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 한국교통대 교수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 승강장에서 30대 괴한이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8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사흘 뒤인 21일 수원에서는 성폭행 미수범이 도망을 가다가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루 뒤에는 서울 여의도 노상에서 전 직장 동료를 포함한 4명을 흉기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별다른 이유도 없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른 바 묻지 마 범죄가 연이어 발생한 것인데 이렇게 해서야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싶다. 늘 그러하듯 정치권은 특단의 대책을 촉구하는데 그 내용이 경찰력 확보, CC(폐쇄회로)TV를 확충하는 방안 등이다. 예년과 차이가 있다면 대통령이 해당 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정책 자금이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충분한지는 잘 모르겠다.

항간에는 묻지 마 범죄가 여당 책임이니 야당 책임이니 하는 여야간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무슨 대책을 기대한다는 것이 애초에 부질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까지 대책으로 늘 제시되었던 경찰력을 포함한 공권력 강화와 엄정한 법집행이 문제의 전부가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묻지 마 범죄에 대한 표면적인 이유와 범행 장소는 달라도 근본적인 원인에는 나름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의정부 사건 피의자는 술값이 모자른데 따른 홀대를 받아서 화풀이를 엉뚱한 곳에 했다고 한다. 지난 21일 울산 수퍼마켓에서 흉기 난동을 벌인 피의자는 수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오면서 그냥 끌리는 대로, 어려서부터 당하고 살았는데 같이 죽으려고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여의도 사건 피의자는 전 직장 동료들에게 품은 앙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범죄 현장 검증과정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흐느껴 울면서 호흡곤란까지 호소하는 등 범행 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들 모두 태어나면서 범죄자였던 것이 아니라 범죄자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사회가 자기에게 제대로 기회를 주거나 대우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순간적인 감정 조절 실패 단계에 이르러 범죄로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기 침체나 양극화에 따라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이들을 양산해 왔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경쟁이 최고의 미덕이 되었고 사회 구성원 누구나 안정적 삶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서구사회의 경우 심한 경제 위기로 인해 개인의 삶이 위협 받을 경우, 차별이 극심하다고 여길 경우 그 책임을 개인 스스로가 아닌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있고 극단적인 경우는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의 어려움을 스스로 책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원인은 다양할지 모르나 하루 평균 34명의 자살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반응이 묻지 마 범죄라고 하는 사회에 대한 적대감으로까지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잘 사는 사회는 감상적인 구호에 그칠지 모른다. 어차피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불행해지는 사람도 있기에 그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도리어 무책임한 발언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묻지 마 범죄가 일어날 때 마다 범죄의 흉폭성과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범죄자 그들이 아닌 사회에게 묻는 것이 한가한 발상이라고 지적 한다.

필자 역시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동정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경찰력을 포함한 공권력은 엉뚱한 곳에 낭비되지 말고 묻지 마 범죄를 막는데 집중되어야 하고 범죄자들을 일벌백계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지는 못할지언정 못 먹고 못 사는 사람을 먹고 살만하게 해주는 일 역시 공권력의 확립 그 이상으로 필요하다. 근래에 정치권에서 유행했던 공정한 사회의 의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회를 줄 수 있고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이겠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사회가 아닐까 한다.

실의에 빠지고 좌절하고 심지어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경제 지표로 봤을 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긴다고 하는데, 이제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고 하는데 이쯤이면 더 이상 경쟁을 통한 성장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소외받은 자들과 소통하고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배려와 시스템의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독여 줄 수 있어야만 억울하지 않은 사람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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