날씨가 쌀쌀해 졌나봐요긴 코트에 목도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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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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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을 길게 묶어서고무줄놀이를 했어친구 둘이 고무줄을 맞잡고팽팽하게 당기면눈앞에 펼쳐지는 수평선나는폴짝 폴짝수평선을 뛰어넘는파도가 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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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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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친구라는군요. 세탁을 하면서 콧노래까지 부른 가슴이 들썩거리지 않네요. 미래가 굳어져 간다며 세상 독을 다 마셔버린 한 때문이라 하네요. 검정깃날가지 멱을 따며 그리워한 호치민까지 갔다오느라 깨어날 생각 전혀 없네요. 어머니가 엮어 준 바나나 한 무더기메고 오는 건 아니겠지요. 겨울이라 걱정이지만 추운 줄 모르네요. 작년에도 부산 외항에서 바다로 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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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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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잡은 손가락과 손가락의 노크혼자 마주 잡은 손가락과 손가락의 약속함께 마주한혼자혼자 마주한함께끝없이 무너질 때 복제되는 사람들의 눈 눈 눈, TV 속유리된 심장에 머리를 묶고 유리된 심장에 드레스를 입히고나보다 더 큰 눈물이손가락에 주르륵 흘러내릴 때쏟아지는 노크왕창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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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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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도 강이 있다잠 속에서 나는 가끔 강가를 거닌다한 굽이 돌 때마다 지상에서처럼달강도 언제나 새로운 곳을 향해 굽이친다지상에서 한 떼의 새들이 산허리를 돌아갑자기 강으로 날아오는 것처럼달에서도 한 떼의 빛살들이 강으로무리져 날아오기도 한다강가에서 나는 한 그루 나무나무가 되어 나는 눈 감고 기다린다시간을 꽃잎으로 문 빛의 새떼를내 가지에 날아와 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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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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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새인가 했는데갈대는북으로 몸이 기울고.세게부나 했더니어느새새초롬이 돌아 앉아 있구나.그냥 부는 바람인가.혼자서도 짠한정이 트는 기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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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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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딸아이 결혼식인데늦게 귀가한 남편 얼굴에 부산을 떤다밀착된 면포는 하회탈처럼 웃는다이왕이면 손도 해줄까손을 잡는 순간눈물이 조팝꽃더미처럼 넘실거렸네단단하게 굳어버린 손등과 손가락툭 삐져나온 힘줄우리가 혼인한 삼십년 전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손열심히 조심히 하얀 크림을조팝꽃처럼 뿌렸네한 잠 들었는데잠결에 내 손을 만지작거리는조팝꽃 때문에 간지러워난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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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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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버려진 허물들 찬바람에 밀려뿌리도 뻗지 못한 채누울자리 희망이라고밤낮도 모르며우산을 펴지 않는다서산 잡다 놓쳐 버린 석양눈총 따라 멈춘 자리모두가 뿌리 될까이랑을 높이지 않는데숨겨진 사연 꽃이 필까기다림이 있는 아침기적소리 멀다뿌리 깊은 질경이도물맛 본지 얼마인가그래도 내일은 비 온다고희망을 안고 산다낙타 등 같은 입맛으로 산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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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구름 한 두장 얹혀 와회오리바람 들썩거리네육해공군 뒤섞여 햇살 껴안고 살아가는 비좁은 골목길엔제 아이들 눈에 밟혀 귓속만 푸득푸득 부어 오르고한 귀퉁이 헐렁해진 치마폭에다 나이 깁는 것은 누구인가마디 굵은 손으로 썬 손두부랑 막국수 가닥에 김 솔솔 오르고집에서 기른 콩나물 눈물 적시며 하루하루 연명해가는주름진 네 손등 꺾여 욱신대는 굽은 허리 등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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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아련한 정 때문에서슬한 모난 마음 품고간혹 메인 가슴 움켜 쥐고어쩔 수 없이 수납되어한 줄 추억 속에 묻어버렸다고난의 방황길 이어가는휘감기는 여정의 역사驛舍텃밭 가꾸든 마음처럼푸른 잉크빛 순정 나누면서시간이 남긴 궤적절절히 끝맺지 못한 이야기허공의 속살 안으로차곡차곡 갈무리되어빛 바랜 틈 사이로여윈 삶 깎아내면서모두 스쳐 지나가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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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라도 살짝 열어놓고 가지 그랬어요. 터벅터벅 발소리라도 남겨놓고 가지 그랬어요. 감나무라도 되게 흔들어 놓고 가지 그랬어요.가지에 흥얼흥얼 당신 그 노래라도 걸어놓고 가지 그랬어요.밖이 이상스레 환해요. 당신 그날처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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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밟으며 시간을 쪼갠다흙을 밟으며 시간을 다듬는다돌아보면참 멀리도 왔다한때는 흙을 떠나 멀리 가려고 하였지만결국엔흙으로 돌아와 흙을 밟는다낙엽은 지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사람들은 내 곁을 빙빙 돌며기억 속의 문장을 꺼내어 까만 밑줄을 긋고 있었다흙을 밟다가 의자에 앉는다보이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형용사들이 내일로 말없이걸어간다잠시 시간과 떨어져흙을 다시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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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지 않는발자국소리 아득한구부정한 산 그림자저 혼자 쉬다 가는바람도갈 길을 잃고제 멋대로 꽃 피우는.기척도 소리도다잃어버린 추녀 끝놀라워라손님 맞을 저 으늑한 손길총. 총.총.구슬 방석 빚는금슬 좋은 거미 한 쌍.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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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그들의 속 훔쳐보지 않아도가슴 팍 스쳐가는그만큼의 높이로떡하니담장 안팎에풍경화 내걸린다.길이 지나가며 그어 놓은 선 한 줄그것은 경계가 아닌기울지 않는 저울대보는 이보이는 이 모두마음 널어 두는 곳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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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파래진 아침이툭, 툭, 툭, 솔발놓다까마귀가 쪼아 먹어뼈만 남은 하현달에내 생에제일 낯뜨건 한 토막표구해서 걸렸대나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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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을 안주 삼다, 보석으로 풀려나는2차로도 모자라서 또 자정을 넘기다토해 낸 증거물 궤적, 이제 내가 기소되다한 획만 머리에 이면 온 세상을 호령커늘다이어트 한창인 그대 결기 앞에서넘치게 마셔버린 죄, 이미 나는 공범이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