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그때였다

창백한 은사시나무 사이로

포개고 앉은 가을산이 움찔거리고

바람이 제 소리를 낸다

휘어진 길을 노젓듯 덜컹거리며

열려있는 가을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저수지에 담긴 산그림자가 유난히 길어보이고

물수제비 소리에 소금쟁이 화들짝 놀란다

앞서가던 오리 떼 날갯짓이 빨라지고

느닷없이 찾아 든 불청객이 놀랐을 낙엽

어깨에 묻은 가을을 슬쩍 내려 놓았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