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두<청주 봉명고 교사>

얼마 전 인근 모 대학의 대학원 박사과정 중에 있다는 현직 교사 한 분이 찾아 왔다.

대학원에서 중등 학습자들의 학교 부적응 실태를 연구하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일반계고등학교인 우리학교에서 1학기도 되지 않아 4명의 자퇴생에 등교정지, 특별교육, 사회봉사 등의 처분이 가장 많은 우리반이었기에 아이들에게 연구 주제를 뭐라 설명할까 부담도 됐지만 이번 기회에 내가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면을 새로이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연구에 참여했다.

부적응 학생을 선정할 때는 마치 내가 누군가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듯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에 부적응의 유형별로 대상자를 선정했다.

선정된 아이들에게는 순번을 정해 하루에 2~3명씩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개별 면담이 진행됐다. 1학기에 걸친 연구가 끝이 나고 담임 교사인 나와도 1시간 30분 정도 개별 면담이 진행되었는데 연구원님이 상담한 내용과 내가 평소 담임교사로서 관찰, 상담한 내용을 종합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놀라웠던 사실은 내가 담임 교사로서 1학기라는 시간 동안 관찰, 상담하여 알아낸 내용과 연구원이 단 몇 시간 동안 면담해 알아낸 내용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한 학생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상담해보지를 않았다. 사실 여자아이들보다 남자아이들을 상담하기가 곤혹스럽다. ‘국어 점수가 왜 이리 떨어졌느냐는 담임교사의 꾸지람 아닌 단순 질문에도 눈물을 쏟곤 하는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전교 등수가 100등이 넘게 떨어진 아이에게 고민이 무엇이냐, 집안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 여자친구와 헤어졌느냐는 등의 꾸지람 섞인 질문을 아무리 던져도 돌아오는 것은 묵비권을 동반한 고개 저음뿐이다. 이쯤하면 상담하는 입장에서도 지쳐서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혹시 우리는 단순히 갈등의 결과에만 치중했던 것은 아닐까. A라는 학생의 갈등 상황이 개인 내적 갈등인지, 누군가 대상을 설정한 개인 간의 갈등인지, 불특정 다수를 포함한 부조리한 사회와의 갈등인지만을 획일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대한 짜여진 답변만을 반복해왔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본다.

이제는 갈등의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 사회심리학자 레빈(Lewin)은 인간의 갈등을 ‘2개 이상의 대립 경향이 거의 같은 세기로 동시에 존재해 행동 결정이 곤란한 상태라고 정의내리며 발생 양상을 3가지로 구분하였다. 바람직한 목표들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때 나타나는 접근-접근 갈등과 유리한 목표와 불리한 목표가 동시에 제시될 때 나타나는 접근-회피 갈등’, 두 가지의 바람직하지 못한 목표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때 나타나는 회피-회피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접근-접근 갈등은 흔히 중국음식을 시켜먹을 때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민하는 상황이고, ‘접근-회피 갈등은 야밤에 야식은 시켜먹고 싶은데 살이 찌기 싫어 고민하는 상황이며, ‘회피-회피 갈등은 공부는 하기 싫은데 낙제 학점은 받기 싫어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의 학생들은 일류대에는 가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은 접근-회피 갈등이나, 공부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이도저도 싫은 회피-회피 갈등에 빠져 있다. 문제는 전자보다 후자에 있다. 전자의 경우야 일류대에 가고 싶다는 접근성에 대한 동기가 강한 경우 회피성이 잦아들테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일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합리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 후자의 경우는 어느 방향으로도 자신의 동기를 발동시킬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상황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공격 성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동기가 좌절되며 욕구 불만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욕구 불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공격성으로 변질되어 나타나게 된다.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학생들과의 보다 깊은 TALK(대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톡톡 건드려 회피 욕구를 접근 욕구로 수정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있으면 학생의 회피 욕구를 분석하고 행동-정서 수정을 통해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아니라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물론 회피 욕구를 좀 더 수정하여 공부까지좋아하는 학생으로 바꾸어 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개학하고 나면 나부터 묵비권을 행사하는 남자아이들을 잡아놓고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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