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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심은 열무씨가노랗게 움이 튼다등 떠미는 세상에서갈증을 꿰매는노오란햇빛소리를자근자근 듣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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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분다비 지나간다하늘이 까맣다서둘러 김장 담그는 집 울타리에까치 날아와 짖는다한국에 와처음 겨울을 맞는 베트남 며느리며느리와 처음 김장 담그는 시어머니시어머니와 베트남 며느리가 서로 바쁘다말은 통하지 않고해는 서산에 걸리고행주 좀 가져오라는 시어머니행주가 뭔지 모르는 며느리멀뚱멀뚱 이것저것 들어보이며‘ 옳지’시어머니의 환한 대답을 기다리는베트남 며느리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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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에밤새 내린 눈이발갛게 얼었다날개 접은 산새는뒷산 숲에 내렸고징검다리 건너던 냇물도바위아래 새우잠 들었다집도사람도꽁꽁 얼어붙어서시골길엔 발자국이딱 한번만 찍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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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에는 눈알이 아름다웠던눈 밖의 우주 한 채가 들어있고뚝배기에는 그들을 띄울 눈물이포르르 끓어올랐을 것이네내가 그대를 바라보는 게 꽃이라면그대가 나를 이루는 것이 밥이라면한 때는 끝없이 흔들리고 싶었던그 열정이 잠시 녹았을 것이나이제 다소곳이 몸뚱어리 거느리며목숨으로 기지개 펴고 일어나 고동칠 너이니애인아 국밥 한 그릇 말아 먹을 때에고맙다는 꽃잎 연서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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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님의 품엔안길수록 정이 들어,내 가슴깊은 곳에똬리 튼 그대 모습한세월고백한 사랑님은 묵묵부답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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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방은 밤마다 시끄럽다, 금 간 입술로 한숨을 쉴 때마다 눈처럼 곰팡이가 쌓이는 벽, 당신의 가슴에 허술하게 발라놓은 시멘트가 부스스 떨어진다. 방수 처리가 안 된 눈에 차가운 물방울이 맺히기도 한다, 오늘도 틀어진 입으로 중얼거리는 창틀의 말은 시리고, 그말을 받아 넘기던 당신의 목구멍이 얼어 터진다. 기침은 깨진 얼음알갱이처럼 사방에 흩어진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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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리 핏줄을 긋고 와첫추위 동백 잎에 눕는다숨죽여 차오르는 봉오리필 듯 말 듯툭 터지는 소리 들을까이밤사 골백번 일어서는 허기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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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으면맛으로만 남아라향기도 색깔도 모양도 버리고오직 짜디짠 맛정신으로만 남아라살아 내 먹장가슴은나 죽으면연꽃 눈부신진흙못이 되지 말고향기 황홀한백합의 골짜기도 되지 말고삼복 타는 불볕 아래비로소 살아나는 소금맛 하나로결단코 썩지 않는정신의 텃밭 되거라한 뙈기 소금밭이 되거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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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느 걸 얹어도 무겁고힘든 걸 알기에그냥 스쳐 지나갑니다한때는 무지개를 찾아 집을 떠났던소녀를 기억하는 지구한 모퉁이를 알기에아슬하게 스쳐 지나갑니다그 눈물 보지 않았기에다행입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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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눈을 감았다쌍꺼풀이 되었다다시 밋밋한 눈이 되었다겨울 잠 자는 눈아내는 동면을 꿈꾸었다45년을 살면서 한 번도 동면을 하지 못했다동면을 하지 못하는 삶은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곰이 되는 것이다아내는 곰이 되었다담즙을 뽑아내듯 오줌과 피를 뽑는 줄을 달고아내는 곰이 되었다점점 화석이 되어가고화석이 되어갈수록신화의 내용은 깊이를 더하였다아내가눈을 떴다겨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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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은한겨울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내려가고 있었다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도 않고연신 쿨룩쿨룩 기침만 토해냈다애가 단 버드나무들이 강둑에 나와 서서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빈 가지마다 새들을 불러 모아 따라나서 보기도 하지만강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짓도 하지 않았다가랑이엔 덕지덕지 얼음이 달라붙어 쉼 없이 덜겅거렸다며칠 밤낮으로 눈이 더 내렸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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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이들길 밝혀 주려동백은 나뭇가지 끝끝왁자지껄, 한 생을 밝혀적막 허공을 감싸 안는다.