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보내온 동영상에서는 외국인 남자가 운전대를 붙들고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빠른 가사 중 귀에 들어오는 단어는 ‘오빤 강남스타일’과 ‘뇨자’ ‘싸나해’ ‘싸랑스러워’ 정도. 그래도 이 남잔 가사가 맞거나 말거나 뜻을 알거나 말거나 신이나서 고개를 흔들고 몸을 들썩인다.또다른 유투브에서는 프랑스의 유명라디오방송 NRJ 12 스튜디오에서 DJ가 방청객들에게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말춤을 추게 하는 장면이 보인다.

방청객 전체가 일어서서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코믹하다.

세 살부터 여든까지 모르면 간첩이라는 강남스타일이 연일 화제다. 12일까지 유투브 조회수가 1억5000만 건을 돌파했으며, 13일자 아이튠즈 차트에서는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금주의 단어로 ‘강남스타일’을 선정했다.

그 뿐이 아니다. CNN ABC NBC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LA타임즈 타임 등 미국의 유명 언론들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각국의 미디어들이 앞다퉈 ‘강남스타일’의 유행현상을 다루고 있다.

재미있는 패러디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면서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홍대스타일’, ‘미국스타일’, ‘오만스타일’ 등 지역과 국가 이름을 반영한 패러디부터 ‘이장스타일’ ‘고딩스타일’, ‘줌마스타일’ 등 특정집단을 패러디한 동영상까지. 심지어 TV 인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무도스타일’을 선보이는 등 노래의 인기를 증명했다. 이같은 강남스타일의 글로벌한 인기는 당분간 식지 않고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싸이는 세계적 음악 행사인 MTV VMA 2012에 시상자로 초청됐으며 오는 21일과 22일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아이 하트 라디오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게 된다.

100년 가까운 역사의 한국 대중음악이 마침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느낌이다. 최근 몇 년전부터 아이돌그룹이 K-POP으로 한류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가요가 세계 시장에 진입한 것 같다.

그동안 아이돌그룹은 수려한 외모와 빼어난 춤솜씨, 그리고 외국시장을 겨냥해 영어를 적당히 섞은 가사 등의 장점을 활용해 서서히 접근했지만, 강남스타일은 시작부터 다르다.

강남스타일은 싸이라는 가수 혼자다. 그리고 외모부터 다르다. 그는 잘 생기지도 않았고 몸매도 중년의 아저씨같다. 무스를 바르고 양복을 입고 짐짓 점잖은 체 하다가 갑자기 신나게 말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반전 그 자체다. 노래가사는 ‘섹시 레이디’를 제외하곤 모두 한국어이며, 선글라스를 낀채 ‘오빤 강남 스타일’할 때의 표정은 어찌 보면 느끼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재미’와 ‘독특함’ 때문이다.

강남스타일은 지금까지 유행한 노래와는 확실히 다르다. 리듬이 다르고 춤이 다르다. ‘오빤 강남스타일’의 부분도 여운처럼 귀에 남는다. 특히 익살스러운 말춤은 동작이 어렵지 않은데다 자주 반복돼 누구나 따라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남녀노소 불문, 강한 중독성을 갖게 되는 노래. 그것은 이 노래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개성 넘치는 콘텐츠로 무장됐음을 말해준다.

어떤 평론가는 이같은 현상을 두고 ‘B급 정서’가 남녀노소 국적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다가선 것이라고 분석을 했다.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반복과 청각적·시각적 자극이 빨려들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어떤 정신과 전문의는 싸이가 인류의 공통적인 ‘집단 무의식’을 건드렸다고 해석했다. 어떤 분석이나 해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강남스타일은 아무런 준비없이 어느날 갑자기 뜬 뮤직비디오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랜 훈련과 실력이 뒷받침한 결과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이렇게 즐거운 일이 음악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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