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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포석이 신간회의 결성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된 것은 그가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 사이 하나의 ‘공유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사회주의 계열의 인물로 분류되는 포석은, 그러나 극단적이고 협착(狹窄)한 사상적 틀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지사(志士)로서의 면모로 유연하고 포용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그가 가진 그런 ‘사상적 여백’이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의, 섞이지 않을 듯했던 물과 기름의 관계를 융합시킬 수 있었던 큰 틀이 되었던 것이다.하지만 그런 ‘화학적 결합’은 언젠가는 깨질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3.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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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소금은 물에 잘 녹는다. 완전히 녹아 자신을 타자와 일체화시킨다. 현상은 변했으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집단의 이익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과 같다.바다는 소금이 있어 보존되고 인간 사회는 어머니가 있어 보존된다.소금의 헌신처럼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이 각 가정마다 존재한다. 이름하여 어머니이다. 하느님은 각 가정마다 다 갈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단어들 중에서 가장 치유력이 높은 단어가 엄마, 어머니라는 단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식을 위해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3.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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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그 뒤에 나는 먼저 조선으로 왔었다. 군은 다니던 학교를 마칠 양으로 한두 해 동안 더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 한두 해 동안은 서신도 잦지 못하였다. 군은 학교를 마치고 와서 집에서 치산(治産)하고 있더란 말을 풍편(風便)에 들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일시적 방편인가? 혹은 영구인가?’ 하는 의심이 나면서도 어떤 기대를 저버리는 듯싶어 분한 생각이 펄썩 났었다. 나는 곧 붓을 들어 심히 꾸짖고 욕하는 언사로 편지를 써서 부쳤다. 군의 답장은 곧 왔다. 나의 편지를 보고 울었다고&hell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3.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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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어떤 음식 재료이든 소금에 절이면 부피가 작아진다. 그 상태로 오래 저장해 두면 발효음식으로 변한다. 발효음식은 현상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으면서 맛과 향기는 더해간다. 겸손한 사람은 이처럼 자신을 상대방의 눈높이에 낮추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썩지 않고 발효되는 사람이다. 자신을 낮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죽는 것만큼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낮출수록 높아지고 내려갈수록 올라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저녁 7시, 8살 여자아이 소영이와 사내아이 둘(의찬이, 영찬이) 삼남매를 돌보기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3.1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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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는 현대인들이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철학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이 일환으로 매월 둘째·넷째 월요일에 특집으로 ‘동양포럼-동아시아의 공통가치를 찾아서’를 연재한다.이 연재물에는 한·중·일의 석학들이 참여하는 좌담, 대담, 토론, 특강 등 다양한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첫 회로 지난 4일 김태창 박사(한·중·일이 함께 공공하는 철학모임 대표)가 동양일보 아카데미홀에서 본사 전 사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 내용을 싣는다. ■‘맑고 깨끗한 고을’ 청주(淸州) 오랜만에 찾은 고향 더러운 모습보고
동아시아의공통가치를찾아서
조아라 기자
2016.03.1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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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趙明熙君에게창작욕이 성하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그저 지냅니다. 스트린드베리가 30대 때의 스웨덴의 사회적 분위기를 맛본것 같은 큰 걸작이 지금 일 소부르조아 가정 안에서 생활하는 내게도 돌아올 것이외다. 나는 숙명론자요, 숙명을 벗어나지 못할 줄 압니다마는 한 가지 이 how의 생활에서 내 가치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요사이 실업(實業)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그러나 나는 나요! 겉으로 일 광인(狂人)에 지나지 못한 swedish dramatist의 생활을 난 흠모합니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3.1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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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아내가 식탁에 메모 한 장 놓고 외출했다.