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은 순 문학평론가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일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준다. 더구나 지면에 이름을 걸고 쓰는 일은 아무리 오래 글을 써 왔다고 해도 제법 신경이 쓰인다.

남 보기에는 평범하고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단순한 글도 당사자에게는 힘든 시간을 거쳐 얻어낸 결실이다. 특히 글감 잡는 일이 가장 힘들지 않을까 싶다.

오랜 세월 글을 쓰다 보니 어지간한 내용은 이미 언젠가 다른 글을 통해 썼던 것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체력이나 호기심이 전과 같지 않은 터라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나이다. 지혜롭게 나이에 맞는 글을 쓰려 노력해야 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원고를 마감한 날은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없다. 가까운 사람을 만나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회포를 풀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젠가 제자가 첫 월급을 탔다며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을 때 내게 딱 맞을 거라며 시판되는 여성용 과실주 산사춘을 권한 적이 있다.

처음 마셔보는 술이었는데 소주처럼 쓰지도 않고 달콤한 게 입에서 술술 잘 넘어가 그때부터 그 술의 애호가가 되었다. 그 뒤부터 어쩌다 외식을 하는 날이면 그 술을 시켜 몇 잔 씩 마시며 늦깎이 술꾼 기분을 내곤 했다. 최근에는 반병까지 먹을 정도가 되었고 어느 날은 한 병을 마시고 기분을 내는 바람에 며칠 동안 술병이 나 고생한 적도 있다.

원고가 나가지 않는 주에는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다. 글감에 대한 고민도 잠시 잊고 며칠간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컬럼을 써야 하는 주가 닥치면 며칠 전부터 글감을 찾는 일에 신경을 쓰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수월하게 글감이 잡히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글을 써야할 당일까지 글감을 못 잡아 안절부절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맨 먼저 하는 일은 그간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며 뭔가 글감이 될 만한 일이 없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두드린 일이 없었나 생각에 잠기며 소위 구상을 하는 것이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음악을 들으며 영감이 떠오르기를 소망해 보기도 한다. 산보를 나가보기도 하고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해 보지만 그래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도 신문을 보거나 일상 중에 일어난 일을 통해, 혹은 여행을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살피며 글감이 될 만한 일이 없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오래 전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일종의 직업의식인 셈이다.

그동안 글쟁이로 살아온 시간이 제법 되고 언론사에서 취재를 한 세월도 많았기에 사람들을 만나거나 물건을 살 때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질문과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삼십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남편도 나의 직업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 눈총을 주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본영화가 끝났는데도 일어서지 않고 남들이 거의 보지 않는 마지막 스탭들 이름이 적힌 자막까지 다 보고야 일어서는 날 보고 남편이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다.

그게 영화를 만든 이들에 대한 예의라고 이해를 시켰지만 문학동네 사람들의 습관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활자화 된 것에 대한 집착은 남다르며 심지어 신문에 끼어 들어온 광고지 조차 예사로 보는 일이 없다.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으면 전화로 연락을 취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언 삼십년 가까이 글을 쓰는 동안 굽이굽이 고비가 많았다. 책을 한권 내고 나면 한동안은 글을 읽는 것 조차 피하고 싶을 정도로 글 멀미가 난 적도 있고 신문사에서 오랜 시간 기획기사를 쓰다 온몸에 진이 빠져 한동안 고생한 적도 있다.

캐나다 언론사에 있을 때는 집중적으로 기획기사를 쓰다 눈병을 앓느라 큰 고생을 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일은 극도의 긴장을 요하는 정신노동이므로 막대한 체력손실이 수반된다. 따라서 건강관리를 잘 해줘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움만 있는 건 아니다. 한편의 글을 쓰고 난 뒤 느끼는 뿌듯함과 글을 쓰며 느끼게 되는 영혼의 정화작용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그간 거칠었던 나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고 마음을 고요히 빗질하는 과정이며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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