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왜정의 태평양전쟁 때 같으면 정신대(挺身隊)를 피하려고 아직 어린 딸을 부모가 정략적으로 결혼을 시켰다고 하지만, 그때도 아닌 6.25전쟁 때 길녀는 신랑 쪽 부모에 의해 정략결혼을 당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신랑감이 전쟁 막바지 무렵에 영장을 받았는데 아직 미장가라 아닌 말로 전쟁터에 나가 자칫 전사라도 하면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기우로 그 부모가 부랴부랴 혼처를 물색 중 길녀가 가장 적합한 색시 감으로 지목된 것이다. 한창 때인 열아홉이라 무엇보다 후사(後嗣)를 보는 데 마땅한 나이일 뿐 아니라 성격이 수더분해서 호감이 가는 규수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규수 집과의 접촉기회를 보던 중 길녀의 아버지가 호주가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끈을 놓아 주석을 마련하고 주기를 잔뜩 올려 갖은 감언이설로 청혼을 하니 길녀 아버진, “좋지, 좋아!”하고 취중에 승낙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유의 성혼 예는 예부터 종종 있어온 터로, 길녀의 어머니가 규수 적에 자신이 이에 직접 당해 어정쩡하게 시집오게 됐는지라, “보시오, 심 봉사는 눈을 뜰 욕심이지만 쌀 삼백 석은 받고 딸을 팔았지 않소. 그런데 당신은 고작 술 한 잔에 매여 딸을 팔아먹는 아비이니 그 벌을 어떻게 감내하려 하오?”하며 길길이 뛰었다. 그러나 신랑감 쪽의 막무가내 서두름으로 별 도리 없이 신랑감 입영 이틀 앞두고 길녀는 그리로 시집을 갔고 진한 첫날밤을 보냈다. 그리고 이튿날 신랑은 입영했다. 이게 길녀 부부간 생활의 전부다. 3개월 후 길녀는 신랑의 전사통보를 받았고 그 진했던 첫날밤도 무색하게 애도 들어서지 않았다.

순석이 엄마는 아침부터 맘이 설렌다. 새 동서를 맞는 날이다. 상처한 시동생이 새장가를 가는데 그 새 동서감이 자신과 나이가 동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덩달아 자신도 새색시가 된 느낌이고 그 짤막했으나마 황홀했던 신랑과의 사랑놀이가 새삼 꼬물꼬물 피어오르는 거였다. 벌써 10여 년도 넘은 해 전장에서 전사한 신랑은 그래도 순석이를 유복자로 남겼다. 그 순석이를 신랑의 끈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터다. 마침내 새 동서가 왔다. 그녀 역시 재혼이니 여러 절차 버리고 신랑 되는 시동생 따라 홀홀히 들어왔다. “동서, 나와 동갑이라니 더욱 반갑네. 성씨는 들어서 아네만 이름이 뭔가?” “길녀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후도 둘은 서로 신상에 대해 다른 더 이상의 것은 묻지 않았다. 사전에 서로의 정보는 대강 알고 있었고 물어봤자 괜스레 아픈 상처만 건드릴 거였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새 동서에게 애가 없다. “동서, 하늘은 보는가?” “그러게요.” 시부모가 하도 기다리는 터라 부부가 병원엘 찾아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시동생은 그날 이후 술에 절어 살았다. 그러다 그 술로 인하여 폐인이 돼 세상을 버렸을 때 동서가 귀띔을 해 주었다. “남자 쪽에 이상이 있다 하드만요.” 라고.

순석이 엄만 두 번이나 부부생활에 실패한 동서를 참으로 안 됐어 했다. 자신은 순석이가 버팀목이 돼 주지만 동서는, 시부모도 이제 다 돌아간 지금 역시 홀로인 이 맏동서도 전혀 의지가 돼 주지 못하니 그야말로 동서는 사고무친의 외로운 신세가 아닌가! 하여 순석 엄만 친정오라버니와 짬짜미해서 동서의 팔자를 고쳐주기로 했다. “여게 동서, 내 말에 따르겠는가?” “시방껏 형님 말 거역한 게 뭣 있는가요?” “그럼 됐네. 우리 두 과부 더 이상 같이 살기가 뭣해서 말인데 내 친정동네에 오십 중반에 상처하고 세 자녀 다 짝 맺어 내보낸 육십 갓 넘은 사람이 있네. 자네보다는 십여 년 차이는 나나 살림 택택하고 몸 건강한 사람이니 자네는 하늘만 보면 되고 별은 안 따도 되는 자리야 어때?”

이래서 길녀는 또 팔자를 고쳤는데 그 영감과 10여 년을 같이 살다 영감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떠나면서 영감은 유언으로 몇 번이나 당부했다. “내가 죽으면 임자에게 남겨준 재산 꼭 지니고, 내 제사 애들한테 넘기지 말아요. 그렇게 해야 애들이 임자 죽을 때까지 찾아올게야 알았지!”라고. 길녀는 영감의 3주기를 마치고 이튿날 순석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난 평생에 하늘만 보았지 한 번도 별은 따보지 못했는데 이번 영감의 젯날에도 우르르 별들이 모여 들었어요. 영감의 유언 덕택인가 봐. 형님, 그래도 나 허전해 인제 나 형님한테 가서 같이 살까 봐.” “아서 거기 그대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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