한 생이 금방이라고여행이란 이런 것이라고.지상의 시린 영혼들등 다숩게 덥혀 주려고동백꽃야단법석, 땅에 내려다시 한 번 등을 밝힌다.사랑이란 이런 거라고세월은 이렇게 흘러간다고.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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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날 좀 때려줬으면 좋겠네잠자는 나를 번쩍 깨워울려줬으면 좋겠네종각에 오래 엎드려 침묵하고 있는 사이눈도 귀도 막히고입도 닫혀버렸네기왕이면 매를 드는 이가경전을 펼치던 손이면 더욱 좋겠네당목으로 냅다 허리를 지르면우렁우렁 큰 소리로 한번 울어보겠네산 넘고 물 건너 들판을 내달리며나무도 흔들고 꽃도 적시며서럽게 서럽게 울어보겠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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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때기 새파란어린 잣나무비탈길 모로 누운 노송에게혹여내 아부지 아니냐고따져 묻다가찰싹찰싹뺨따귀 얻어맞고 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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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달력을 뜯습니다 꽃들이 울컥울컥 쏟아집니다 한해살이를 끝낸 생명들이 종이 낱장을 붙들고 마지막 제 생을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닥에 흩어진 결혼식, 도시가스 검침, 동창회, 정기건강검진, 둘째 생일, 노모의 기제사, 부활절, 클린세탁물 찾는 날, 날, 날들이 빨강, 노랑, 보라꽃을 그득 피위대고 있었던 겁니다날짜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꽃이었다는 것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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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밟고 돌아서서 떠난 사람의 자리허공에서 덜어낸 무게를 천천히 만지고 있습니다가만히 어루만지듯 조금 더 녹는 눈나무들이 두 손 들고 하늘을 향하면그런 저녁 깃든 별들은 누군가 생각 속에서 알전구를 매답니다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카페 안을 구부정한 가로등이무심히 들여다보는 밤종소리가 조그맣고 빨갛게 이어지는 밤타닥타닥 달아오른 장작난로처럼추억 어디엔가 발그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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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쓸쓸해서 비가 내립니다외로운 마을을 향해 함박눈은 쌓입니다고독한 당신을 위해 옷깃을 흔드는 바람이 있습니다가랑잎도 일부러 당신의 뺨 위를 스치고 떨어집니다그렇습니다, 산다는 일이 명치끝에 와 달아오를 때반짝이는 나뭇잎 사이로 슬픔이 턱을 고이고 쳐다봅니다흐르면서 비로소 제 살 도려내는 강바닥도 보입니다글쎄요, 그쯤해서 그리움도 근력이 붙어 어떻게든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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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당신 가슴에 영원히 하나로묶어 주십시오헤어지는 날 헤어질 수 없는나의 그대 사랑을봄바람 꽃바람 하나 되듯긴 세월 어느 한 곳 베어내어 그 자리에흐르지 않고 멈추게 하여 주십시오.언제나 나의 가까이 서 계시는 이여그리운 이여 사랑하는 이여내 꿈속의 뚜렷한얼굴이시여 별이시여 생명이시여힘이시여 노래시여영원이시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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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을 들추다가색 바랜 나뭇잎 하나를 주웠다오, 되살아나는 시간들유년의 꿈들그 잎에 새긴 다짐의 언어들시간은유년의 노오란 은행잎 같은 시간은오래된 책갈피 속에서아름다운 작은 얼룩으로 남겨지는 것다시 일어서는 것숨을 죽이며흑백사진첩을 넘기듯조심조심다음 쪽을 열어 본다그 날의 소년처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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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저 여자아비 없는 아이를 아랫배에 싸안고뒤뚱뒤뚱 길을 가나요사건 25시 화면 속 어린 임신부요리학원에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며밀가루반죽이 부푸는 소리를 엿듣지요가만히 부풀어 오른 제 배를 내려다보지요사람의 성을 가진 배터리를 안고 웃지요TV속에 저 여자 씩씩하게 길을 가네요그의 자궁 안을 걷는 발가락이 보여요그 순간 나는 캄캄한 나락에서 헛발질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3.11.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