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일 극동대 교수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토록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은 없을 듯싶다.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출발하면 하루 일과가 시작될 즈음 일본 도쿄에 도착하여 일을 보고 귀국해도 서울 시내에서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나라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은 두 나라 사이에 놓인 동해바다 한가운데의 심연만큼이나 깊게 패여 있다. 냉전 이후 국제정치적인 역학관계로 인해 마지못해 손잡고 있지만 서로가 조금만 건드려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참 불편한 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다.

해마다 815일이 다가오면 신경전은 극에 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날이 우리에게는 해방의 날이요 독립기념일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패한 치욕의 날이기 때문이다.

67년 전 이날 정오에 발표된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두 나라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기억되고 있다. 이 날이 다가오면 우리는 일본에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가해국인 일본은 과거 청산은커녕 모르쇠로 일관하며 심지어 일부 우익세력은 보란 듯이 야스쿠니에 참배하며 욱일승천하던 그 때를 회상하곤 한다.

하지만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촉발된 일본 정부의 신경질적 반응은 도를 넘어서는 양상이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불법 상륙운운하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는 등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일본 총리의 친서를 이 대통령에게 보낸다면서 그 내용을 사전에 외부에 공개해버리는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다. 친서를 반송하기 위해 일본 외무성을 찾아간 한국 외교관을 경비원들이 문전박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야망에 불타는 신인도 아니고 못 말리는 극우단체 회원도 아닌, 한 나라의 국가수반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의문스럽다.

하물며 저들 스스로가 국가 주권과 영토수호 의지가 달린 중차대한 문제라고 하면서도 막상 이를 해결하려는 진중한 의지는 보이지 않고 언론 플레이를 통한 여론 호도를 일삼고 있다. 24일 일본 중의원에서 채택한 결의안이나 총리의 기자회견 내용 어디를 봐도 기존의 근거 없는 주장과 논리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가만 보면 일본 총리의 과민반응은 우리나라를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내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소식이 일본 총리에게 전해진 것은 9일 저녁이라고 한다. 같은 시각 일본 중의원에서는 내각에 대한 불신임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진 상황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함으로써 겨우 부결시키기는 했지만 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워낙 낮아 조만간 정권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마침 일어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은 일본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지지율 반등을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일본 총리의 이런 태도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면서도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본은 내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웃나라로 화살을 돌리는 과거의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만 아니라 중국, 대만, 러시아 등과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거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도 같이 가져가자는 대만 총통의 제안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분쟁을 일으키는 속셈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런 과거의 습관을 청산하고 역사 앞에 책임 있는 자세로 돌아서지 않는 한 더 이상 일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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