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복 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올 여름은 유별나게 더웠다. 단 하루도 편하게 잠들지 못하는 폭염 속에 연일 열대야(熱帶夜)로 몸살을 앓았다. 전력사용량이 나날이 갱신될 만큼 전력수요도 급증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독한 늦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고 이른 아침에는 제법 차가운 한기가 방문에 스민다. 밤이 길어졌다. 한 낮 햇볕도 살갗에 닿는 강렬함이 한풀 꺾인 채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흩어진다. 어느새 잠자리가 한가롭게 하늘을 놀이터삼아 유영하고 빛에 물든 날개는 더욱 반짝 거린다. 매미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 초록이 끝날 변화의 조짐이 완연하다.

해 이른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엉겅퀴 같은 할머니 손에 몸을 맡기고 세워 논 깻단이 바스락 소리를 낸다. 기척 끊어진 동네가 가을걷이를 앞둔 농부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소란스럽다.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만추(晩秋)의 들녘, 바람이 불때마다 흥겨운 풍년가(豊年歌)에 맞춰 길게 나래선 허수아비가 춤을 춘다. 여기저기 무엇인가 살다 지는 곳에 또 무엇인가 부지런히 피어난다. 두고 온 듯한 오래된 풍경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마음속 고향의 애잔한 모습이다.

계절의 윤회(輪廻)는 냄새로 다가온다. 허기진 마음한구석 풋풋한 곡식이 익어가는 냄새, 소낙비 쏟아진 장독대에 된장이 익어가는 냄새, 그리고 땀방울 젖은 어머니 앞섶에 드리운 흙냄새, 온통 식욕 돋는 먹거리가 도처에 널려있다.

그래서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 부르는가보다. 한 계절 내내 힘겨운 싸움을 마무리하고 검게 탄 농부의 팔뚝에 솟는 힘줄마냥 모든 알곡이 실하게 차있다. 먹지 않아도 넉넉하고 배부르다.

이렇게 되기까지 지난 시간 농부의 가슴에 남겨진 생채기는 다 아물지 않았다. 사나운 자연재해는 하루아침에 삶의 공간조차 잃게 하고 채 여물지 않은 곡식을 쓸어갔다. 밤이 새고 나면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빈껍데기뿐, 흘릴 눈물조차 말라버렸다. 그저 자연이 다시 부어 줄 것이라는 한줄기 소망으로 견뎌온 세월이었다. 모두가 묵묵하다. 농부는 순명의 나무처럼 말이 없다. 상처너머로 오는 가을이 소리 없이 깊어갈 뿐이다.

봄이 순수한 노랑이라면 여름은 짙은 녹색이다. 가을을 색에 비유한다면 어떤 색일까? 머지않아 어떤 물감으로도 덧칠할 수 없는 계절이 오리라. 자연은 우주질서(宇宙秩序)를 순환하고 무서운 생명력을 선보인다. 모든 것이 날아갈 것 같은 폭풍의 모진 기세도 이겨내고 탐스런 빛깔로 영그는 과일이 나뭇가지마다 저마다의 자태로 풍성하다. 어떤 색깔이 이토록 원색적(原色的)이고 찬연(燦然)하게 탐스러울 수 있을까 늘 새롭게 단장되는 자연은 그저 경이롭다.

아무도 살수 없을 것 같았던 절망의 끝단에 또다시 생명의 태동이 시작되고 그것은 위대한 전설처럼 희망의 전주곡(前奏曲)이 되어 온 대지에 울려 퍼진다. 모퉁이를 돌아온 맑은 물이 실개천을 이루며 낙과 사이로 흘러간다. 잔잔한 흐름 속에 평화가 자리하고 있다. 밖으로 열린 문을 닫으면 내면의 문이 열린다. 넓어진 가슴으로 가만히 돌아보면 지난세월의 굴절 속에 오만(傲慢)과 방종(放縱)의 오류가 보인다. 그동안 누리며 밟고 섰던 모든 것들이, 그렇게 숨 가쁘게 앞만 보며 질주했던 일상들이 비로소 보이고 들린다. 자연속의 삶은 빚을 지는 일이다. 우리는 미래세대의 것을 잠시 빌려 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 잎새를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가 가슴에 닿는다.

가을엔 기도하게 해 달라던 릴케처럼 포근함 가득 잉태한 자연의 풍요로움에 기도하고 싶다. 누군가 인간이 자연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발전이라고 했지만 그저 자연의 섭리에 기대 사는 것 일뿐 처음부터 극복(克復)할 수 있는 자연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티끌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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