당신에게 바라는 점1)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전화하기2) 하루에 두 번 이상씩 사랑한다는 말 해주기아내와의 전화는 힘이 부친다.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니까 듣기 힘들다. 그런데 하루에 두 번씩이나 전화 하라니. 그리고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정으로 사는 거지 꼭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하나. 아내의 일방적인 요구에 은근히 부아도 나고,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게 아무래도 닭살스럽다. 이보다 더 큰 형벌은 없는 듯싶었다. 무시해버릴까 하다가 왠지 찜찜해서 주머니 속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3.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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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가장 친했던 벗 우진을 추억하며 쓴 포석의 글 ‘김수산(金水山) 군을 회(懷)함’은 당시 김우진과 윤심덕의 ‘현해탄 투신 정사’가 얼마나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지, 수산과 포석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웠고 포석은 그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풀어내야 했는지, 그리고 삐뚤어진 매스컴으로 인해 포석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그래서 포석은 너무나 먹먹하여 묵히고 묵혀두었던 상처, 수산의 자살을 두고 따따부따 세상에서 떠들어댔던 선정적 이야기들에 대해 “그가 죽은 뒤에 세상에서는 그의 죽음과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3.0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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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 소금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닷물은 2.8%의 소금이 녹아 있다. 적은 양의 소금이 녹아 있는 바다는 어머니의 양수처럼 생명을 품는다. 사람의 몸에도 2.8%의 소금이 필요하지 않을까. 2.8%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어떤 음식에든 소금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 어디에서든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소금이 있어 음식을 썩지 않게 하는 것처럼 세상은 사랑이 있어 썩지 않는다. 소금으로 발효시킨 음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겸손한 사람과 같으며 소금이 물에 완전히 자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3.0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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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김수산(金水山) 군을 회(懷)함작년 8월 4일에 수산(水山)이 죽었다. 그가 죽은 뒤에 세상에서는 그의 죽음과 그의 생전(生前) 일에 대하여 멋대로 지껄이고 멋대로 판단(判斷)을 내린다. 더구나 무근(無根)한 사실(事實)을 함부로 과장(誇張)하여 내어 놓는 신문 잡지의 기사란 것은 차마 볼 수가 없을 만하였다.그런 지도 벌써 죽은 지 1기년(朞年)이나 되었다. 그렇건만 나는 이때껏 그의 일에 대하여 줄곧 침묵(沈默)만 지켜왔었다. 그것은 그가 죽을 그때에도 나의 생각과 감정(感情)이 몹시 착란(錯亂)도 하고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2.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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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1925년 2월 1일과 3월 1일 포석은 개벽 56호와 57호에 소설 ‘땅속으로’를 연속해서 발표한다.4월 1일에는 같은 잡지 58호에 시 ‘어둠의 검에 바치는 서곡(序曲)’과 ‘온 저잣사람이’를 발표하고 신여성 4호에 시 ‘고향의 봄’을 발표한다. 6월 1일에는 개벽 60호에 시평 ‘나는 어럿케 생각한다’를, 7월 1일에는 시대일보에 수필 ‘생명(生命)의 고갈(枯渴)’과 개벽 61호에 시 ‘바둑이는 거짓이 업나니’와 ‘어린 아기’를 싣는다.8월 1일에는 개벽 62호에 시 ‘나에게 일반성(一反省)의 낙원(樂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2.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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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분에 넘치는 축복이라며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기도하는 손양원 목사의 9가지 감사 조건을 들어보자.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2.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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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에피소드 3.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열차가 달리고 있었다. 포석은 ‘추∼ 추우∼’ 소리를 내지르며 달리는 기차가 자신의 모습인 듯도 싶어 마음 한켠 착잡했다.열차의 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들렸다. 서울 마포나루를 떠났던 것도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 강산이 한 번 바뀔만한 세월이었다. 옥죄어 오던 일경의 감시망을 피해 포석은 1928년 여름 조선을 떠났다. 떠날 때 포석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정보가 새어나가면 붙잡힐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더러운… 참 나쁜 놈들 같으니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2.1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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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손양원 목사가 그런 분이다.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감동이 있다. 