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20071월 어느 금요일 아침.

워싱턴 DC의 지하철 입구는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볐다. 가방을 둘러메고 앞만 보고 걷는 사람, 종종걸음으로 뛰는 사람, 빠른 걸음으로 앞사람을 제치며 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한 청년이 걸음을 멈추었다.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청년은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갑자기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흘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보지 않은 채 썰물처럼 스쳐 지나갔다. 64번째로 지나가던 한 남자가 처음으로 청년을 향해 눈길을 한번 돌리고 갔다.

연주를 시작한 지 6분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잠깐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바이올린케이스에 돈을 넣고 지나갔다. 청년이 연주를 한 45분 동안 7명이 1분 남짓 연주를 지켜보았고, 27명이 바이올린케이스에 돈을 넣었으며, 모인 돈은 37달러17센트였다.

다음날 아침, 신문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지하철 입구에서 연주를 했던 거리악사가 실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죠수아 벨(Joshua bell)이었기 때문이다.

죠수아 벨이 350만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들고 45분간 연주를 하는 동안 그 앞을 지나간 1070명이 단 1초도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바쁘게 지나갔던 것이다. 이 무료공연을 제안한 것은 워싱턴 포스트였다.

만일 서울의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와 같은 공연이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도 워싱턴 DC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워싱턴 DC 시민들보다도 훨씬 더 무관심했을지 모른다.

무관심은 소중한 주변의 가치를 앗아간다. 무관심이 무엇인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끌리는 마음이나 흥미가 없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관심대신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의 주변에 대한 무관심은 지나치다.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 되면서 이웃과 단절된지 오래이고,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지도 오래이다. 이혼, 자살, 왕따 등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불명예스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의 근저에는 바로 이러한 무관심이 존재한다.

미움보다 더 두렵고 메마른 것이 무관심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무관심 중 가장 두려운 것은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우리 사회나 국가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오는 12월 치러지는 대선은 국가의 리더를 결정하는 중대한 행사로, 각 당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행사 역시 국민들의 관심속에 축제처럼 열려야 한다. 후보 선출에 등록된 정당원뿐 아니라 모바일 투표 등을 통해 국민을 참여시키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그런데 너무나 조용하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 선출 때도 그랬고, 민주통합당의 4명의 후보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바람이 일지 않는다. 수년전 대선 후보를 선출할 때 국민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이상한 일이다. 이러다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참여정신을 포기하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인다.

우리가 살면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은 참 많다.

우선 가족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내 일과, 직장, 그리고 이웃과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다.

독일이 그 유명한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고도 나치 정권을 맞이했던 것은 독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때문이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정치적 무관심이 얼마나 큰지는 투표율만 봐도 드러난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80%가 넘는 투표율을 자랑하고, OECD 회원국의 평균 투표율이 70%에 이르는 것에 비해 우리의 투표율은 60%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뽑아놓으면 다 똑같다식의 자조는 하지 말자. 지도자는 결국 무관심의 자세를 버리고 관심을 갖는 의 노력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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