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오늘날, 시골동리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을 이장(里長)이라 하거니와 지난날엔 이를 구장(區長)이라 했다. 이 구장시절에 양실영감의 선친이 구장을 지냈다. 그래서 동네에선 이 양실영감네를 ‘구장집’이라 한다. 역대의 구장 중 사적인 욕심 없이 양심적으로 일을 보아 존경을 받았던 인물로 남아 있어 아직도 이 집을 이리 불러오는 터이다.

건실노인이 이 구장집을 찾아왔다. “여게 구장네, 양짓말 날세.” “어허, 오랜만일세. 허리가 불편하단 말 들었는데 여까지 웬 일인가?” 둘은 수인사가 끝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하도 가슴 답답해서 왔네.” “아니, 자식풍년에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손주 놈들까지 거둬들여 더 바랄 게 없을 자네가 무슨 소리여.” “그러게 말일세. 창피스러운 일이여.” “뭐가?” “들어 보게나, 자네 말따나 자식 다섯이 다 짝지어 나가 전부 인근에 살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나 물려받은 재산 없고 모아둔 돈 없어 제대로 멕이길 했나 높이 가르치길 했나 그건 인정햐. 그치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두 내우 지들한테 힘껏 하느라구는 했잖여.” “암암, 얼마나 들 고생을 했는가. 동네가 다 알지.” “그런데 이놈들이….” “이놈들이 어떻단 말인가?” “지놈들 키우느라 우렁이껍데기가 된 이 앙상한 우리 내외와 도대체 같이 살자는 놈이 없단 말여. 봉양은커녕 용돈 한 푼 주는 놈이 없으니 복장 터지는 일 아닌가. 자식풍년 말도 말게.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 할 때 자네같이 둘만 낳았더래도 이 지경은 안 됐을 거라는 후회가 되네. 그러니 이러한 내 집안 사정을 남부끄러워 누구한테 하소연하겠는가. 하도 내 신세 답답해서 자넬 찾아온 게야.” “허어, 그런가. 요새 자네 집안뿐 아니라 그러한 집안들이 꽤 있다는 말은 듣고 있네만, 지금은 즈이들 사는 데 바빠서 여유나 여념이 없어 그럴게야.” 양실영감이 여기서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기더니 묻는다. “그래, 가끔 들르기들은 하는가?” “명절 때나 여느 때 가끔 삐끔삐끔 생각나면 들여다보긴 하네만, 그럴 때도 뭐라도 가져갈 것 없나 두리번두리번 살피고, 지 애비 혹 숨겨둔 문서나 통장 같은 것이라도 없나 하고 넌지시 떠보는 눈치더라니까. 참 기도 차지 않는 일이지.” 그러자 양실영감이 슬그머니 일어나 나가더니 무엇을 들고 들어온다. “자네 이거 뭔지 알지?” “그거 목침 아닌가?” “퇴침일세. 이걸 자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대출해 주겠네.” “뭐라구?”

‘목침(木枕)’은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다. 옛 노인들은 이걸 사용했다. 그래서 노인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헝겊베개처럼 길쭉스름한 것이 아니라 노인머리의 가로 폭 만큼 한 직사각형이나 정방형의 크기이고 단단한 나무토막이기 때문에 어린이나 젊은이들은 머리가 배겨 기피한다. 하여 노인들은,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르고 여물질 않아 배기는 거라며 젊은이들을 얕잡아보는 것으로 늙음의 불리한 조건을 덮으려하기도 했다.

목침에 서랍을 장치한 것이 ‘퇴침(退枕)’이다. 아무래도 행동이 굼뜨고 여의치 않은 노인들이 편리함을 도모코자 고안했음직하다. 이 서랍 속엔 눕거나 앉은 자리에서 항시 피울 수 있도록 담배쌈지를 넣었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물건을 넣어둠으로써 안전을 꾀했던 것이다.

자식 9남매를 둔 양실영감의 선친인 구장은 말년에 자신의 퇴침서랍에 자물쇠를 장치했다. 그리고 이걸 자신이 이동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들고 다녔다. 출타할 때는 자신만 아는 곳에다 숨겨 놓았다. 아홉 자식들이 수상히 여겼다. ‘무엇이 들었을까, 왜 그러실까’ 그러다 ‘아마 임종 때 자식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그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몰라.’ 하는 데까지 이르자 청렴만을 고집해 빈한함을 면치 못하게 했던 부친에 대한 원망스러움으로 그간 멀리했던 발걸음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그 분배차지에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버지 구장은 임종 때까지도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하여 아홉 자식들이 퇴침의 서랍을 개봉했다. 그러자 순간 자식들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속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들은 아버지 구장의 지혜에 탄복하고 얼굴들을 들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퇴침은 자네 집 가보 아닌가. 이걸 나한테 준다구?” “그러니까 대출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아무 유언도 없이 죽으면 어떻게 돌려받으려고?” “그 서랍 속에다 이렇게 써 넣게, ‘애비가 죽거든 이 퇴침을 구장네로 돌려드려라.’ 하고” 건실노인은 무릎을 탁 치고 나서 마음이 설레 퇴침을 가슴에 안고 서둘러 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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