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식 <충청대박물관장>
고구려비의 연구와 명품 전시관

 
충주고구려비 발견 20주년을 기념하여 예성문화연구회와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가 공동으로 충주고구려비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국제학술회대회를 20001013~14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 개최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222~2645일 동안 충주에서 고구려비의 새로운 해석을 위한 신석문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50여명의 고대사·금석문 전문학자들이 참여하여 고구려비 전체 200여자의 글자 중에서 10분의 1이 넘는 20여자를 새로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신석문 방법은 비석전체의 글자 하나 하나에 대한 탁본. 흑백촬영. 컬러촬영 그리고 적외선촬영을 병행하여 한 글자를 4가지 방식으로 검토하여 정확성을 기한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고대 금석문의 한 글자를 4가지유형으로 조사한 예는 없었다. 이 고구려비야말로 우리나라 석조문화재 조사에서 군사 장비인 적외선촬영이 시도된 첫 사례가 될 것 이다.
200410월 고구려비를 방문한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고구려비 보존의 문제점과 환경오염 등을 제기하며 종합정비계획을 지시함으로서 고구려비보존에 새로운 국면전환이 이루어졌다.
20104월 착공된 전시관의 설계는 건축학도의 롤 모델 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로재의 승효상 대표의 작품으로 그의 건축철학인 공간을 나누고 비움으로서 숨 쉴 수 있는 건축물이 우리의 눈앞에 와 있게 됐다. 처음에 입석마을에 들어선 낮선 조형물. 마치 컨테이너를 연결시킨 듯한 이 건축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거부반응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국도처에서 보아 눈에 익숙해진 천편일률적인 목조와가의 보호각에서 획기적인 이노베이션이 적용된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지난 718일 개관된 전시관은 머지않아 충주고구려비전시관을 보러오는 건축학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한국최고 설계자 중 한사람이 심혈을 쏟은 이 전시관은 설계자의 내면세계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 할 수 있다.
전시관 입구를 들어서면 많은 수해를 버티면서도(입석마을은 78기의 마을로 전칭 될 만큼 많은 수해를 극복했던 마을이다) 고구려비를 온전하게 보존해준 입석마을의 전경이 디오라마로 눈앞에 펼쳐진다. 마을의 중심 전면에 고구려비. 좌측에 중앙탑. 우측에 장미산성을 배열하므로 고구려비의 주변 환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통로의 좌우에는 고구려의 풍속도를 볼륨감있게 조영하여 배치하였다. 2관에는 안악궁과 동양의 피라밋으로 일컬어지는 장군총을 축소전시하여 볼거리를 만들고, 4~5세기에 동북아시아를 제패했던 원천적인 힘의 상징 고구려의 기마군단인 개마무사가 장중하게 우리를 맞는다. 고구려의 천화관이 설명된 영상 통로를 이동하면 1920년대에 탁본된 높이 6m의 광개토태왕비의 탑영 4면이 실물대로 걸려있어 고구려의 웅혼한 역사문화와 서사시를 만나게 된다. 마지막 홀의 중앙에는 충주고구려비가 1500년의 세월을 버티고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비석의 4면을 친견할 수 있는 전시방법이 돋보인다. 벽면에는 충주고구려비의 4면 탑영과 최근에 충주를 중심으로 발굴 조사된 여러 고구려의 유물들이 소개 된다.
내부 곳곳에 마련된 첨단 시스템과 32개에 이르는 동영상들은 관람주체를 영상세대와 신세대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음이 실감 된다.
한마디로 이 전시관은 비석 전시관에 역활을 더해 고구려사료관 과 고대사의 교육관 기능을 충실하게 겸 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관의 면모라면 충주시에서는 유료화하여 운영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만도 하다. 무더위와 싸워가며 소음과 접착제 냄새로 가득한 열악한 환경에서 보다 알찬 전시관을 조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열린기획사의 조성화사장과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를 보낸다. 또한 사명의식을 갖고 묵묵히 전 공사과정을 감독한 지상진 감독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노고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역사의 기본틀을 마련해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아름다운 건축물을 우리에게 선물한 승효상 대표에게도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매주 월요일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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