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환 세명대 교수

이곳 시애틀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문화와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내가 사는 머서 아일랜드, 이웃의 밸뷰, 시애틀 다운타운, 발라드 그리고 프레몬트 등 방문했던 지역마다 문화나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프레몬트라는 지역은 히피문화가 짙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이다. 그곳에 갔다가 다소 의외의 풍경을 목격했다. 5m 높이의 커다란 레닌 동상이 길거리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총본산으로 볼 수 있는 미국 땅에 공산주의자, 그것도 레닌의 동상이라니! 사연인즉슨, 이곳 워싱턴 출신의 교사가 슬로바키아에서 냉전 종전 이후 하치장에 있던 동상을 사들였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95년부터 이곳 프레몬트 거리에 서 있다. 레닌 상을 이곳 거리에 설치하고 있는 것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그럼에도 설치하고 있는 이유는 예술은 다른 것에 대한 수용이라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수용은 자유로운 예술의 정신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미국 사회의 수용은 오랜 시간을 거쳐 잡스의 애플에서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공적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의 미국 법원에서의 평결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법원의 배심원 제도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삼성전자의 베끼기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좀 더 분석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삼성전자와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회사이다. 삼성전자에는 멀지 않아 박사인력만 거의 5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연구에 들이는 예산도 엄청나고, 그에 따른 성과도 많다. 그럼에도 애플 같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나가는 회사로서 보다는 제품을 잘 만들어 많이 파는 회사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관리의 삼성으로 알려져 효율적인 조직관리로도 이름이 높다. 다만 거기까지다. 세계 최고의 회사로 계속 나가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혁신적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 나아가 우리사회에 기대도 하고 있지만, 염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대학생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다. 그럼에도 직원들이 행복하다는 소식은 과문한지 몰라도 별로 듣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혁신 등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높은 노동 강도와 무노조주의로도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생산 라인에서 종업원이 백혈병으로 죽어나가도 산재를 부인하기 바쁘다. 창의적인 회사가 행복한 회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전망에서 어느 정도는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삼성의 문제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육에 있다. 한국 교육은 아직도 경쟁 지상주의의 정글이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눈돌리지 않고 모든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자본을 동원하여 매진하여야 한다. 정부에서는 혹여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일까 싶어 일제고사를 실시하여 총체적으로 경쟁에 몰두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대학에 들어온 다음에도 경쟁의 끈을 놓치 않는다. 취업률, 입학충원률 등으로 대학을 경쟁으로 내몬다. 가능하다면, 전 생애를 경쟁으로 내몰기 위한 프로젝트를 일부 정책 관계자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싶다. 이러한 경쟁이 더 심각한 것은 하나의 잣대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있다. 거의 모든 것은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된다. 대학에 대한 평가도 지역이나 학문의 특수성 보다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 일렬로 세우기 바쁘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을 강요하고, 다만 평가자의 지위를 즐기기 바쁘다. 창의성이 발 붙이기 어렵다.

사회로 눈돌리면 더 암담하다. 21세기에 어쩌면 이런 일이 있는가 싶지만, 아직도 우리는 체제 논쟁과 지역차별에 몰두하고 있다. 집권여당에서는 국가 정체성 논란도 끌어들이고 있다. 다문화사회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다른 것에 대한 수용은 멀기만 하다.

결국 국가 경쟁력의 맥락이든 행복한 사회를 위한 문제이든 간에 기업, 교육, 사회에서 차이를 받아들이는 정신을 제대로 실현하는데 신경쓸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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