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지난 달 가족들과 속초로 여행을 다녀왔다.

태풍의 여파로 여전히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장마 끝자락이라 그런지 경기 침체 때문인지 항구도 횟집도 어시장도 한산한 편이었다.

주문진항을 거쳐 고성의 통일 전망대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갔다가 속초로 내려와 호텔에 짐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설악산으로 향했는데, 아무리 주중이고 빗방울이 흩뿌리는 날씨라지만 칠월 말에 설악산이 이렇게 한산하다니! 설악에 올 때마다 주차할 자리를 못 찾아 빙빙 돌고 붐비는 군중의 물결 속에 몸을 내맡긴 채 천천히 이동하곤 했었는데, 설악산 입구에 우리 가족 밖에 없다니 정말 의외였다.

남편과 두 아이는 줄서지 않고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며 매표소로 향했고, 나는 허공에 매달리는 기분이 싫어 혼자 비선대로 향했다.

신흥사를 지나고 돌다리를 건너자 초록의 세계가 전개되며 이끼가 낀 바위와 박달나무, 층층나무, 떡갈나무, 잣나무, 오리나무, 전나무가 늘어선 길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초록의 길을 혼자 걷자니 영국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떠올랐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보물섬’을 쓴 스티븐슨은 오지 여행을 떠나는 것을 무척 즐겼던 작가이다. 그는 보트 여행, 기차 여행, 도보 여행, 항해 등 안해본 여행이 없는데 여행을 하고 난 후에는 꼭 여행기를 남겼다.

그는 당나귀 한 마리를 데리고 인가도 없는 남부 프랑스의 산을 넘은 적도 있는데, 그 여행은 ‘당나귀와 떠난 여행’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는 여행을 하다가 밤이 저물면 맑은 공기와 물이 흐르는 초록 호텔에서 잠을 자곤 했다.

“밤은 지붕 아래 닫힌 세계에서는 죽음처럼 단조로운 시간이다. 그러나 열린 세계에서 밤은 별과 이슬과 향기와 함께 가볍게 흘러가며… 밤새도록 깊고 자유로운 자연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는 상류층 출신이었지만 자연을 벗 삼아 야외에서 주저 없이 노숙을 했는데, 하룻밤 자고 난 후 최고의 초록 호텔을 예찬하며 노숙한 자리에 동전을 남겨두기도 했다. 요즘 자연보호를 위해 과일 껍질이나 채소도 버리지 말라고 하는데 웬 동전이냐고 하겠지만, 이는 자연훼손이 아니라 최고의 숙소였던 자연에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초록 호텔에서 최고의 대접과 세심한 배려를 받았다. 방은 유쾌했고 물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융단과 독특한 천장은 물론 창밖으로 보이는 전망은 최고였다. 나는 이같은 아낌없는 환대로 인해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떠나면서 반쯤은 장난스럽게 내 숙박비로 충분히 쓰였을 만큼의 돈을 풀밭 위에 남겨두었는데 그것이 또한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삼십 년 전 설악산에서 노숙을 한 적이 있었다. 세 여대생이 준비도 없이 백담사에 갔다가 아름다운 풍광에 도취된 채 봉정암까지 올라갔는데 날이 저물어 버렸다.

봉정암에 우리가 쉴 공간은 남아 있지 않았고 텐트도 없이 작은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온 세 여학생은 별을 헤아리며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위험과 고생으로 점철된 그때의 무모한 산행은 우리만의 비밀로 감춰두었었는데, 자연의 깊은 내면과 마주 했었던 그때의 체험은 은연중 내게 내면의 힘이 되어 일상에 나타나곤 했던 것 같다. 그것은 사회에서 가진 것이 많던 적던 간에 우리가 거대한 우주의 일부이며, 결코 보잘것없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날 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설악에 어떻게 감사를 할지 곰곰 생각하며, 또 남편과 두 아들에게 하늘을 천장으로 삼고 풀밭을 침대로 삼아 초록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자고 얘기를 해야겠다며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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