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 논설위원·소설가사형수, 그 형(刑)을 집행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흉악범죄 증가에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인과응보론자들은 집행을 주장하고, 사형수의 인권도 보호돼야 한다는 인권론자들은 금지를 주장한다. 현실론과 이상론 사이에서, 외교적 파장도 염두에 둬야하는 정부로서는 고민이 깊다. 15년 동안, 누적 인원 60여 명이 넘도록 사형수들의 형 집행을 미뤄(?)오면서 적지 않은 국가예산을 투입해 온 역대 정부가 폭탄돌리기를 한 셈인데, 요즘 들어 급증하는 극악한 성범죄로 해서 사형집행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중, 법률상 사형제가 폐지 된 나라가 104개국, 사형제가 존치되고 있으나 장기간 집행사례가 없어 사실상의 폐지국으로 간주되는 나라가 35개국, 실제적으로 사형제가 존치, 시행되는 나라가 58개국이란다. 우리나라는 사실상의 폐지국에 속한다. 법률상 사형제가 있고 판결을 받은 사형수가 있지만, 장기간 집행이 유보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흉악범죄 예방과 다수 국민의 안녕을 위해 ‘법대로’시행하라는 주장과 인권평등을 내세워 사법살인도 살인이라는 반대론자들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를 판단하기는, 무결점의 완벽판결 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어느 쪽에 서서 보느냐, 시각의 차이다. 갈등을 해소하고 이견을 절충하는 데는 중용(中庸)이 약이라지만, 사형집행의 가부 논쟁에는 중용이 약발을 발휘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인간의 선한 행동은 상찬하여 권장하고 악한 행동은 징벌해야 한다는, 권선징악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 기본개념이요 법치(法治)의 바탕이다. 이게 무너지면 확산되는 범죄를 막을 길이 없고 개인의 안녕도 사회질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형수들은, 과거의 행동은 물론 예측되는 미래의 행위도 국가와 사회, 개인의 안녕에 심대한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영구격리가 불가피한 존재들이다. 사형제가 폐지 된 나라의 종신형 수형자들의 죄질도 사형수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국가에 따라 형벌권행사의 한계나 형량기준이 다를 뿐, 영구격리라는 징벌 방법은 마찬가지다.

영구격리, 사형집행으로 마무리하면 간단하지만, 종신형이라면 그 비용이 만만찮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흉악범이, 세금 한 푼 내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시민의 몇 배나 많은 국세를 축내는 셈이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남의 인권을 유린하거나 생명을 강탈한 ‘범죄자의 생명도 존중(?) 돼야한다’는 인도주의적 발상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오판으로 억울한 살인이 합법적으로 자행 되는 오류를 막자는 게 명분이다.

보도에 의하면 사형수나 장기수들은 수형생활이 오래 될수록 처우등급이 상향조정 되고, 최고등급인 ‘S1급’에 이르면 교도소 내에서 ‘VIP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범죄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법 감정과는 상치되는 일이다.

징벌은, 그에 대한 압박감으로 범죄욕구를 차단, 예방하고 범법 후엔 수형생활을 통해 속죄, 회개하여 갱생의 기회를 찾게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속된 말로 ‘죽을 죄’를 져도 죽기는커녕 오히려 ‘VIP’노릇하며 수형생활을 한다면 목적에 빗나간 일이고 징벌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철퇴 아닌 솜방망이 처벌이 범법의 두려움을 희석시키고 누범(累犯)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어떤 방안도 절대적일 수 없고 이견이 없을 수 없지만, 혹시 이런 방안은 어떨까? 우선 교도소를 다양한 생산시설로 전환, 인명살상이나 국가위해 등의 중형범죄자를 근로현장에 투입하고, 그 수형자의 범죄로 인한 국가 사회나 개인에 대한 피해를 경제 가치로 환산, 수형자 자신이 근로 현장에서 얻은 보수로 이를 갚아나가게 하는 것이다. 살인자는 피살자와 그 가족이 입은 피해를, 어린 생명이나 그 장래를 짓밟은 범법자는 그 피해자가 박탈당한 삶의 가치를, 혹은 평생 안고 갈 정신적 고통과 불이익을 보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형기간 내에 자신에게 투입되는 경비도 포함시키는 건 물론이다. 수형 기간 내에 갚지 못하면 기간 연장, 평생 갚지 못하면 거기서 임종하는 것이다. 인권론자들의 ‘사법살인’비난을 잠재우고 흉악범의 공포와 함께 재범빈도를 훨씬 낮출 수 있지 않을 까?

범죄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가 끌어안고, 가해자는 세금으로 침식을 보장받는 현재의 행형제도를 개선하고 ‘사법살인’의 비난을 면하자면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넘어야할 산은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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