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숙 프로그래머 추천작 8편

9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17일 화려한 막을 올렸다.

‘다큐, 세상을 움직이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EIDF에서는 국내외 48편의 다큐멘터리가 시청자를 찾아갈 예정.

그중에서도 설경숙 프로그래머가 엄선한 8편을 먼저 만나본다.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 미국·프랑스, 2011)

올해 EIDF 심사위원장을 맡은 로스 멕켈위 감독의 최신작.

감독은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나지막한 내레이션을 읊조리며 지금의 아들 나이였을 시절 일하던 추억 깃든 장소들을 찾아간다. 카메라, 사람, 기억에 대한 감독의 범상치 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한 홈비디오 영상에 형이상학적 사유를 녹여낸 거장의 손길이 눈에 띈다.

◇성모 마리아, 콥트교도, 그리고 나(The Virgin, the Copts and Me, 프랑스·카타르, 2012)

나미르 압델 메세흐 감독.

감독의 어머니는 신실한 콥트 교도다. 그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 현현(顯現)의 기적을 당연하게 믿는다.

감독은 그 기적의 실체를 파헤치는 영화를 제작하고자 이집트로 떠난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의 기적을 본 이를 찾는다는 계획은 생각대로 쉽지 않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담아낸 유쾌한 영화제작기다.

취재 과정에서 갑자기 뒤바뀌는 이동 경로, 그 과정에서 찾아낸 뜻밖의 발견, 이민 2세들의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 등을 잘 엮어냈다.

◇지구 반대편의 초상(¡Vivan las Antipodas!, 독일·네덜란드·아르헨티나·칠레, 2011)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

중국 상하이와 아르헨티나 엔트레 리오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도시의 풍경은 어떻게 다를까.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실험하고자 하는 대상은 현실을 포착하는 ‘매체’ 그 자체다.

작품에서 인간은 주인공이 아니라 자연과 도시의 일부로 등장한다. 마치 매일 변하는 하늘의 빛깔처럼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올해 EIDF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다큐멘터리는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도시들의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들만의 세상(Private Universe, 체코, 2012)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

감독은 홈비디오 영상을 통해 야나와 페트르 가족의 일상을 따라간다.

가족이 형성되고,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나는 37년이라는 긴 시간, 바깥 세상에서는 존 레논이 저격당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된 체코 공화국이 탄생한다.

야나와 페트르가 만든 ‘그들만의 세상’도 결국은 세상과 함께 변하는 유기적인 세상의 일부분이다.

◇브릿과 잉거(Women with Cows, 스웨덴, 2011)

피터 게르디하그 감독.

브릿과 잉거 두 자매는 스웨덴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평생 소를 키우며 살아왔다.

언니 브릿은 평생을 함께한 소에 대한 애착이 여전하지만 동생 잉거는 그런 언니와 가족에게서 이제는 눈을 돌리고 싶다.

감독은 극적인 사건보다는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자매와 소 사이에 존재하는 강렬한 애증의 감정에 주목했다.

아름다운 목가적인 풍경은 빼놓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재미다.

◇LP 마니아(Vinylmania, 이탈리아·프랑스·독일, 2011)

파올로 캄파나 감독.

감독은 도쿄, 뉴욕, 런던 등 세계 각지를 다니며 지금은 폐물이 돼버린 LP 레코드 마니아를 찾아다닌다.

다큐멘터리 속 LP 레코드는 단순히 잊혀진 과거의 음악 저장 매체가 아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공기, 그 공기를 마시던 사람들이 애정을 쏟아부은 ‘그 무엇’이다.

◇푸틴의 키스(Putin’s Kiss, 덴마크, 2011)

리즈 비어크 페더슨 감독.

19살 소녀 마샤는 어린 시절 푸틴의 뺨에 키스한 이후 그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을 키워왔다.

지금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익청년단체 ‘내쉬’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의 정세가 변함에 따라 감정에 기반한 마샤의 정치 성향도 흔들리게 됐다.

감독은 파시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흥미로운 캐릭터를 통해 풀어냈다.

◇실낙원3: 연옥(Paradise Lost 3: Purgatory, 미국, 2011)

조 벌링거·브루스 시노프스키 감독.

1993년 미국 아칸소 주의 한 마을에서 세 명의 소년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세 명의 청소년이 용의자로 체포됐다.

감독은 뚜렷한 증거도 없이 유죄판결을 받아 18년을 복역해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은 1996년 시작된 3부작 시리즈의 완결판. 부조리한 법제도를 고발하려는 감독의 끈기가 엿보인다.

차갑고 절제된 시선과 격앙된 인물들의 목소리를 메탈리카의 묵직한 음악과 함께 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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