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숙 청주시아동복지관장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물러날 때를 아는지 슬며시 꼬리를 감추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직장 이라고 시작했던 공직생활이 어언 36년을 넘어섰다. 풋내기시절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한 공직 생활이 어느새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야할 때가 가까워진다.

내 젊은 피를 고스란히 쏟아 붓고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떠나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2011년 10월 2일이 퇴직을 앞둔 1000일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인간에게는 모두 양면이 있는 것처럼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아는 나를 알아가는 것도 남은 삶을 위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늘 그러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1000일을 하루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글을 쓴다. 업무에 관해서, 가족과 친구와 함께한 직원들에게도 글을 쓰고 있다. 나를 알리고자함이 아니라 나를 알고자 함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린 시절 소쿠리를 들고 고기를 잡겠다고 개천에 나가 헛손질만 하던 기억이 난다. 송사리라도 잡혔을까하고 소쿠리를 들어보면 번번이 모래와 잡풀만 가득했었다.

사는 일이 그렇지 않을까. 반짝이고 싱싱한 고기가 잡히기를 기대하지만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이끼와 모래와 잡풀 같은 것.

그러나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끼와 잡풀도 내 인생 안에 있는 모든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삶은 그렇게 모든 것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일들과 사람들도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소중한 인연들에게 정성껏 글을 쓰는 1000일의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몇 년 전부터 부모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들 다 길러놓고 뒷북친다고 할지 모르지만 직장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이들 양육과 교육문제는 늘 아픈 상처이다.

내게도 그랬다. 남들처럼 살뜰하게 챙겨주지도 못했고 비 오는 날 우산 한 번 가져다 준 적이 없으니 빵점 엄마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이들 손을 잡고 조근조근 앞날을 함께 상의해 본적도 없고 보듬어 안고 사랑을 제대로 전달한 적도 없었다.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만 가득할 뿐 표현을 제대로 못한 것이 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느새 손주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요즘은 미운 네 살이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제 부모들이 절절매고 있으니 또 마음이 아프다.

내가 부모의 바른 자세를 보여줬더라면 내 아이들도 아이들과 바르게 대화하는 법을 알았을 텐데 모두 내 탓인 것이었다. 부모교육을 받고 나서야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퇴직 후에 재능기부라는 근사한 말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주, 내 이웃의 아이들부터 자녀교육을 바르게 해보고 싶다.

마무리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마무리를 위해서 시작도 잘 해야 하겠지만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마무리도 잘 해야 한다.

매일 매일 내 삶의 일부였던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서로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아가면서 내 남은 삶을 준비하고 있다.

여름이 계절을 물려주고 떠나는 것은 또 다른 여름을 준비함이 아니겠는가.

극성스럽게 마지막까지 목청을 높이는 매미도 면면히 이어갈 또 다른 날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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