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1년 소회.."야구장 가는 게 너무 즐겁다"
"짧은 스윙으로 포스트시즌서 10년 전 실패 반복 않겠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보낸 8년간의 생활을 접고 올해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 9년 만에 복귀한 라이언 킹 이승엽(36)은 요즘 야구장 가는 게 즐겁다.

선두를 달리며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직행에 도전하는 소속팀 삼성이나 도루를 뺀 공격 전 랭킹에서 상위권에 오른 이승엽 모두 풍성한 가을걷이를 앞둔 덕분이다.

그보다도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얻는 기쁨이 쏠쏠하다.

지바 롯데 마린스(2004~200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2006~2010년), 오릭스 버펄로스(2011년) 등 일본프로야구 세 팀에서 뛰면서 한국의 대표 타자라는 책임감을 늘 어깨에 짊어졌던 이승엽은 이제 큰 짐을 덜어내고 오로지 삼성의 우승을 향해서만 방망이를 가다듬고 있다.

전매특허인 홈런뿐 아니라 번트에 도루까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면서 새롭게 변신한 이승엽과 30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복귀 후 한 시즌을 치른 소감을 들어봤다.

◇"번트 앞으로는 안 댈 겁니다" = 25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이승엽이 보여준 기습번트 안타가 크게 화제가 됐다.

이승엽은 5회 무사 1루에서 LG 선발 벤저민 주키치의 허를 찌르는 3루쪽 번트 안타에 성공했고, 이 내야 안타는 승부의 물줄기를 삼성 쪽으로 돌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이승엽은 "야구 타격의 기본인 번트 연습은 꾸준히 해 왔다"며 "만약 단기전에 가서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번트를 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 대보려고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침 당시 타격 감각도 좋지 않았고, 특히 주키치여서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번트를 대보려고 작정하고 들어갔다"고 소개했다.

그는 번트를 댄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승엽은 "내가 번트를 대면 팬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 생각에서 번트를 대려다가도 막상 주저하는 일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번트 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워낙 절묘한 타이밍에서 기막힌 번트에 성공했던 만큼 이승엽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면 언제 또 깜짝쇼를 벌일지는 알 수 없다.

◇"주책없다 싶을 정도로 로커에서 날뛰고 다닌다" = 일본프로야구 시절 로커 앞에서 만나는 이승엽은 어딘지 모르게 경직돼 있었다.

외국인 선수 신분인데다 워낙 보는 눈들이 많아 스스로 엄격하게 굴었던 탓이다.

친정과도 같은 삼성에 돌아온 이후 이런 엄숙주의는 사라졌다.

그는 "정말 로커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재미있게 하고 지낸다"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주책이라고 할 정도로 날뛰고 다닌다"며 근황을 소개했다.

안방마님 진갑용(38)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 많은 고참이다 보니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이승엽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니까 너무 편하다"며 "특히 예전에 못했던 걸 원해서 하니까 야구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아주 흥미롭게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예전에는 야구장에 오면 종종 힘들 때 쉬고 싶고, 야구를 못 할 때는 피하고 싶은 생각도 했었는데 요즘은 잘못하더라도 또 연습하면 되지'좋아지겠지라고 태도를 바꿨더니 정말 하루하루가 금세 흐르는 것 같다"며 일상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말 못할 스트레스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한국의 간판 타자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던 만큼 한국 야구가 욕을 먹지 않도록 더 열심히 움직였다.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리며 주니치 드래곤스의 수호신으로 맹활약한 선동열 KIA 감독은 일본에 나간 후배들에게 "성공하려면 한국 국가대표라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고 주문했으나, 이승엽은 가슴에서 이를 지우질 못했다.

스스로 행동에 족쇄를 채웠던 일본 시절과 달리 삼성에서는 야구장 안팎에서 맘껏 움직이면서 이승엽의 얼굴도 밝아졌다.

그는 "사실 지금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나 1년이 훌쩍 지났다고 느낄 정도로 재미를 느낀 점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일본에서는 원정경기를 가면 호텔에만 머물렀는데 한국에서는 여러 지역에 아는 분도 많고 원정 경기도 즐기다 보니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다"고 말했다.

