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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풀어놓았던 말연기라거두어들이는가입가 쪼글쪼글한주름의 힘으로눈 지그시 감고영혼에 뜸을 뜨고 있는노파에게거기는 금연구역이라고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2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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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평상에 누워 바람 육즙 먹는다알카리성 음색이 부드러움을 만진 시간닫혔던 대문을 열고 슬쩍 오는 초록 그림자 가지 사이 높은음자리 내 정수리 통과할 때절물수목원 삼나무에 직박구리 네댓 마리한라산 철쭉침대에 누워 종족번식 꿈꾼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2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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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심심하셨던 것이다찬바람 불고 있을 바깥세상이염려도 되셨던 것이다그래서 봄날만 되면연분홍 꽃단장 서두시는 것이다 아버지도 심심하셨던 것이다겨우내 차디찼을 땅속 나라가안쓰럽기도 하셨던 것이다그래서 꽃만 피면진종일 꽃마중 맨발이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바쁘신 것이다다 못한 삼생(三生)의 인연 헤아리시고는일 년에 한 번은 봄날을 주시어누구는 꽃촉을 돋게 하시고 그 곁에누구는 뿌리를 뻗게 하시고 그 곁에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1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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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고향대로산모롱이엔 여전히 그리움 숨어 있고길을 지키던 소나무는허리를 꼰 그대로 내가 왔다소리쳐도산은 산대로물은 물대로 내가 간다악을 써도구름은 구름대로바람은 바람대로 무거운 침묵쌓아올리는 무덤가훈장처럼 피어 있는노란 꽃꽃은 꽃대로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1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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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내 이마를 짚고흘러내린 머리카락 쓸어올리는 손따뜻하다이마 위 얹혀진 사소한 체온에 응답하는온몸의 공명단단히 결었던 마음장이 순간 결을 풀고무슨 말인가 입술 끝 달싹이다 그대로 매달려귓불 안쪽으로 들어서며 붉게 익는다 고개만 가끔 주억거리며비릿한 마음 한 두레박 깊숙이 퍼 올린 건 나였는데바람 없던 하늘은 일순, 몸을 휘말아캄캄한 우물 속으로 곤두박질치고땅 밑, 생각의 밑동으론 근심결 일렁인다 어지럽다슬며시 스며드는 뜨거움에 속눈썹 떨리고손톱 끝 까맣게 타며 아득히 발 밑 땅은 꺼지는데현기증 이는 안에선툭,줄 하나가 끊어진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1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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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새벽하늘을 데리고 의사가 분만실로 들어간다 팽팽한 대기팽팽한 지평선차디찬 적막이 흐르고 적막이 흐르고 눈 덮인 들판 끝으로먹물처럼 퍼지는 여인의 외마디 비명 놀란 새가 푸드덕 허공에 희디흰 칼금을 긋는다 하늘의 회음부가 예리하게 절개되고아기 울음 터진다사방으로 빛이 터진다 눈 뜨는 돌눈 뜨는 대지샘물이 걷기 시작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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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늘 밝은 줄 알았습니다내 귀는 늘 환할 줄 알았습니다내 이빨은 언제나 튼튼하리라 믿었습니다어느 날 갑자기희미해진 눈먹먹해진 귀흔들리는 이빨걷잡을 수 없이 나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무릎 삭아내리고허리뼈 또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옆에는 아픈 것도 모르는 아내가 웃고 있습니다덕분에 나는,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다이제는 현미경으로도 세상을 읽게 되었습니다어린아이인 아내 덕분입니다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1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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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은 