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즐거움과 아쉬움으로 밤을 하얗게 새기도 했다. ‘1초’ 패러디로 온겨례가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1초면 부산도 간다’, ‘1초면 우주를 왕복하다’ 하면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 북을 달구기도 했다. 그런 올림픽과 동시에 대선 정국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몇 억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게이트’까지 눈만 뜨면 뭔 토픽거리가 이리도 많은지 정신이 없다. 총선 이후 잠잠한가 했더니 야당 대표가 검찰에 다녀오고 방탄국회한다고 하면서 상임 소위는 열지도 않는다. 대선 전초전으로 지방을 다니면서 선거유세하기 바쁘다. 박**, 안**, 문**, 손** 등등의 이름만 신문의 앞면을 장식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했더니 공천헌금이 쏠쏠하게 오르내린다. 요즘은 독도까지 가세했다.

도대체 민생은 언제나 돌보려고 저러는 것일까 궁금하다. 올림픽을 빌미로 세상이 정신없을 때 생필품 값이 슬그머니 올랐다. 원자재값 운운하면서 올려도 금메달에 묻혀 뭐라 투덜거리지도 않는다. 인천공항 민영화 얘기도 나오는 듯하다가 사라지고, KTX 민영화 얘기도 들어갔다. 일진회가 난무하는 학교얘기는 사고가 나야 지면을 도배한다. 그 전에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데 의원들은 30년 후에 결과가 나오는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운동장에 인조잔디나 깔고 업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더 급하다. 환경호르몬이나 공해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꼬리를 내리고 마는 전시행정과 홍보 중심의 교육정책이 모두 이 와중에 나오는 것들이다. 다문화 교육은 정말로 30년 후에나 결과가 나오는 먼 미래의 이야기다. 이런 것에 의원들 중 누가 관심이 있는지 묻고 싶다. 행사 있으면 사진이나 찍고 가면 그만이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식은 영재인 줄 안다. 아마도 영재이길 바라는 심정이 평범한 아이를 영재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또한 영재나 천재가 되면 무엇을 하는가? 10살에 대학에 들어가고 15살에 하버드에 입학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다. 또래집단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천재가 그렇게 좋은가? 평범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천재라고 했던 소년이 있었다. 그는 지금 상당히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남들보다 앞서가서 일찍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누구도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고등학교 때 실내화 신고 밖에 나갔다가 교련 선생님한테 걸려서 5교시 한 시간 교무실에 꿇어앉았다가 엉덩이 맞고 6교시 수업 들어간 적이 있다.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따귀도 맞았다. 그 싸가지 없는 놈이 교수가 되어 다문화 관련 일로 매일 바쁘게 뛰어 다니고 있다. 현실은 조금 더디더라도 먼 미래의 교육을 이야기하자.

다문화가정은 가장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다. 어쩌면 앞으로의 대세가 될 수도 있는 자원들이다. 표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사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행사장에서 피켓들고 함께 소리 지르는 사진이 의정보고서에 바로 올라간다. 의견은 대충 듣고 잊어버린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사실도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 같은 사람에게 표를 던진다. 참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민생법안은 뒤로 둔 채 대선에만 여념이 없는 의원들이나, 대선 주자에게 줄서기를 죽기살기로 하는 의원들은 모두 차기에 심판해야 한다. 의원들은 모두 민생을 살리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부르짖고는 여의도에만 가면 다 잊어버리니 이런 치매를 고치는 약은 없는가? 산적한 다문화관련 법안과 이들을 위한 교육제도 마련 등은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문화에 대한 바른 교육정책은 무엇일까? 우선 자원을 잘 활용요해야 한다. 집안마다 살아서 움직이는 자원인 결혼이주여성들을 활용해야 한다. 자국에서 배운 교육을 허비하지 않도록 재교육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브릿지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에서 일정기간 재교육하여 동일한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금전적으로 지원하되 출석이나 학점이 부실한 경우 탈락시켜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로 출석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자녀 교육의 문제다. 이들 자녀들은 크게 두 가지의 부류로 나뉜다. 상당히 우월한 두뇌를 가진 집단과 그 반대의 경우다. 물론 평범하게 적응하는 경우도 많지만 필자가 그 동안 살펴온 결과 아버지의 배려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이중언어를 제대로 구사하기도 하고 성적도 비교적 좋은 아이들도 있었다. 다만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가 남아있기도 하다. ‘우리나’의 개념이 없고, 대한민국과 필리핀으로 부르는 아이가 많았다. 이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지적으로 낮은 단계의 아이들에게는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부간의 이혼으로 인한 문제와 조손가정의 증가 등 산적한 일이 많은데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대선은 그들에게 맡기고 언론은 좀더 민생을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이 지나치게 대선에만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민생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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