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이라고 한다
. 명절이 지나고 나면 한국의 여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가부장적인 한국의 남편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입으로 다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필자의 집도 전형적인 종가로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항상 큰일을 도맡아 하고 끝나면 병이 나시곤 했다.
이제 세대교체가 되어 형님 댁에 가면 예전의 그 모습을 찾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앉아서 전 부치기에 바쁘다.
예전엔 남자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요즘의 필자 세대는 함께 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일 안 하고 밖으로 돌고 있는 조카들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 세대를 낀세대라고 하는 말이 맞는 말이다. 선친의 세대는 갖은 고생을 다 한 정말 힘든 세월을 보냈다.
일제강점기의 굴욕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몸으로 때웠다. 가끔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면 선친께서는 늘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말씀하셔서 필자의 입을 막아버리셨다.
그래도 선친의 세대는 명절 때 제기 닦고 지방 축문 쓰는 것 외에 음식 장만으로 힘들어 하지는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절이 지나고 도희(가명) 엄마를 길에서 만났다. 옆집에 사는 관계로 자주 보지만 오늘은 더욱 초췌해 보이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피곤해 보이는 그녀와 길에 마주 서서 한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베트남의 명절과 한국의 명절을 비교해 보았다.

일단 도희 엄마의 한 마디는 너무 힘들어요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남자들은 술만 마시고 TV만 본단다. 사실 한국의 남성들은 대부분이 명절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냈을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이 정도로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고 한다. 친정아버지도 술을 좋아하시기는 하지만 한국인처럼 이렇게 하루 종일 술만 마시는 경우는 없다고 하면서 투정을 부린다. 음식 준비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쪼그리고 앉아서 전을 부치고 부단히 일만했단다. 베트남에 있을 때는 명절이 참으로 즐거웠다고 한다. 베트남에도 추석이 있는데 가족들이 다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즐거웠다고 한다.
식구가 많아서 힘든 것도 별로 없었고, 친정아버지는 집안을 꾸미느라 하루 종일 즐겁게 일을 했다고 한다. 심부름도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함께 하는데 왜 한국은 여자만 하느냐고 소리를 높인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명절은 여성들에게는 고난의 날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여성들은 거의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로 갈수록 남편들이 가사노동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와 같은 낀세대는 아내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명절 당일에도 빨리 치우고 처가에 가야 한다.(물론 필자의 경우는 치매 장모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조금은 특이한 경우가 되겠지만 대부분은 처가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제들을 보면 명절 당일 아침에 부지런히 치우고 점심 때를 전후해서 처가에 가는 것을 20년 이상 보아 왔으니 아마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주여성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많고 아직도 절대적인 가부장적인 가정이 많다. 남편들은 권위를 좋아하고 음식 장만 같은 일에는 별무관심이다. 그러니 명절 전날에는 일만하고, 명절 당일에도 먹고 치우는 일만 반복하는 단순 노동에 이들은 피로감이 더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더 붙어 있다. 친지들을 만나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수다도 떨고 싶지만 주변에 사람이라곤 없다. 어디 전화해서 하소연할 때도 없고 하루 종일 치우는 일만 반복하게 된다.
도희 엄마에게 한국인 남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주 단순했다. “별거 없어요. 그냥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되요, 그러면 안 힘들 것 같아요
한국의 다문화가정의 남편들이여! 아내의 외로움에 조금만 동참해 봅시다. 일은 안 하더라도 그냥 옆에만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곁을 지켜주고, 명절이 지나면 아무 말 하지 않더라고 그냥 따듯하게 안아주기만이라도 합시다. <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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