강으로 살아 있는 기쁨일진대,샛강이야말로 또 다른 권태의 심심풀이였을 거그 또래끼리 키 재기로 팽팽하게 널부러진 호박돌묵 가운데 고즈넉이 퍼질러 앉은뻔뻔스런 하오의 아뜰리에 문진文鎭일 수 있는 본새일거다그래, 몸서리 쳐진 얼음장 같은 실존에도몸 팽개칠 수 있는 정신지체아의 자해로신독의 고독한 처신으로차라리 구도자의 파리한 이마일진대뜻 밖에서조차 불변한다는삶의 본래적인 기슭애초에 동여맨 옷고름만 도톰한 푸른 정맥으로 남아그 오랜 세월 추상같던 서릿발구름처럼 속속들이 드러내 감춘 세련이지금 손바닥 위에 낮음으로 있는 침묵겸손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1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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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까지 하늘 향해 고개 꺾지 않는꽃 한송이 있네 아래쪽 이파리들부터들었던 두 팔을 서서히 내리고지친 어깨를 털며 물러날 때 가까운 꽃들마저 흙빛의 질린 얼굴을 하고빛나던 꽃잎 하나씩땅에 버리며 돌아설 때 끝까지 제 빛깔 잃지 않으며 서 있는들녘의 꽃 한송이 있네 그토록 연모하던 하늘마저 몸 바꿔싸늘히 식은 살갗으로 저녁 바람에 손을 끌려와무수한 꽃의 목숨을 유린하는 세월 속에서 향기를 버리지 않음으로끝까지 이름을 버리지 않는허리 꺾지 않음으로 끝내살아온 자기 길 버리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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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7.05.0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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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용천동굴에서 보낸六千年의 고립을어떻게 말해야 하나주홍미끈망둑이름 하나 얻었으니눈 더 퇴화한들어둠은 더 이상두려움이 아닐 것천연기념물 제466호가큰머리에 멜라닌 색소 빠져나간주홍미끈망둑이라면나는 오직 당신에게눈멀고 싶은수인번호 제467호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0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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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내는 정물이다옛날 기억 속 노랑나비 꿈으로 나풀대지만화려한 테를 두른 액자 속 고요한 풍경 오랜 세월 고여 있는 어느 한 컷의 무심천그러나 강물은 굽이쳐 흐르며 오늘을 뚫고 나간다나는 늘 두 풍경 가운데 서 있다 길은 아득히 멀지만내 가야 할 곳 가까이 이르렀음에 발걸음을 늦추며새삼스레 사방을 본다온갖 시달림의 지나온 길에도 지등紙燈을 밝히듯무심한 자식들의 안부를 묻는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0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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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는다 내리치는 쇠망치에불꽃이 튄다, 못의 눈안으로 안으로 울리는 통증콘크리트 벽 속 깊이 박힌다시멘트 가루 붉게 흘러내린다 그 위로흑백사진 한 점 걸린다 그 먼 길 자식을 앞세우던 날늙은 어미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도도려낼 수도 없는 통증은끈끈한 점액질로 뒤엉켜 옹이로 박혔다수많은 날 햇볕이 녹아 그 속에 들면고통도 눈물도 맑고 투명한 사리가 될까빛을 잃고 쓰러진 저 산기슭 노송처럼어미도 무덤의 어둠 속으로 내려가복령을 키우리라 못 박힌 가슴, 저 땅에 또 못이 된다산다는 건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0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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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유목민의 핏줄깊이 내려놓은 집은오래 머물 량으로 지어진 것 아님부레옥잠 가시연꽃이 그러하거늘바람에 조금씩 떠밀리며물 속 어린 고기들에게그늘을 만들어주는 것.타는 햇볕으로 달궈진 물땅의 막히는 숨통 끝에작고 여린 꽃잎 피워벌레 같은 시 몇 편 남기는 일본시 없는 집에 연연할까닭 없는 슬픔도둥둥 띄우는 것이유가 더 이상 없는 삶이어도물위의 집에 머물러 있음은청개구리 울음 끝번지는 비의 무늬에미련없이 뿌리 떼어주는한 사내의 집그리곤 넌지시 바라보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5.