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자 수필가

 

연일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불볕더위에다 압력솥더위까지 등장한 판이다. 경기도 포천의 낮 최고기온이 올여름 들어 가장 높은 섭씨 38.3도까지 치솟는 등 전국이 극심한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 지방의 수은주가 섭씨 35~38도 안팎까지 올라가면서, ‘폭염(暴炎) 경보가 발령되고 생명까지 잃는 판이다.

이런 더위 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엄살을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며 더위를 피할 생각에만 골몰하였다. 뒹굴거리며 신문을 보다가 어떤 기사를 읽던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벌떡 일어났다. 내 엄살이 부끄러웠다. 이까짓 더위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양 팔 없이도 400학교·직장서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양팔이 없는 지체 1급 중증장애인 김영태씨의 이야기였다. 그는 현재 롯데그룹 정규직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27세의 당당한 청년이다. 양팔이 없이도 이런 좋은 직장에서 일 하고 있다니 얼마나 대견하고 놀라운 일인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6세 때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다가 아파트 옆 변전소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 감전사고로 양팔을 잃었다. 얼마나 기막힌 사고인가. 본인도 본인이지만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슴이 아리다.

좌절의 나날을 보내다가 다행이도 마음을 잡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양팔은 없고 돌이킬 수도 없으며 나는 살아갈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되돌린 이후 그는 낮은 탁자를 놓고 거기 발을 올려 발가락으로 책장을 넘기고 연필을 쥐었다. 그렇게 한 공부였으니 상상만으로도 힘겹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컴퓨터 키보드를 발가락으로 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공부도 잘 했다고 한다. 몸으로는 할 수 없어도 머리로는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그는 손가락 대신 발가락으로 분당 400타를 치며 자유자재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실력을 갖추었고, 거뜬히 면접을 통과해서 정규직 프로그래머로 채용된 것이다.

그에게는 양팔이 되어준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교실에선 책을 꺼내 책상 위에 놓아주고, 식당에선 밥을 떠 입에 넣어준 친구다. 친구는 함께 대학에 가기로 했다. 둘은 인하대에 나란히 입학하여 함께 공부에 매달렸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우정이 눈물겹다. 어찌 그 친구뿐이었겠는가.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뒷바라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장애를 극복하려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어찌 다 말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마부작침(磨斧作針)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이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젊은 시절 학문을 닦기 위해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갔다가 공부에 싫증이 나서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백이 물었다.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하지.”

도끼로 바늘을 만든단 말씀입니까?”

이백이 기가 막혀서 큰 소리로 웃자,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며 꾸짖듯 말했다.

얘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가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이백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한눈팔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그가 대시인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김영태씨는 10가량 남은 왼쪽 팔로 못하는 게 거의 없단다. 전화벨이 울리면 목에 건 휴대전화를 그네처럼 흔들어 왼팔 위에 얹고 입술로 통화 버튼을 눌러 받는다. 현란하게 입술을 움직여 문자도 보낸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따라야 했을까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취업이 안 된다고, 일자리가 없다고 야단이다. 청년실업률은 12.3%OECD국가 가운데 프랑스(16.2%)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날씨는 덥고 짜증나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당당하게 달리는 김영태씨의 인간승리를 거울삼아 다시 나의 길을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의 현실이다. 런던 올림픽에서 선전하여 폭포수 같은 환희를 안겨주는 장한 선수들도 중단하지 않는 꾸준함으로 이긴 자가 되어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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