가끔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큰 웃음을 선사하는 후배 박석민(27)이 있어 야구가 더 즐겁다는 말도 했다.

이승엽은 "석민이는 정말 코미디언 같다"며 "관중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이 선수야말로 진정한 분위기 메이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면서도 "야구 센스는 정말 석민이가 타고난 것 같다"며 후배의 기량도 높이 평가했다.

◇"초반 20경기에서 자신감 찾았다" = 이승엽은 30일 현재 타격 4위(타율 0.312), 홈런 3위(20개), 타점 3위(74개), 최다안타 2위(126개), 득점 2위(72개), 장타율 5위(0.532)를 달려 과연 이승엽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공격 첨병이 아님에도 득점에서 2위를 달리는 것에 대해 이승엽은 "류중일 감독님이 나를 경기 끝까지 뛰라면서 잘 바꿔주지(교체하지) 않는다"고 웃었다.

초반 걱정에도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표를 쥔 원동력으로 그는 초반 20경기를 꼽았다.

이승엽은 "초반에 성적이 좋아 그 페이스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며 "초반에 타율 1할대를 쳤다면 크게 당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규리그 시작 전부터 초반 20경기에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고 준비를 했고 다행히 통했다"고 덧붙였다.

좋은 성적은 동료와 합작한 덕분이라는 겸손도 빼놓지 않았다.

이승엽은 "과거에는 선후배 위계질서가 제법 강했다면 9년 만에 삼성에 돌아와 보니 후배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것 같다"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몇 차례 하다 보니 젊은 선수들이 이기는 법을 확실히 터득했고,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도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우리 투수들이 정말 잘 던지는 데 초반 타자들이 못 쳐 1점차 패배도 많았고, 연패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지금은 우리 마운드를 믿고 초반에 타자들이 2~3점만 내주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편안하게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호 보면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 팀 후배로 현재 홈런·타점에서 퍼시픽리그 1위를 달리는 이대호(30) 얘기를 꺼내자 이승엽은 "첫해부터 대단하다. 정말 야구를 잘한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극찬했다.

그는 "팀 성적도 좋았다면 이대호의 기량이 더 빛이 났을 텐데 너무 혼자 책임지니까 안쓰럽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오릭스는 리그 최하위다.

이승엽도 2006년 요미우리에서 홈런 41방에 108타점, 타율 0.323을 때리며 몬스터 시즌을 보냈으나, 팀은 센트럴리그 4위에 그친 동병상련이 있다.

이승엽은 "아무래도 팀 성적이 좋지 않은데 나만 잘하면 부담스럽다"면서 "남들은 잘한다고 칭찬하는데 매번 웃을 수도 없다는 점에서 대호도 그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을 잔치서 10년 전 실패 반복 않겠다" = 이승엽은 한국시리즈에서 꼭 우승을 맛보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는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내가 잘 쳤지만 두산에 졌고, 2002년에는 내가 못 했으나 동료 덕분에 LG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며 "이번에는 내가 꼭 잘해서 완벽하게 팀에 우승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정규리그 27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이미 제 몫은 충분히 한 만큼 이제는 포스트시즌을 겨냥해 준비를 서두르겠다고 다짐했다.

비장의 무기는 짧은 스윙이다. 10년 전 한국시리즈를 실패로 규정한 그는 이렇게 복기했다.

"2002년 홈런왕(47개)에 올랐을 때 심정수(당시 현대)와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갈렸습니다. 단독 홈런왕에 오르려다 보니 스윙이 너무 커졌고, 막판 10경기를 그런 식으로 치르다 보니 폼이 무너져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했죠"

그는 "남은 경기에서 홈런 8개만 더 때리면 통산 최다 홈런 타이(351개)를 이루는데 이 기록을 의식했다가는 10년 전처럼 또 실패할 거로 생각해 며칠 전부터 스윙을 짧게 돌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면서 "두 번 다시는 괴로움을 맛보고 싶지 않다"며 홈런보다는 정확한 타격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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