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이 줄다리기를 해오던 전기요금 인상폭이 결국 4.9%로 결론났다. 한전은 3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같은 인상률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의결했다. 지식경제부 산하 전기위원회는 한전의 인상안이 상정되면 요율의 적정성 여부를 심의한다. 여기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이달 중에 오른 요금이 적용될 전망이다. 한전은 지난 4월과 7월에 13.1%와 10.7% 인상안을 의결했지만 물가와 서민생활 부담을 우려한 정부로부터 모두 거부당했다. 이 과정에서 한전 이사회는 법과 규정에 따른 요금변경을 내세우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전은 이번에 전기료를 올리더라도 올해 순손실이 지난해 3조5000억보다는 줄겠지만 그래도 2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불만스런 모습이다. 여차하면 올 겨울에 전기요금을 다시 조정하고 연료비 연동제 같은 제도 개선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우리가 전기를 물쓰듯 펑펑쓰고 있으며 이는 요금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1인당 전력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7배 많고 34개 회원국 가운데 10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요금도 일본의 40%, 미국의 70%선에 불과하다. 전기료 현실화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올해 상반기 총괄원가 부족액 3조7000억원 중 1조3000억원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료를 가정용과 차등화해 올린 것도 이해가 간다. 간당간당한 전력예비율 때문에 블랙아웃에 대한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처지를 감안하면 전기료 인상은 국민의 절전노력과 함께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한전도 이번에 올리는 전기요금으로 원전 1기에 해당하는 85만KW 정도 감축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여전히 냉랭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한전기협회가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현재의 전기요금 수준이 적정하다는 응답이 47.7%였고 비싼 편이라는 대답은 37.4%였다. 전기요금의 원가 회수율이 87.4%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줬는데도 국민의 85% 정도가 현재의 전기요금이 적정하거나 오히려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생활이 팍팍한 서민들에겐 전기료 인상이 마뜩잖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소폭이라지만 오른 전기료를 추가 부담해야 하고 물가도 연쇄적으로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전이 자회사들과 함께 과연 제역할을 다하면서 요금을 올리는건지 못미더운 것이다. 올해들어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같은 노후 원전이 잇따라 멈춰선 데 이어 지난 달 30일에는 가동된 지 10년밖에 안된 영광원전 6호기가 발전정지 상태가 됐다. 원전 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보령화력 1·2호기 건물 지하 전기실에서 불이나 11시간만에 진화됐다. 보령화력에서는 같은 달에 5호기 보일러를 수리하던 건설근로자 13명이 추락해 2명이 숨진데 이어 5월에도 건설근로자 1명이 작업중 사망했다. 4월에는 태안화력 2호기 보일러 작업중 건설근로자 5명이 추락해 1명이 숨졌다. 작년 9월에 발생한 사상 초유의 대정전사태의 기억이 생생한 판에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발전소의 고장과 발전정지, 안전사고 등 부실한 공급관리가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키우고 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혁신만이 신뢰를 얻고 전기요금 인상의 당위성도 인정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휴가가 거의 끝나는 이달 중순부터 시작될 전력공급 비상사태를 철저한 대비로 아무런 피해없이 넘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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