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목적이 수단 정당화 못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4일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자신의 과거사 인식 문제에 대한 입장을 새로 정리했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5ㆍ16쿠데타, 유신, 인혁당 사건 등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대선주자로서의 첫 공식 사과이며, 지난 10일 자신의 인혁당 두 개 판결 발언 논란으로 과거사 논쟁이 전면에 부상한 지 2주일 만이다.

그동안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박 후보가 기자회견을 자청, 유신ㆍ인혁당 피해자 및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하고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는 대선판 초반의 첫 승부처로 인식되는 추석 연휴(9ㆍ29∼10ㆍ1)를 앞두고 역사인식 논란에 대한 특단의 입장과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최근의 지지율 하락세를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짙은 회색 정장차림의 박 후보는 이날 오전 9시 정각 당사 4층에 위치한 기자실을 찾아 바로 단상에 올랐다.

박 후보는 과거사 이슈의 민감성을 의식한 듯 프롬프터를 활용, 10분간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는 회견에서 정치인이자 대선후보로서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딸로서 부친에 대한 견해를 분리해 접근했다.

그는 "오늘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18대 대통령 후보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며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기존에 `박정희 시대의 공과(功過)를 병렬적으로 나열했던 것과는 달리 `과에 포커스를 맞춘 셈이다. 이는 대선후보로서 과거사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맞추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또한 박 후보는 인정(人情)에 대한 호소도 곁들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하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며 "국민이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저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며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를 흉탄에 보내드리고 개인적으로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했다"며 개인적 고뇌도 소개했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박 후보는 국민대통합의 의지를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10분간의 회견을 마쳤으며, 부산 방문 일정을 위해 언론과의 질의응답은 생략한 채 곧바로 당사를 떠났다.

 

박 후보는 당사를 나서며 "마지막 사과라고 보면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말씀드린 내용에 모든 게 함축돼 있고 앞으로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제 진심을 받아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수위의 발언은 처음"이라며 "가슴으로 말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박 후보는 회견에 앞서 자정을 넘겨서까지 회견문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초안에는 사과의 구체적 표현 등이 빠졌지만 수차례 수정을 거듭, 사과 수위가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한 참모는 "후보가 평소의 생각을 회견에서 밝힌 것"이라며 "후보가 직접 회견문을 작성하고 참모들은 옆에서 거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캠프 참모들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시중 여론 등을 취합, 직ㆍ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을 참고해 박 후보가 사과 관련 표현 등을 취사선택하면서 회견문을 직접 다듬었다는 것이다.

한편, 박 후보는 회견문을 읽는 과정에서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잘못 발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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