용서하는 자의 자유와 용서하는 자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한다.손양원 목사는 일본 스가모 중학교를 졸업(1921년·19세)하고 귀국하여 경남성경학교에 입학(1926. 24세)하여 주기철 강사로부터 순교신앙을 배운다. 평양신학교 졸업 직후 여수 나환자 병원 애양원 교회 전도사로 부임(1939년·33세)한다. 신사참배 거부하다 일경에 의해 체포(194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2.0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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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한설야의 말에 의하면 1925년 당시 ‘생활상의 위협’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은 조명희 선생이었다고 한다. 포석에게는 남달리 많은 가족이 있었고 그 부양 능력은 오로지 조명희 선생 한 사람에게 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그러고 보면 포석은 조선과 러시아에서 두 아내와 7명의 자식을 두었던 셈이었다.포석에게는 당시 부인 민식과 장녀 중숙, 차녀 중남, 장남 중락이 있었고, 1927년 차남 중윤이 태어난다. 소련으로 망명한 뒤 재혼한 황 마리아와의 사이에 장녀 조선아와 장남 조선인, 차남 조 블라디미르까지 둔 것을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1.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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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생을 보내주셨을 것이다. 돈, 사업가, 건강, 의사, 오락, 연예인 그러나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였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주셨다.(크리스천 문학가 로이 레신)구세주는 예수의 브랜드 가치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 마태복음 18장 18절부터 35절까지는 예수의 용서에 관한 비유의 담론으로 채워져 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가설로 시작하여(18절),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메시지(21-22절)를 전하고, 무자비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1.2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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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황동민 교수는 일본 유학생활을 끝내고 조선으로 돌아온 포석이 ‘남다른 곤궁과 기아에 처박힌 처지’에 놓여 있었음에도 “조명희처럼 주림을 잘 참는 사람도 없었으며 사흘동안 굶으면서 참는 것은 조금도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고 포석을 잘 아는 동지들의 술회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그러면서 “(포석은) 시시로 닥쳐오는 기아를 참지 못하여 생활의 추악한 면과 타협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하기 위하여, 그리고 인민의 기아와 고통을 영원이 없이하기 위하여 반드시 자본주의 착취 제도를 청산해야 한다는 신념에 도달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1.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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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00지방법원 민사법정실. 판사와 조정위원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다. 그들 앞에는 이혼소송을 청구한 사십대 중반의 부부가 마주보고 앉았다. 그들 부부는 아들 딸 남매를 두었단다.조정위원 한 분이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나요?”“저 여자와는 결혼생활을 더 할 수 없습니다. 저 여자가 교회에 미쳐서 나도 몰래 전세보증금 4000만 원을 빼내어 교회에 헌금으로 바쳤어요. 그날그날 겨우 먹고 사는 우리 형편에 교회에 미친 여자와 어뗳게 삽니까?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습니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1.1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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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1925년 2월 개벽에 단편소설 ‘땅속으로’를 발표하면서 포석은 시보다 단편소설과 수필쪽으로 관심이 방향을 돌렸다. 이로부터 포석은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할 수 있는데, 김기진과 이기영, 최승일, 안석주, 염상섭, 최학송 등과의 교분을 나누면서 사상적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그해 포석은 이기영을 주선하여 조선지광에 취직시키고 카프의 맹원으로 가입하게 했다. 8월에 결성된 카프는 민족민중주의적 삶과 문학을 견지해 온 포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포석은 카프의 정치학습 그룹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김명기 기자
2016.01.1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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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아들 셋을 둔 부부가 살았다. 아내가 시름시름 앓더니 신기(神氣)가 들었다. 신명나게 굿판을 쫓아다녔다. 남편은 아내가 들어오는 대로 작대기로 마구 때렸다. 아내는 남편 몰래 작두를 탔다. 손자 다섯 둘 때까지 남편과 아내의 쫓고 쫓기는 일이 계속되었다.아내는 남편의 반대로 끝내 내림굿을 받지 못하였다. 집안은 허구한 날 싸움판이었다. 부부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이 싸우고 자식끼리 싸웠다. 손자들이 보고 자란 건 가족끼리 싸우는 모습과 서로 비난하는 말뿐이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밤중에 거리에서 비명횡사하였다.그 후 몇
권희돈 문학테라피스트의 '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
동양일보
2016.01.11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