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 원 신성대 교수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의심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 사람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 공동묘지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의심을 하거나 받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의심받을 상황이 오해 없이 잘 해결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고 의심이 반복되고 누적되다보면 나중에는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따라서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원인을 찾아서 오해를 풀고 생활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필자도 얼마 전 엉뚱한 사람을 의심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기 위해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0000번 차주냐고 하면서 차를 빼달라고 했다. 머리에 비누칠을 한 상태라 다 씻고 나가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아내에게 자동차 키를 주면서 상대방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지만 차를 대신 빼달라고 부탁하라고 하였다. 차가 수동이라 아내는 운전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그들 역시 수동은 운전할 줄 몰라 한 사람은 기다리고 한 사람은 열 받아서 부인차를 타고 출근했다고 하였다. 부리나케 내려가서 기다리던 여자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차를 빼줬다.

문제는 다음에 발생했다. 출근을 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는데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차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 들었다. 차를 세우고 보니 앞바퀴가 펑크가 나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누군가 고의로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어제 밤늦게 퇴근할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혹시 아까 열 받아서 부인차로 출근했다는 사람이 화풀이로 그런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부터, 기다리던 여자가 그랬나 라는 생각, 심지어는 밤에 누가 차를 빼거나 바치다 방해가 돼서 그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연이어 그렇다고 이렇게 까지 해도 되나?”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파트가 오래돼서 지하주차장이 없다보니 이렇게 주차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이웃사촌철천지원수로 변할 수도 있다.

서울로 출장을 가야했기 때문에 차를 그냥 주차하고 아내차로 출근을 했다. 하루 종일 찝찝하였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그냥 나온 기분이었다. “설마하니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화가 치민다고 다른 사람의 차를 이렇게까지 하는 몰상식한 사람은 없을 거야?” “아니야. 감정이 격해지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머릿속은 심란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고의로 그랬다면 그 사람은 또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부인차를 몰고 간 사람이 일을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 사람에게 항의할 수 있을까? 막연하기만 하엿다.

저녁에 카센터에 가서 펑크를 때우면서 의문점은 해소됐다. 누군가가 고의로 펑크를 냈다고 보기에는 펑크가 난 부분이 너무 안쪽이라는 것이다. 안도의 한숨도 나왔지만 허망한 생각도 들어 기분이 착잡하였다. 하루 종일 과연 나는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우연히 상황이 꼬이다보니 누군가가 불순한 의도로 해코지를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야말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이었다. 쓸데없이 죄 없는 사람을 의심하고 그에게 화풀이할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면 오히려 내가 정신 나간 사람이 될 뻔하였다. 다행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나름대로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명확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였다. 지나고 보니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은 또 얼마나 불편했었던가!

오해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위험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쉽게 오해를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살아온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민감하여 판단을 잘못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가슴에 사나운 이리떼를 품고 다녀서는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해하면 사랑까지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까지는 못하더라도 불필요한 예측과 가정을 거듭하다 보면 몸과 마음도 쉽게 피곤해지는 것은 확실하다.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 구성원간의 몫이자 개인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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