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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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말들이 물들이고 지나가는 새벽질주하는 속력은 몇 개의 바람을 가르고나는 이백만 년을 견딘 지층으로 압축되고곪아터지는 몇 겹의 긴 편지를 읽는다언제 우리가 만났던가요 헤어졌던가요빳빳한 말의 귀두는 사정을 해야 할 곳을 잃어젖꼭지를 가만히 만지던 추억을 방사한다 어제 그는 망가진 자궁을 들어냈다집을 거쳐 간 잡것에 대한 회한을(참을 수 없는 흠집이거나 희망인)봉합하고 새로운 집을 짓는 거미처럼허공에 살랑거리는 바람을 채집하는노동의 결구에 대하여 생각한다병든 말의 환부를 투명하게 닦으며주먹만한 宮이 끝내 허물어지면집은 완성되리라 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4.3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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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오후 네 시얼음에서 풀려난 강이아가미를 뻐끔거린다옆줄로 봄의 깊이를 가늠하고순은의 지느러미를 흔들며바다로 깊어가는 강,금빛 해를 입에 물고비닐을 뚝뚝 떨군다비늘 떨어진 자리마다발톱이 붉은 새가 날아와부스러진 햇살을 쪼아 올린다근질거리던 강둑에연두색 물집이 툭툭 불거지고나는 봄볕 닿은 자리마다불에 덴 것처럼저릿저릿 아프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4.2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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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로경직된 하루의 마디를 풀고종일 고요로 꽉 찬 공기의 미로 속으로열쇠를 꽂는다.딸깍! 이가 맞을 때금속의 열쇠는 무한정 따뜻하다. 밥을 주지 않아도또렷이 시간을 잡고 있는 시계나몸에 새겨진 피로를 읽는 소파나몰핀처럼 신경을 끌러버리는 쟈스민이일제히 마중 나오는 집. 불은 잠시 켜지 않기로 한다.어둠에 우두커니 서서어둠이 눈 밝힐 때까지,하루종일 바람과 내통한그들의 역사를 읽을 때까지,기다리기로 한다.공생하기로 한다.가족이란 이름으로.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4.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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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 육두품 시인.혼자서 낙엽에 써두었던좀처럼 흘러가지 않는 글귀들 모아아무도 읽지 않는 전집을 엮네. 남들이 읽어주지 않는다면그 글씨는 있으나마나!바람더러 읽으라고 허공에 쓰네.물결더러 읽으라고 모래톱에 쓰네. 남들이 읽어주지 않는다 해도시는 이 생이 준 고마운 선물.세월의 갑골에 뼈로 아로새기는시인은 이 생이 준 가시면류관. 마음 속에 뒹구는 낙엽들 모아나무 뿌리나 읽을 시를 쓰네.달과 별과 구름의 전집을 엮는나는 야 육두품 시인.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4.2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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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이 떠나버린 인력 시장허공에 매달려 있는 여덟 마리 제비아직 성숙되지 않은 족속이다입 속에는 박씨가 있었으나어제의 채무에 소비되었다파란 때가 낀 발톱은직립의 힘을 잃었다강남을 다녀온 지 오래된 초여름어디에도 싱싱한 젊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들눈빛은 날카로우나 발목에 매인 편지에는수취인 불명의 낙인 선명하다무작정 시장 근처를 서성이는 것이 직업인저들의 날개에는 나사가 풀려있다또 한 대의 차가 떠났다저들을 서 있게 하는 힘들이사차선을 어지럽게 질주한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4.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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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봄의 치명적인 실수라면, 정작자신의 봄을 놓치는 것 동백을 보고 싶었으나동백이 흐드러지게 떨어진 걸보고 왔다. 내게서 떨어져나간시간의 낭자한 머리카락들. 나의 치명적인 실수라면동백 한 잎과 머리카락 한 올그 둘을 엮은 치정의 죄. 순식간이라, 번번이 동백을 놓치고머리카락을 놓치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4.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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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점과 살점 사이 저 내밀한 붉은 말 내 몸 어딘가에 그대 흔적 스며 있다 한겨울뜨겁게 울더니군불처럼 지펴졌다 싸늘한 구들장에 꽃향기 번지는 시간 눈 덮인 어느 능선 틈이 하나 생겨났다 첫차로찾아올 봄이물들여논 나의 얼룩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7.04.02 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