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

 

어둠이 조심조심 바다에 내려앉는다

앉을 때 수평선 이마가 잠시 환해진다

몸과 몸이 바뀔 때 너와 내가 환해지는 것처럼

잠깐씩 더 따뜻해지고 아주 잠깐씩

못했던 이야기도 꺼내는 것처럼

깜깜한 시골 길 가다 호롱불 밝힌 집 보듯

어스름은 고요히 한 곳을 바라볼 때만 나눌 수 있다

몸이 몸으로 건너가고

나비가 꽃 속에 그윽이 파고들고

같은 곳을 보다 마주 보게 되는 애틋한 시선

그렇게 어스름이 수평선에 집 한 채 지을 때

조금 더 오래 모래사장에 앉아 있고 싶은

기다림으로 젖어가는 것이다


몸과 마음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어두워져 가겠지만

내 삶의 어스름을 간섭하는 시간들도

수평선에 걸린 작은 불빛에서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혀 가겠지만



△시집 ‘말향고래’ 등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