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만세운동 등 역사에 ‘한 획’
상록수 정신의 발상지 최초 농촌계몽지 ‘눈길’

4.4독립만세운동 재현모습.광복 67주년을 맞으면서 당진의 독립운동사를 되돌아본다.

19193.1 독립만세운동을 서울에서 직접 목격하고 당진에 내려온 원용은(면천보통학교 4년생)이 주축이 되어 동급생 박창신 이종원과 밀의 310일 면천보통학교 학생들과 벌인 3.10만세운동이 당진시 최초 독립만세운동이다.

이로 인해 원용은(당시 16)과 박창신(당시 18)학생은 공주형무소에서 4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석방되고 면천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으나 당진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됐다.

44일 이인정·송재만·남주원 등이 중심이 되어 대호지면사무소 광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고 파고다공원에서 3.1운동에 참여해 돌아온 이두하·남상직·남상락 등이 독립추진위원회를 조직 천의(정미면)장날결행하기도 했다.

실제로 44일 대호지면 광장에는 순식간에 600여명의 주민이 참여했으며 30자 높이의 대나무에 태극기를 계양하고 이인정 당시 대호지 면장의 연설에 이어 남주원의 독립선언문 낭독 이대하의 애국가 제창 행동 총책 송재만의 선서와 함께 만세 시위를 시작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이어졌다.

특히 심훈(沈熏)1932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당진으로 내려와 독립해 살고자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어 필경사(筆耕舍)라 했으며 한국 농촌소설 대표작인 상록수’,‘직녀성등이 여기에서 집필됐다.

상록수가 쓰일 무렵 농촌은 무지와 빈곤 속에서 극도로 피폐되어 극한상황에쳐해 있는 중에 문맹퇴치와 빈곤 타파에 목적을 두고 당시 당진에서 운영되던 공동경작회를 모델로 집필 당진이 상록수 정신의 발상지이며 최초 농촌계몽 운동지역이 됐다.

당진의 3.1운동은 민족의 독립을 달성하는데 실패는 했으나 독립에 대한 꿈과 자신감 등이 온 천하에 파급되었으며 이와 함께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데 초석이 되었으며 바로 농촌계몽운동으로 변져진 곳이다.

<당진/홍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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