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호 논설위원·청주대 명예교수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사회가 왜 이렇게 됐는지” 집에서 잠자던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어린이를 괴한이 이불에 싼 채 납치해 성폭행하고 달아난 전남 나주에서 발생한 사건을 보고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불과 7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성욕의 제물로 삼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제2의 나영이 사건(2008년 12월 안산시 단원구에서 발생한 8세 여아의 성폭행)’이라 불리는 파렴치범에 대한 비탄의 말이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조직폭력, 성폭력, 거리폭력 등 세상이 온통 폭력의 세계가 되고 있다.

무한대 사랑으로 출렁이어야 할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악마의 얼굴이 되어 구타하고, 지·덕·체의 산실이어야 할 학교에서 급우를 끌고 가 집단적으로 난타하며, 규범과 법을 지켜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폭력조직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목숨 걸고 칼부림을 행하고, 가장 신성하여야 할 남녀 간의 애정행각이 신체적 우위를 무기로 또는 자신의 성적욕망을 채우기 위해 야수와 같은 행동을 자행하는가 하면, ‘째려본다’거나 주점에서 홀대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주먹질을 일삼는 비인간적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의 화풀이용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에 대한 적개심 을 분출하는 방법 등으로 소위 ‘묻지마 폭력’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정글속의 동물세계와 같은 약육강식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목적이나 대상과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발발되고 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여의도 광장에서, 도시 번화가에서, 농촌의 거리에서, 골목에서, 다리 밑에서, 으슥한 산속 등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무법천지를 방불케 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무법천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호수용제, 학생부 기재, 화학적 거세, 성폭력 전담팀 신설, 불심검문 등 여러 가지의 처방전을 내 놓고 있지만 대부분 재탕 삼탕의 임시방편에 그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병의 증상만에 근거한 처방이기 때문이다. 병의 뿌리를 찾아 그 뿌리를 뽑는 접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처방은 근본적인 치유방법이 될 수 없다. 병원(病原)이 근치되지 않는 한 그 병은 얼마 되지 않아 재발할 것이 분명하고 오히려 큰 병으로 키우게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묻지마 폭력은 인간 및 사회의 존재가치를 붕괴하는 사회의 병이다. 그것도 중증의 사회병이다. 난치병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방치하여서는 아니 된다. 완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고질의 투약과 정성이 필요하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의사의 입장에서 정확한 처방에 나서야 한다. 사회질서와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기관이 단호한 의지로 앞장서야 한다.

단·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강력하게 단속하여야 한다. 누구보다 국정최고책임자가 기본권 존중에 대한 인본주의적 국정철학을 가지고 진두지휘하여야 한다. 국정최고책임자는 무엇보다 정신문화 창달을 국정의 최우선 지표로 삼고 철저한 실천은 물론 그 토양의 비옥화에 진력하여야 한다. 이 철학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불변의 지표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지면을 통하여 국정 제일의 지표를 정신문화의 창달로 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주인은 신체가 아닌 정신이고 행복은 정신세계의 영역이라는 점에 근거한 제안이다. 정신은 규범이나 도덕 및 윤리, 그리고 미풍양속까지를 포함한다. 그렇기에 가정이든 학교이든 사회이든 국가이든 정신의 건전화 및 비옥화를 중심가치로 삼아야 한다. 정신은 집으로 비유하면 대들보인 것이다. 정신이 결여되었거나 미약한 가정, 학교, 사회나 국가는 대들보가 허술하고 약함으로써 사상누각 내지 또는 폐가나 다름없는 것이 된다. 묻지마 폭력에 의한 묻지마 범죄의 속출 및 증가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반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는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해가 갈수록 더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먹구름이 되어 엄청난 속도의 소낙비를 뿌릴 수 있다. 길은 하나이다. 정신문화 창달이다. 국민 모두가 바른 정신을 공유(共有·문화의 본질)하게 하는 정신문화를 조성 및 착근시켜야 한다.

단편적이고 지엽적이며 피상적인 처방에 만족하여서는 아니 된다. 천만년 한결같이 지키고 실천할 정신문화를 조성하여야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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