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친엄마를 찾기 위해 자신을 버린 나라인 한국을 찾은 입양인, 청각장애를 가진 할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하는 소년가장, 그 형을 끔찍이 사랑하는 4차원의 동생, 밤낮으로 숯불만 피우며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아온 고깃집 아들, 나이트클럽 웨이터, 그들이 스키점프 선수가 됐다. 엄마와 살 집이 필요해서,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코치의 딸에게 반해, 하늘을 나는 스키점프 선수들의 모습이 멋져서 등등의 개인적인 이유로, 스키점프가 뭔지도 모르면서 단지 스키를 타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은 대한민국 최초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으로 급조된다.

몇 년 전 상영됐던 영화 국가대표얘기다. 관객수 803만명을 돌파하며 사랑을 받은 이 영화는 스포츠 정신을 통한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한 휴먼 스포츠 영화로, 여자핸드볼선수들의 경기와 애환을 주제로 제작됐던 영화 우생순과 함께 비인기종목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기대를 뛰어넘는 성공과, 예상치 못한 결과와 반전이 드라마처럼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 같은 경기들이 런던 올림픽 경기장에서 연일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한국은 245명의 선수가 출전해 현재 12개의 금메달을 획득, 중국, 미국, 영국에 이어 4위를 달리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에 요즘 한국의 올림픽 팬들은 신바람이 났다. 경기규칙을 몰랐던 펜싱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심이 일고, 도마가 무엇인지 그 진수를 몸으로 보여준 기계체조선수 양학선에 대해서도 화제다. 홈그라운드인 런던에서 영국을 침몰시키고 올림픽 사상 첫 4강에 오른 축구팀은 생각만 해도 어깨가 올라가고, 양궁과 사격, 유도, 레슬링 등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의 이름은 친숙하게 지면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올림픽의 재미를 이것으로만 보면 안된다. 사실 금메달 숫자만 따지는 나라는 참가국중 몇나라 밖에 안된다. 한국보다 참가선수가 많은 나라들은 영국(541) 미국(530), 러시아(436), 호주(410), 독일(392), 중국(380). 프랑스(330), 일본(293), 이탈리아(284), 스페인(282), 캐나다(277), 브라질(258)로 결국 10여개 나라의 각축인 셈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참가국 204개 국중 10명이하의 선수가 출전한 나라는 103개국. 그중 단 2명의 선수만을 출전시킨 나라도 11개국이나 된다. 그들은 메달에 대한 관심보다는 참가에 의미를 둔다. 또 올림픽 최초로 참가국 전체가 여성선수들을 출전시킨 것은 성평등의 의미에서도 의의가 있다.

흰색 후드를 쓰고 긴 소매 상의와 발목까지 가리는 러닝 팬츠를 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자 육상선수가 레이스를 마치자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진 것은 그가 메달권에 들어서가 아니라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심각한 사우디에서 여성이 최초로 올림픽 경기에 참가해 새 역사를 열었다는 점 때문이다.

순위와 관계없이 아름다운 꼴찌들은 여러 경기에서 눈에 띈다. 남자 개인혼영 400예선에 출전한 18세의 아흐메드 아타리(카타르)는 조 최하위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헤엄쳐 큰 박수를 받았다. 육상 여자 400에 나온 잠잠 모하메드 파라(소말리아)49명중 최하위였지만, 내전과 무정부 상태가 지속하고 있는 어려운 여건속에서 올림픽 무대에 선 것만 해도 소말리아 국민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 조정 남자 싱글 스컬에 출전한 하마두 지보 이사카(니제르)는 불과 3개월 전부터 조정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선수. 그는 이번 대회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와일드카드를 받아 나왔다. 71세로 이번 대회 최고령 선수인 일본 승마 국가대표 히로시 호케쓰씨도 그런 의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번 런던올림픽의 슬로건은 세대에게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이다.

비록 경기력은 떨어지지만 최선을 다하는 꼴찌들의 도전 정신은 세대에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선수들도 기량과는 무관하게 모두 아름답다. 메달을 따지 못하면 어떠랴.

그들은 이미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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