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

 

언젠가 남편과 부부동반으로 뉴질랜드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며칠 간 머문 곳은 뉴질랜드 북섬의 가장 큰 도시 오클랜드 서쪽에 위치한 한 주택가였다.

이곳은 대도시 한 자락임에도 불구하고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고, 불과 5분만 걸어가면 요트들이 정박해있는 바닷가가 동화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곳이었다.

남편은 노란 이끼가 낀 검은 화산암 바위 위에 올라 낚싯대를 드리웠고, 나는 눈이 아릴만큼 푸르고 선명한 하늘과 바다의 풍광에 도취되어 명상에 잠겼다.

그런데 낚싯대를 드리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찌가 흔들리더니 팔뚝만한 물고기가 퍼덕거리며 끌려나왔다. 남편은 손에 전해져 오는 짜릿한 기분을 느끼며 낚시를 즐겼고, 집에 돌아와서는 즉석에서 그 깨끗한 생선을 조리해 저녁 식사를 하면서 , 이런 게 사는 거구나!”하고 즐거워했다.

뉴질랜드의 공항은 입국심사가 무척 까다롭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밀수품이나 외화 반입이 아니라, 외래 동식물의 유입이다.

예를 들면 이웃나라 호주에서 사랑받는 캥거루와 유사한 왈라비나 포썹같은 동물들이 뉴질랜드에 유입되어 번식하는 것, 그리고 신발에 묻어온 흙에서 외래 식물의 종자가 이 나라를 뒤덮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가져온 과일이나 화초가 이 조그만 섬나라 고유의 동식물을 파괴하는 것이 입국심사가 까다로운 이유라고 한다.

북반구의 바삐 돌아가는 거대한 대륙에서 뚝 떨어져 호주와 함께 남반구에 외롭게 위치한 이 나라는 자연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러한 노력이 있기에 파란 하늘과 바다, 푸른 들과 산이 그리도 아름답게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거짓말처럼 며칠 안 되어 한국이 그리워졌다. 이곳은 마치 정지된 시계 속의 세상처럼 역동적 흐름이 결여된 채 완만하게 돌아가는 공간 같았다. 백인, 마오리족,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등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이들이 사라진 듯 사회의 움직임이 너무도 느렸다.

한국에 돌아와 공항에 쏟아져 들어오고 밀려나가는 인파, 서울 시내로 들어와 엄청나게 움직이는 교통량, 길거리에서 서로 밀치듯이 바쁘게 움직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이게 사람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한국인들은 점잖고 외면상의 예의를 중요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성급하고 세련된 매너도 부족하지만 한편 우수한 두뇌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이 어려울수록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해왔는데 이것은 오랜 역사에서 나오는 힘이라 생각된다. 1947년 정식으로 독립국이 된 뉴질랜드는 역사가 일천하여 원주민인 마오리 족의 문화를 제외하면 내세울 만한 문화가 별로 없다.

또 뉴질랜드가 아름다운 자연에 토대를 둔 관광산업과 낙농업으로 세계의 여러 나라와 겨루고 있는데 이는 너무도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뉴질랜드 정부가 제조업과 정보기술에 전력을 기울이고 이 분야의 전문 인력을 자기 나라로 유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역동적이고 힘찬 변화와 발전에 비해 뉴질랜드는 정지되었다는 느낌, 심지어 퇴색하고 있다는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선명한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뉴질랜드에서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는 자연에 도취된 채,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나는 뉴질랜드에는 사람이 없다”, “역동적인 변화의 에너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삶이 정지되어 있다”, “북반구의 문화권에서 너무 이탈되어 있다라는 말을 하며 어느 새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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