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없는 노숙자 ㄱ(53)씨는 지난해 4월 천안시내 한 은행에서 서민전세자금 3500만원을 대출받았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무직자로 대출자격이 없던 ㄱ씨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뒤에는 대출브로커들의 도움이 있었다.

브로커 김모(52)씨의 제의를 받은 ㄱ씨는 주민등록 등본 등 대출에 필요한 기초서류를 발급 받아 김씨 등 브로커들에게 전했고, 김씨는 마치 ㄱ씨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식회사 관리부장으로 근무하는 것처럼 재직증명서를 위조했다.

김씨 등은 이어 집주인 등과 짜고 천안시 동남구 봉명동 ㄴ씨의 아파트를 임차하는 것처럼 허위 전세계약서까지 꾸며 은행에 대출 신청을 넣었다. 모든 서류가 가짜였지만, 은행은 국민주택기금 전세대출을 승인했다.

2008년 9월부터 3년간 김씨 등을 통해 정부의 근로자․서민대상 주택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노숙․실직자들은 모두 15명에 달한다. 이들은 각각 1600만~6400만원을 대출받았으며, 이 돈의 30~50%는 브로커들이 챙겼다. 김씨는 모두 1490만원의 수수료를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구속기소됐다.

청주지법 형사 4단독 이혜성 판사는 24일 "범행에서의 역할과 회수, 편취금액에 비춰 실형선고가 불가피하다"며 김씨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모(62)․한모(여․44)씨에게 징역 8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9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김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ㄱ씨에게는 징역 6월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마련된 기금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가로채 수법이 전문적이고, 치밀할 뿐 아니라 국고에 피해를 가한 점에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이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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